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가 본격적으로 ‘훈남’ 모드에 진입했다. 강마에게서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여태까지 강마에는 ‘까칠’ 모드의 성격이 더 강했었다. 대전환은 강마에가 두루미를 찾아 직접 강원도까지 가면서 분명해졌다.


두루미를 만나자마자 커피에 대한 질문을 하러 왔다는 둥 딴 소리를 하더니 밥도 안 먹고 돌아가자는 까칠함은 여전했다. 그러나 역에서 두루미의 자책을 강마에식 어법으로 달래주며 마음을 드러냈다. 자책할 시간에 열심히 연습해서 무시한 놈들에게 보란 듯이 복수해주라며 격려해주기도 했다.


무조건 감싸주기만 한 건 아니다. 분위기가 로맨틱해지려는 찰나 강마에는 역시 분위기를 깬다. 하루라도 연습을 쉬면 손이 둔해진다면서 즉각 연습할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냉정한 ‘지적질’. 감싸주는 것과 냉정함이 동반된 강마에식 훈남모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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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동안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대하는 태도, 강건우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었는데 요즘 두드러지고 있다. 강마에는 처음에 극히 냉정한 평가지상주의자에 일상적 구조조정 집착증자같은 모습을 보였었다. 그러나 그 안엔 감춰진 심장이 있었다. 마침 강마에 스스로 자기 인생의 차가움에 회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때 두루미의 애정, 강건우의 재능,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열정이 강마에의 심장을 건드렸다.


그 만남은 강마에게서 봉인됐던 ‘정’을 일깨웠다. 강마에는 차가운 두뇌와 따뜻한 심장이 함께 공명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베토벤 바이러스>는 강마에게서 ‘정’이 점차 강화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 냉정함에 정이 더해져 ‘강마에 훈남모드‘가 형성되는 것이다.


심지어 강마에는 열차 안에서 두루미에게 자기 어깨에 기대라고 할 정도로까지 마음을 열고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 1,2회만 보고 곧바로 요즘 방영되는 것을 본다면 기절초풍할 만한 변화다. 강마에는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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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에의 변화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극명히 나타난다. 실력 없으면 잘라버리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왔으면서도, 부실한 단원들을 끌고 가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애쓴다. 예산압박을 거론하는 시장에게 자기 연봉을 줄여서라도 단원들을 끌어안겠다고 할 정도다.


강마에의 리더십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다. 이들은 곧 수많은 한국인이 원하는 그것, 바로 ‘공무원 철밥통‘ 을 꿰찰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도 학벌문화가 드세기로 소문난 한국 예술계에서다. 공무원 퇴직자, 고졸자, 직장낙오자들이 말이다.


강마에가 아무리 얄미운 자세와 표정과 말투를 지키고 있어도, 아무리 ‘싹퉁머리’ 없는 짓을 해도 마냥 흐뭇하기만 한 건 강마에식 훈남모드의 매력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강마에 훈남모드는 극 중에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현실세계에선 시청자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강마에는 잘 하고 있다. 그런데 정확히 무얼 잘 하는 걸까?


-강마에 훈남모드의 한국사회를 꿈꾼다-


강마에가 실력주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는 분석들이 있었다. 차별 없이 실력만 있다면 누구라도 받아주겠다는 실력주의가 차별적 사회에 지친 사람들을 감싸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실력주의를 적용할 경우 한 달에 100만 원 받던 비정규직 주부노동자가 갈 곳은 어디인가? 일개 ‘주부’에서 클래식 연주자 ‘정희연’으로 재탄생한 극 중 인물처럼 백조가 될 수 있나?


강마에의 ‘정’이 중요하다. 실력주의만 있다면 ‘싹퉁머리 없는 지휘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훈남 마에스트로는 될 수 없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도 시청자의 열광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실력주의에 정이 결합됐기 때문에 강마에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리더가 될 수 있었다.


강건우가 강마에에게 좋은 성과를 못 내면 안 받아주실 것 아니냐고 따지자, 강마에는 정말 재수 없는 표정으로 ‘당연하지’라고 한다. 마치 구조조정당한 노동자들에게 ‘너희들이 경쟁력만 있다면 받아주마, 아니면 난 알 바 없다’는 한국사회처럼.


하지만 강마에게는 그 다음이 있다. 단원들을 훈련시켜 능력이 향상되도록 도우며 살 길을 열어준다는 점이다. 동시에 적당한 경쟁의 환경을 부과한다. 그리고 아직 모자라는 점에는 경쟁력을 보조해준다. 이것이 ‘정’의 내용이다. 이것에 감동한 시청자들은 단원들이 강마에에게 냉정히 대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극 중에서 잠시 냉대를 좀 당했다고 보는 이들이 안타까워 할 정도로 그 ‘정’의 흡인력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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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세히 보자.


강마에는 강건우에게 경쟁으로 실력을 보이라면서 벌판으로 내쳤다. 그러나 무작정 현직 오케스트라와 알아서 니 능력껏 경쟁하라는 것이 아니다. 경쟁을 하기는 하되 그 강도를 적당히 조정해주는데, 그것은 곡 선정 등의 지도와 오케스트라를 도와줄 당대의 피아니스트를 붙여주는 것이다. 강마에는 강건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모차르트가 경찰 출신이라고 생각해? 스물다섯 될 때까지 교통정리만 하다가, 어느 날 띡 필 받아서 좋은 곡 우르르 쏟아낸 것 같냐고? 모차르트는 훈련을 받았어. 다섯 살 때부터 작곡을 배우고 피나는 훈련을 했다구. 근데 넌 뭐야? 이제 지휘 배운지 몇 달밖에 안 되는 놈이 재능 좀 있다고 우쭐해서 몇 십 년 음악한 사람들을 따라잡겠다고?“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무작정 경쟁하라고만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시키며, 아직 훈련이 덜 됐을 때는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 당대의 피아니스트라는 보조장치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산업으로 치면 일종의 ‘보조금’이다.


강마에는 훈련할 장소를 직접 물색하기도 하고, 훈련기간 동안의 비용을 자신이 제공하기도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다. 100만 원 받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부가가치가 떨어진다며 냉정히 자르는 것까지는 강마에나 한국사회나 똑같이 하는 일이다. 강마에가 다른 것은 훈련을 물질적으로 보조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능력을 키우면 다시 받아주겠다는 것. 즉 ‘정’이 깔린 토대 위에서 작동하는 실력주의가 강마에식 훈남 실력주의다.


강마에는 두루미를 강원도까지 찾아가 만나는 순간에서까지 ‘훈련’을 강조한다. 직업훈련을 통해 숙련공, 즉 마에스트로가 되라는 것이다. 그 훈련을 위해 지적질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의 비용, 즉 ‘실업급여’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구조조정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런 서비스가 제공됐다면, 기륭전자처럼 처절한 분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강마에 이상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은 국민에게 훈련은 제공하지 않으면서, 기존에 부모 재산으로 쌓아올린 학벌 차별은 점점 더 강화하고 있다. 국민이 살 길을 막으면서 부자들만 자식들에게 ‘철밥통’을 물려주게 하는 체제다. 이런 박탈감이 강마에에 대한 열광을 낳게 한 요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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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훈련을 받아야 경쟁할 수 있다는 강마에의 지적은 극히 타당하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이후 한국에선 이런 상식이 무시되고 있다. 못 사는 집 아이들더러 사교육, 영어 훈련 잘 받은 아이들과 그냥 경쟁하란다. 그리고 한국 산업더러 선진국 산업과 그냥 경쟁하라고 개방을 강행한다. 전 국민이 전 국민에 대해 이유불문하고 경쟁하란다. 그 결과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대기업 이외의 부문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선 패자부활전 오케스트라가 나올 수 없다.


경찰을 하다 스물 다섯 살에 클래식으로 전직하는 설정이다. 이렇게 인생행로를 변경하기 위해선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변경이 어렵기 때문에 한국에선 구조조정을 못한다. 노동자가 결사저항하니까.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는 구조조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국가가 강마에처럼 국민 전체에게 직업훈련과 실업급여, 고용알선, 공공고용 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즉 북유럽은 강마에식 훈남 국가들이다.


북유럽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강마에식 훈남 모델인 것은, 그 나라엔 여전히 경쟁, 실력주의, 냉정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무작정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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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에는 자기가 몰래 소개해준 당대의 피아니스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은 절대 비밀입니다. 그놈 자존심이 은근히 세서 내가 소개했다는 거 알면 안 하려고 할 거거든요.“


자존감을 지켜주는 것이다. 자존감은 극히 중요하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시민도 인재도 될 수 없다. 자존감은 인간의 학습능력, 리더십, 공감능력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강마에는 자신이 돕고 있다는 것을 숨김으로서 오케스트라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스웨덴 모델은 보편적 복지가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교육함으로서 국민의 자존감을 지켜준다. 한국사회는 어렸을 때부터 무한경쟁으로 국민의 자존감을 철저히 파괴한다. 이러니 국민들이 강마에에게 열광하는 것이다.


두루미의 사랑이 강마에를 훈남으로 만들고, 강마에 훈남모드는 보잘 것 없던 사람들을 훌륭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국가가 강마에 훈남모드로 운영되면 한국인 전체가 훌륭한 인재, 경쟁력 있는 노동자가 될 수 있다. 이미 북유럽이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은 잘리는 노동자들을 나몰라라 함으로서 처절한 투쟁만을 양산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잘린 단원들을 투쟁이 아니라 훈련으로 이끈 강마에 훈남모드가 한국사회에 필요하다.


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