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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라켓소년단 사태, 방송사가 국격 떨어뜨리나

 

 

최근 SBS 드라마 라켓소년단에서 눈을 의심케 하는 황당한 장면이 방영됐다. 배드민턴 주니어 국가대표인 한세윤이 인도네시아 대회에서 우승하는 내용이었다. 한세윤이 홈 팀의 텃세로 고생하는 설정이었는데 그 수위가 선을 넘었다.

 

숙소 시설이 안 좋았는데 이에 대해 우리 코치진이 "숙소 컨디션이 엉망이다. 자기들은 본 경기장에서 연습하고 우리는 에어컨도 안 나오는 다 낡아빠진 경기장에서 연습하라고 한다""수단 방법 안 가리고 이기고 싶은 것"라고 말했다.

 

경기 중에 인도네시아 관중이 한세윤의 실수에 환호하자 우리 코치진은 "공격 실패할 때 환호는 X매너 아니냐", "매너가 있으면 야유를 하겠냐"는 대화를 나눴다. 결국 우승을 차지한 한세윤에게 인도네시아 관중은 야유를 보냈다.

 

황당한 장면이었다. 다른 나라 국민을 향해 “X매너라고 하는가 하면, "매너가 있으면 야유를 하겠냐"며 아예 매너 자체가 없는 국민성 취급을 한 것이다. 어떻게 다른 나라 국민들을 이렇게 싸잡아 매도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게 원론적으로 황당한데, 현실적으로 이해득실을 따져 봐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현재 한국 드라마는 한국인만 보는 게 아니다. 사실상 동아시아 사람들이 다 같이 보는 국제 문화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 국민들도 당연히 시청 층에 포함된다. 이렇게 동아시아 국민들이 볼 것을 감안해 넷플릭스 같은 곳에서 우리 드라마를 사가는 것이다.

 

동아시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수출 상품의 성격이 있는 것인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소비자들을 이렇게 폄하했단 말인가?

 

해당 방송이 나간 뒤 인도네시아인들이 SBS의 각종 공식 SNS 채널에 항의 댓글을 남겼다. "명백한 인종차별", "인도네시아를 모욕했다" 등의 말이 나왔다. 이에 '라켓소년단' 제작진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의 댓글을 통해 "특정 국가나 선수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을 불쾌하게 한 장면에 대해 사과한다. 다음 회부터 더 꼼꼼하게 신경 쓰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댓글 사과'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논란 발생 일주일 이후까지 SBS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엔 항의성 댓글과 보이콧 선언이 이어졌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 드라마가 가만히 있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건드려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이 사건을 두고 이게 과연 인종차별이 맞는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일어났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인종차별 여부 이전에, 이 드라마가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악의적으로 묘사했다는 게 핵심이다.

 

놀라운 무개념이다. 드라마를 시청할 국민들을 그렇게 묘사하면 반발이 터질 줄 몰랐단 말인가? 만약 인도네시아가 국제대회 개최시 비매너로 악명 높은 나라라고 해도 굳이 우리 드라마가 나서서 “X매너", "매너가 있으면 야유를 하겠냐"라는 식으로 조롱할 이유가 없다. 너무 과도한 표현이었다. 그런데, 만약 인도네시아가 그런 비매너로 악명 높은 나라가 아니라면 더 큰 문제다. 드라마가 누명을 씌웠다는 뜻이니까.

 

어느 모로 보나 말이 안 된다. 우리 드라마를 동아시아 사람들이 다 함께 본다는 걸 인지했다면 나올 수 없는 묘사였다. SBS 드라마의 이런 황당한 묘사 때문에 인도네시아 국민들 사이에 한국 콘텐츠에 대한 반감이 퍼질 것이고, 이건 한국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국제적 악감정을 만드는 건 수출로 먹고 살며 장차 관광 산업을 진흥시켜야 할 우리 입장에선 치명적인 자살골이다.

 

라켓소년단이 왜 가만히 있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을 “X매너"로 묘사해 평지풍파를 일으켰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우리 드라마 제작진들은 우리 콘텐츠가 국제콘텐츠라는 점을 보다 엄중하게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