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은 1971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할로 떴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로 영화계에서도 인정받았다. 김 감독은 윤여정을 일컬어 '내 말을 이해한 유일한 배우'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1975년에 미국행을 택했다. 조영남과 결혼했는데 조영남이 미국에서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아시아계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지역에서 힘들게 지냈다. 시급 2.75달러, 우리 돈으로 약 3000원 정도를 받으며 마트 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인생은 새옹지마여서 그때 익힌 영어가 요즘 빛을 발하고 있다.

 

10년 이상을 그렇게 살다가 조영남과 이혼 후 귀국했다. 한국에서 단역, 조연할 것 없이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다. 두 아이를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 배우계에서 누구나 존경하는 원로의 위상이 되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안주할 법도 한데 윤여정은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갔다.

 

미나리출연도 그런 도전의 결과다. 한국에선 어떤 작품에 출연해도 원로 대접을 받으니까, 아예 대접받기 어려운 환경인 미국의 작은 영화를 택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고 윤여정은 생각했다. 주위에서 만류했는데도 미나리촬영에 나섰고 결국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 지명이라는 엄청난 결과가 나타났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 이민자 가정의 이야기다. 땅을 개척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 거기에 기독교 코드도 나온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의 정체성과 연결된 사안이기 때문에 미국 평단의 주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계라는 점만 빼면 미국에선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민, 정착의 가정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선 한인들의 고된 이민사를 떠올리게 된다. 극중에서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인데, 바로 이 병아리 감별이 해외에서 한인들의 대표적인 일이었다. 지금도 세계 병아리 감별사의 60%가 한인이라고 한다. 세탁소와 함께 한인 이민사의 애환이 서린 대표적 직업이어서, ‘미나리속 병아리 감별사 부부가 우리에게 각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윤여정이 맡은 역할은 동서양 문화충돌을 상징하기도 하고, 손자와 사랑스러운 테마를 만들기도 하고,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런 점들이 미국 평단으로부터 주목 받았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소수 인종 이슈가 부각되면서 미국 평단이 아시아계를 발견할 태세가 되어있었는데 마침 타이밍도 잘 맞았다.

 

그렇게 시운이 잘 맞은 결과 미국 영화 시상식 32관왕이라는 성과가 나타났다. 아만다 사이프리드, 올리비아 콜맨 등 경쟁자들이 강력하긴 하지만 윤여정 아카데미 수상을 기대하는 것은 그런 시운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얼마 전 몇몇 아시아계 영화들이 아카데미상을 받았지만 연기상에선 배제됐다며 아시아 출신 배우들이 아카데미로부터 홀대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런 비판이 공론장에서 나타난다면 아카데미도 영향 받을 수 있다.

 

작년 기생충에 아카데미가 4개나 상을 몰아주면서도 배우들을 외면했기 때문에 비판 받았었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라도 올해 미나리에 연기상을 수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골든글로브가 미나리에 외국어영화상만 수여해서 논란이 일었는데, 바로 그래서 아카데미가 미나리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대목도 윤여정의 수상을 기대하게 한다.

 

설사 수상이 불발된다 해도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지명된 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 성과다. 윤여정 스스로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어서 얼떨떨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32관왕으로 미국 시상식의 인정을 받았고, 아시아계 배우 차별이라는 유리천장을 깼다. 이런 성과가 또 다른 한국계 또는 아시아계 대중예술인이 인정받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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