국정원이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유우성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013년에 기소했다. 하지만 증거조작, 증거누락으로 최종 무죄 판결이 나왔다.
유우성 씨가 중국을 통해 북한을 드나든 증거라면서 검찰이 제시한 중국 공문서 3건이 있었다. 중국 당국이 그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고 확인했다. 검찰은 “중국이 위조라고 하지만 위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면서 애매한 입장을 보였는데, 재차 중국 측이 “우리가 말한 위조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위조를 의미한다”고 확인했다.
이 문서에 관여한 조선족이 나중에 조사받으면서 “위조 문건 만드는 데 천만원 들었다”고 했다. ‘국정원으로부터 부탁 받았는데 협조하면 한국 국적 얻는 데 도움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가담했다’는 취지로도 말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유우성이 간첩이 맞다’고 했었는데, 그조차 국정원이 시킨 거라고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충격적인 간첩조작 사건인데, 당시 국정원 조사관들이 유우성 씨의 여동생 유 씨를 폭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동생 유 씨에게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모는 증언을 하도록 압박하는 과정에서 폭행까지 했다는 것이다. "전기고문을 시켜야 정신이 번쩍 들겠느냐"며 전기고문을 할 것처럼 위협했다고도 한다. 결국 “유우성이 북한에 몰래 들어가 국가보위부 부부장에게 임무를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받아냈다고 한다.
나중에 허위 진술을 취소하자 “진술번복죄가 간첩죄보다 더 크다”며 또 폭행했다고 한다. “조사에 혼란을 초래한 것을 반성하고 다시 거짓말할 경우 한국법에 따라 어떠한 처벌도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반성문도 쓰게 했다고 한다.
군사독재 시절도 아니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믿기지 않는 일은 이게 끝이 아니다. 엄청난 국가범죄인데도 불구하고 관련 조사와 처벌이 엄중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4년 만에 재수사가 이루어져 올 1월에 국정원 전 대공수사국장이 징역 1년 6개월을 받았을 뿐이다. 국가기관의 간첩 모함은 중죄임에도 이해하기 힘든 형량이다.
유우성 씨가 동생을 폭행한 국정원 직원들을 작년 2월에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 검찰은 1년간 사건을 끌다가 올 2월에야 고소인 조사를 하고 3월에 불구속 기소했다. 이 시차 때문에 현재 공소시효 논란이 생겨 처벌을 못하게 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유우성 씨 측은 검찰이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고 의심한다. 설사 시간을 끌지 않았다고 해도, 그 문제와 별개로 이런 중대한 국가범죄 사건을 불구속 기소로 정리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윗선 개입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
유우성 씨 사건에 관여한 검사들에 대해선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다. 생사람을 간첩이라며 기소했는데 재판에조차 넘기지 않은 것이다. ‘검사는 잘 모르고 기소만 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검찰 과거사위는 작년에 이 사건에 대해 "해당 검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이 사건 증거조작에 깊이 관여해왔으며, 증거조작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 바 있다. 또 국정원 내부 문건에 ‘여동생 유씨의 변호인 접견을 막기 위해 ’검찰‘과 협의했다’는 내용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러니 의혹이 계속 남는 것이다. 유우성 씨의 변호인은 “수사검사의 휴대전화를 확보하는 등의 강제수사 없이 이뤄진 부실 조사의 결과”라며 “애초 검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정말 충격에 또 충격을 안기는 사건이다. 역사책이 아닌 현대 언론기사를 통해 이런 의혹들을 접한다는 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누구든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할 뿐이다. 다시는 이런 국가폭력과 솜방망이 처벌 및 은폐 의혹이 나타나선 안 된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분명한 사실규명과 정보공개,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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