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이 마침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예측은 했지만 예측과 실제로 받는 것은 다른 문제여서, 진짜 받는 순간에 경탄이 나왔다. ‘기생충도 뚫지 못했던 아카데미 연기상의 배타적인 장벽을 뚫은 순간이다.

 

원래 미국 매체들은 윤여정의 여우조연상을 예측하지 않았었다. 이번 아카데미상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문이 여우조연상이라는 분위기였고, 아만다 사이프리드, 올리비아 콜맨, 마리아 바칼로바 등이 유력하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랬다 어느 순간 윤여정 쪽으로 바람이 불며 윤여정이 압도적으로 우세해졌고 그것이 실제 수상으로 이어졌다.

 

그런 흐름의 계기 중 하나가 윤여정의 말이었다. 윤여정의 영국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나온 고상한 체하는 영국인들이라는 표현을 비롯한 말들이 윤여정을 핫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마치 작년에 봉준호 감독의 말들이 화제가 되며 봉 감독이 점점 더 핫해져서 아카데미 회원들이 몰표를 던진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윤여정의 말들이 화제가 되면서 아카데미 수상 소감도 관심을 모았다. 평소 시상식 소감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나 같은 사람도 귀 기울여 들었을 정도다.

 

 

아니나 다를까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의미 있는 소감을 들려줬다. 일단 첫 마디가 농담이었다. 브래드 피트한테 마침내 만났다고 하며 영화 찍을 동안 어디에 있었느냐고 한 것이다. 익숙한 사람들끼리 모여 한국어로 진행하는 국내 시상식에서도 이런 정도의 자연스러운 농담을 보기 힘들다. 하물며 아카데미 시상식이다. 스크린으로나 봤던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비현실적인 현장이다. 그런 곳에서 세계적인 대스타에게 태연히 농담을 던지는 윤여정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글랜 클로즈를 대배우라고 존중하며, 모든 후보가 각자의 역할을 해낸 승자라고 말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작년에 봉준호 감독이 소감에서 마틴 스콜세지를 언급해 인상 깊었는데 이번엔 윤여정이 글랜 클로즈 언급으로 그런 장면을 만들어냈다. 윤여정이 그 말을 할 때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아이 러브 허"(I love her)라고 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다. 많은 미국 영화인들이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미국 분들이 한국 배우에게 환대를 해주신 결과라고 한 것도 현장을 훈훈하게 만든 말이었다.

 

두 아들에게 감사하고 싶다며, 두 아들이 자신을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었다는 식으로 농담한 것도 인상 깊었다. 이건 윤여정에게 아픈 기억이다. 80년대에 윤여정은 이혼녀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1971년에 이미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스타 출신이지만 드라마 단역부터 다시 시작했다. 두 아들 때문에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궂은 역할 가리지 않고, 남들의 질시, 체면 안 따지고 소처럼 일했던 것이다. 그런 기억조차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김기영 감독을 언급한 부분은 한국영화 입장에서 의미 있는 일이었다. 김기영 감독은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을 만들었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불세출의 명장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이번에 윤여정이 아카데미상에서 그 이름을 언급했기 때문에, 많은 곳에서 조명 받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과거 작가의 위상이 올라가면, 한국영화의 역사가 풍부해지는 것이고 그게 한국영화의 위상 제고로 이어진다. 과거 역사가 텅 비어있는 것보다 위대한 작가로 꽉 차 계보가 형성되는 것이 세계영화계에서 인정받기가 수월하다. 그렇게 되면 후배 한국영화인들이 국제적으로 더 쉽게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윤여정이 과거의 작가를 언급한 것에 의미가 큰 것이다.

 

윤여정이 이번 아카데미 캠페인 기간 동안,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선보인 언행은 누구나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 것이었다. 그런 호감도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여느 꼰대와는 다른 윤여정의 말에 팬이 늘어났을 것이지만, 서구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에 서구권에서 윤여정을 향한 협업 제안이 많아질 수 있다. 윤여정의 국제적 전성기를 기대하는 이유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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