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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김명민망신 나라망신의 MBC 막장연기대상



막장드라마의 2008년이었다. MBC 연기대상이 그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제목은 ‘연기대상’인데 송승헌이 받았다. 김명민과 함께. 이건 막장이다. 연기가 없는 묻지마 연기대상. 막장 연기대상이다. 코미디의 한 장면이 아니다. 2008년에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송승헌이 연기대상을 받는 자리에서 조재현이 그 아래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쯤 되면 정말 막 가자는 거다. 송승헌은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 같다’라고 했다. 그렇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김명민이 불쌍해졌다. 그는 작년에 이서진과 나란히 연기대상 후보에 오르는 해괴한 일을 당하더니 결국 대상도 못 받았었다. 그가 작년에 펼친 연기는 불후의 것이었다. 하지만 연기대상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올해에도 그는 불후의 연기를 펼쳤다. 이번엔 상이 갔다. 하지만 송승헌과 함께다. 이건 주최측이 이렇게 공고한 것과 같다.


‘국민여러분 김명민 씨가 지금 받은 상은 연기상이 아닙니다.’


주최측이 김명민이 받은 대상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상을 주려면 제대로 줄 것이지 왜 상과 사람을 우습게 만드나? 최고의 연기를 펼친 김명민은 왜 2년 연속해서 인기스타 옆에서 들러리를 서야 하나? 이럴 거면 연기대상이라는 이름을 내리는 게 낫다.


‘연기대상’이 아니라 ‘인기대상’이다. 이참에 연기대상을 폐지하는 것이 좋겠다. 상 나눠먹기 상조파티에 연기대상이라는 이름은 코미디다. 이런 파티를 공중파로 중계하는 건 전파낭비다. 방송사 구내식당에서 관계자들끼리 모여 상 하나씩 나눠가지고 회식이나 하면 딱 적당하겠다.


 * 상나눔 도움상회 *

 배우 여러분, 그동안 연기하느라 힘드셨죠? 저희 MBC가 연기 부담 덜어드립니다. 이제 연기하지 마세요. 인기만 끌면 상을 안겨주는 고품격 서비스.

이순재 :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상을 나눠 드립니다. 시청률만 잘 나오면 상을 나눠 드리는 묻지마 시상 서비스, 49,990원에 모십니다.

양지운 : 이렇든 저렇든 인기만 있으면 연기고 뭐고 상들이 콸콸콸~


- 작품성이라는 기준은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나? -


<에덴의 동쪽>도 그렇다. 연기상은 당연히 연기가 좋아야 받는 상이지만 그 연기의 배경이 되는 작품의 작품성도 중요하다. <에덴의 동쪽>은 상을 몇 개나 가져갔다. 누가 보면 <에덴의 동쪽>이 2008년 대한민국 최고의 작품인 줄 알겠다. 이건 나라망신이다.


<에덴의 동쪽>은 최근에 주연 중에 한 명이 도저히 극 중 캐릭터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며 하차를 선언한 드라마다. 막장드라마까진 아니지만 일반적인 통속극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기는 있다. 그럼 그걸로 된 거다. 대중성으로 인기와 돈을 거머쥐는 측과 작품성으로 시상식에서 평가 받는 측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인기와 돈이 있는 곳에 예술이라는 딱지가 자동적으로 따라가면 진짜 예술은 어디로 가나?


연기는 분명히 하나의 예술 분과다. 연기자는 예술가이고 장인이고 전문가다. 연기대상은 그 예술적 결실을 평가하는 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인기다? 이렇게 되면 진짜 연기가 설 곳은 없다.


얼마 전에 연예대상에 후보들이 모두 참석한 훈훈한 모습을 보며 배우들도 이런 광경을 보고 배우라는 기사가 떴었다. 뭘 배우라는 건가? 모두 참석해 훈훈한 모습을 연출할 만한 연기대상부터가 없는데. 연기대상을 빙자한 인기대상 코미디극만 있는데. 시상식의 권위고 가치고 뭐고 모두 내팽개친 막장 연기대상에 배우들이 뭐 하러 들러리를 설까?


- 막장드라마왕국 선포식 -


이젠 한국 드라마산업을 외국인들도 주시하고 있다. 자꾸 이런 이벤트를 벌리면 한국의 문화적 권위가 무너진다.(원래도 없었지만) 아카데미가 흥행 1위 오락영화에 나온 젊은 인기 배우에게 연기상을 안긴다고 상상해보라. 오늘날의 권위가 가능했을까? 아니다. 그저 연예잡지에 가십으로나 나오는 시상식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산업의 아우라도 사라졌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그렇게 안 한다. 그들은 인기스타와 연기장인, 흥행물과 명작을 구분한다. 터미네이터가 아카데미상을 휩쓰는 일은 없다. 그래야 자신들의 문화적 권위와 경쟁력이 유지된다는 걸 알고 있다. 당연하다. 그들은 제정신이니까. MBC 연기대상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뒤죽박죽 종합선물세트 묻지마 선물 나눠먹기’로 송승헌 말마따나 ‘말도 안 되는 일’을 벌렸다. 한국은 연기고 작품성이고 뭐고 시청률만 높으면 그만인 막장드라마왕국이라고 세계에 대고 광고한 셈이다.


설마 <에덴의 동쪽>의 흥행을 위해서인가?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의 장사를 위해 연말시상식을 이용했나? MBC 연기대상은 한 편의 거대한 자사 CF였나? 그렇게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도 보일 정도로 황당한 막장 시상이다. 그 속에서 대상을 들고 서있는 ‘연기자’ 김명민의 모습이 정말 어색하다.


연기자를 우습게 만드는 연기대상, 아니 상 나눔 상조파티. 이런 시상식이라면 제발 내년부터는 방송사 구내식당에서 지인들끼리 모여 조촐히 치르기를 권한다. 이건 공해다.


*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시상식문화의 병폐와 공영방송 지키기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공영방송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공영방송이 무너지면 드라마 막장은 기본이고 시사교양도 막장 혹은 안습이 될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