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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홍진경의 어깨뽕 식민지스러웠다

 

이번 주 <야심만만>에서 벌어진 일이다. 각사의 주요 라디오 DJ들이 출연했다. 그중에 홍진경이 있었다. 그런데 홍진경의 옷이 튀었다. 양 어깨가 돌출될 정도로 ‘뽕’이 가득 들어있었던 것이다.


MC들과 출연자들은 홍진경의 옷이 특이하다고 지적했다. 윤종신은 미식축구냐고 하기도 했다. 옷이 그만큼 자연스러워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지적을 받던 홍진경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아니, 이게 무슨 미식축구에요. 유명한 디자이너 옷을 가지고 무슨 미식축구. 패션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면서 ... 챙피하다 증말.“


그래도 사람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이번엔 ‘빠리 컬렉션’을 들고 나왔다.


 “지난 빠리 컬렉션 중에 가장 이슈였구요, 트렌드를 선도하는, 예, 디자이너 발망 작품이에요.”


그래서 어쩌라고? 빠리 컬렉션에서 이슈가 되고, 그쪽 동네에서 트렌드로 낙점하고, 발망인지 뭔지가 만든 옷이라면 한국인이 벌벌벌벌 떨어야 하나?


- 취향인가 식민지근성인가 -


만약 홍진경이 ‘난 이 옷이 좋다. 내 눈엔 좋아 보인다.’ 라고 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이다. 그 옷을 우습게 보는 MC들의 취향도 있는 것이고, 그런 ‘어깨뽕’ 의상을 애호하는 취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홍진경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빠리’,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패션을 정당화하고, 남들의 취향을 무지하다며 비웃었다.


이런 거랑 비슷한 거다. 어떤 애가 친구들한테 이런 식으로 자기 자랑을 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야 이게 서울에서 얼마나 유행인지 알어?‘

 ‘야 이거 미제야!’


보다 우월하다고 생각되는 권위를 빌려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 이것은 보다 우월한 집단이 사용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그것이 대단한 취향이라고 여기는 굴종적 태도와 연결된다.


2009년에 갑자기 한국의 처자들이 ‘어깨뽕’ 의상을 약속이나 한 듯이 ‘입어제끼는’ 이유는? 어떤 기적이 일어나 한국인의 미의식이 일시에 ‘어깨뽕’에 꽂혀서? 아니다.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선진국의 그분들께서 이것이 올해의 트렌드라는 지령을 내렸으므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인은 매주 손담비의 어깨뽕 댄스복을 봐야 했던 것이다. 손담비는 코디가 안티라는 비난을 견디다가, 소녀시대 유리와 비교되는 수모를 겪은 끝에 마침내 지난 주엔 어깨뽕을 뺀 옷을 입었다.


만약 손담비가 시청자들한테 ‘니들이 패션을 알아? 이게 선진국 트렌드야 이거뜨라!’라고 했으면 돌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손담비는 현명하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홍진경이 다른 MC들한테 한 말은 그런 식이었다.


- 한국인의 고질병 -


유행병. 선진국병. 따라하기병. 묻어가기병, 으스대기병. 한마디로 식민지근성. 이것을 홍진경이 보여줬다. 물론 오락프로그램 속의 한 상황에 불과한데, 그 상황이 유행병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뜻이다. 이 글은 홍진경 개인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 아니다. 홍진경의 어깨뽕 개그는 한국인 대다수가 앓고 있는 질병을 드러냈다. 단지 웃고 넘길 일이 아닌 것이 한국에서 실제로 이런 일들이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를 통렬하게 야유하는 은유같았다고나 할까?

 

자기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사회에선 각자가 자기 개성에 자의식과 자부심을 가지므로 선진국 추종과 맹목적인 유행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식민지근성이라는 질병이 만연한 한국사회는 자의식과 자부심이 박약하다.


‘빠리’에서 다음 철에 이것이 유행이라고 지령을 내리면 노예처럼 일제히 따라하는 연예인들. 선진국 트렌드가 들불처럼 번지는 한국의 거리 풍경. 밥은 라면을 먹어도, 선진국 명품 브랜드를 트렌드에 맞춰 신상으로 구입하려는 한국의 처자들. 덕분에 국내 수입명품 시장은 불황에도 여전히 호황이다.


연예인이나 여자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한다 하는 학자들조차도 선진국 학자들의 이론을 누가 더 잘 수입하나로 경쟁하는 판이니 무슨 말을 더 할까? 지식인들이 쓴 점잖은 글을 보면 언제나 유명한 외국 학자의 개념이나 이론이 차용된다. 이렇게 써야 지성적이라고 인정받는다. 식민지근성이 만연해서 그렇다.


아무리 한류가 뜨면 뭐하나. ‘빠리 컬렉션’에 좌지우지되는 식민지에 불과한데. 이런 식이면 한국만의 문화를 창조할 수 없다. 영원히 변방의 아류로서 베끼기나 하게 될 것이다.


내 것, 내 생각, 내 느낌에 대한 자부심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서 어떻게 하건 말건 무시할 수 있는 자부심, 내 것을 놓치지 않는 자의식. 그래야 한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나 문화창조국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소중한 개성, 그 개성 수천만이 모인 나라. 그때가 됐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문화적으로 독립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