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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조선구마사 역사왜곡일까 아닐까

SBS '조선구마사역사왜곡 논란이 뜨겁다. 조선 태종 때 좀비 흡혈귀 같은 괴물이 나타나자, 충녕대군이 국경지대로 가 서역의 구마 신부를 맞이한다는 내용이 방영됐다. 그런데 충녕대군이 서역 신부를 기생집에서 접대하고, 그곳에서 나온 음식이 월병, 피단 등 중국 음식인 것이 문제가 됐다. 태종이 아버지의 환영을 보며 민초들을 학살하는 장면도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사과하면서, 충녕대군이 국경지대에서 이방인을 접대하는 설정이기 때문에 주점 분위기를 중국풍으로 했다고 해명했다. 이 해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 드라마가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안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좀 더 치밀하게 그럴 듯한 표현을 하지 않는지, 그 부분이 더욱 아쉬워진다. 주점 접대 정도의 장면에도 배경 설정을 깔 정도라면 다른 장면들도 더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쉬운 점에 대해선 후반에 다시 거론하기로 하고 현재 논란이 된 역사왜곡부터 보자면, 비판은 가능하지만 비난이 과도하다. 역사왜곡이라고만 규정하는 것보다, 역사오인 소지가 있는 표현과 상상 사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조선에 서양 악귀가 나타나고, 좀비인지 흡혈귀인지 모를 괴물이 나타난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에 역사 인물을 대입한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역사를 들이대는 건 과하다.

 

조선구마사작가의 전작인 철인왕후때도 똑같은 논란이 있었다. 당시 가공의 인물과 함께 실존 역사 인물들이 등장했다. '조선왕조실록 다 지라시네', '언제까지 종묘제례악을 추게 할 거야' 등 대사로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며 비난이 빗발쳤다. 그때도 과도한 비난이었다.

 

정통사극이라면 역사왜곡 여부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하지만 판타지라면 표현의 허용도가 올라간다. ‘철인왕후는 현대 남요리사의 영혼이 조선시대 왕비 안으로 들어간다는 황당한 이야기였다. 아예 판타지이기 때문에 꼭 실제 역사대로 그릴 필요는 없다. 이번 조선구마사도 그렇다. 서양 귀신이 조선에 와서 좀비 흡혈귀를 만들고 조선 왕이 칼을 들고 싸운다. 애초에 역사하고는 거리가 먼 설정이다.

 

실존인물을 그대로 등장시킨 게 문제라고 하는데, 판타지에 어느 정도는 실존인물을 등장시킬 수도 있다. 물론 현대사로 가까워오면 얘기가 달라지고, 옛 역사 인물이라 하더라도 너무 과도하게 왜곡하면 문제가 되긴 한다. 조선말 이후로는 특히 조심해야 하고, 옛 역사라 하더라도 예컨대 한글을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창제했다는 식의 과도한 표현은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게 아니라면 과거 인물을 판타지 캐릭터로 표현하는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개연성이다. 바로 이게 앞에서 언급한 바로 그 아쉬운 점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주점 장면 하나에도 나름의 설정을 깔고 외국풍으로 세팅할 정도의 정성이면 개연성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이 돼야 한다. ‘철인왕후는 너무 말이 안 돼서 시청이 힘들 정도였다. 황당한 상상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단 그 상상의 배경은 말이 돼야 한다. ‘어벤져스에서 초능력자들은 나와도 되지만, 일반인이 갑자기 물 위를 걸으면 말이 안 된다. 이러면 실소가 터지면서 몰입이 깨진다.

 

철인왕후에선 왕비가 남자 연기를 하면서 지나치게 과도한 설정을 하고, 왕한테 반말을 하거나 요리사가 왕비에게 시비를 거는 등 터무니없는 장면들이 등장했다. 작가가 반말에 조예가 깊은지 조선구마사에서도 서역 신부 통역사가 조선 왕자에게 막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말이 안 된다.

 

배경뿐만 아니라 사건의 전후맥락, 캐릭터들의 능력치 등도 모두 합리적이거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조선구마사에선 일개 군관 좀비 하나가 고강도 검술실력에 맨손으로 두개골을 부수는 괴력의 소유자로 그려졌는데, 이런 정도의 능력치가 유지된다면 과연 이야기 전개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충녕대군을 공격한 기생 좀비는 일반인 정도의 힘이어서 1회 안에서 벌써 능력치 일관성이 깨졌다.

 

작품은 이런 개연성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한편 시청자는 역사적 요소 표현에 대해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에서 조금은 유연해지는 것이 좋겠다. 모든 사극이 정통사극 같을 순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판타지라도 역사오인을 초래할 순 있기 때문에 실제 인물을 캐릭터로 활용하는 것에 조심할 필요는 있는데, 그렇더라도 지금 현재 방영중인 작품을 끝내라는 식의 비난은 과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