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요제가 다시 열려 ‘이대나온여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이름의 팀이 대상을 받았다. 이 팀의 노래에 표절 논란이 일며 잠시 화제가 됐지만, 사실 더 크게 화제가 됐던 건 대학가요제의 몰락 그 자체였다. 우리는 지금 대학가요제가 ‘안습’으로 전락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가끔 대상 받은 팀이 반짝 조명을 받기도 하지만, 이제 아무도 대학가요제 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옛날엔 그렇지 않았다. 한때 대학가요제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초미의 관심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가요제 수상곡이 그해의 히트곡이었으며, 수상자들은 줄줄이 스타로 등극했었고, 대학가요제 자체가 아주 인기 있는 특급 이벤트 대접을 받았었다. 그랬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됐을까?


- 옛날엔 수입만 하면 장땡 -


젊은이들의 서양 팝문화 첨단 수입자 역할이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맹렬히 서양 팝문화를 좇았다. 서구의 새로운 문화를 수입하는 것엔 전통사회에서 자란 기존 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더 유리했다. 그랬던 시절엔 청년문화가 가장 첨단문화일 수 있었다. 열린 마음과 열정으로 수입만 잘 하면 ‘장땡’인 시절이었다.


그런 흐름은 1990년대에 일단락됐다. 1980년대에 한국 가요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90년대에 이르러 서태지, 넥스트, 015B 등이 등장하며 한국 가요가 서구 팝음악의 사운드를 완전히 따라잡은 것이다. 그 후엔 프로페셔널들의 시대로 변했으며, 수입을 하더라도 청년들이 아니라 프로들이나 기업들이 그 역할을 맡았다.


과거와 같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엔 청년들이 구세대들을 제치고 변화를 선도할 수 있었지만, 역량을 우리 내부적으로 갈고 닦는 단계로 진입하자 청년학생들의 미숙함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 상업문화가 모든 것을 삼켜 버리다 -


청년학생들은 아무래도 상업적이기보다는 순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록 미숙하지만 기존 주류 시스템에는 없는 다양한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존재들이다. 만약 우리 사회가 그런 다양한 가능성들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웠다면 청년학생들의 음악제가 이렇게 몰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1990년대 말 이후에 점점 물리적으로 가난해지는 쪽으로, 그리하여 문화적으로도 가난해지는 쪽으로 변해갔다. 일단 입시경쟁 격화로 어렸을 때부터 정신적으로 피폐해졌고, 노동유연화와 구조조정으로 삶의 조건이 극단적으로 변했으며, 노동몫의 하락에 따라 전반적으로 가난해졌다.


사회는 점점 시장화되면서 이윤원리만이 극대화되었다. 한때 돈에 대해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사회에서, 2000년대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TV에서 버젓이 하는 사회로 변해갔던 것이다. 이런 사회에선 문화적 가치도 경제적 가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가요계에선 철저히 시장적 계산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기획사 시스템이 발전해갔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즐길 수 있는 상품만을 제공했다. 어린 아이들이 그런 상품들만을 경험하며 자라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이 10여 년간 계속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문화적 여유가 사라져버렸다.


이런 상황에선 가장 상업적 가치에 충실하며, 동시에 그것을 구현하는 능력도 뛰어난 기업들이 트렌드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 청년학생들이 낄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학가요제보다 기획사 오디션이 더 화제가 되는 시대가 됐다.


- 청년학생들의 오기가 사라져 -


과거엔 청년학생들의 발언권이 대단했었다. 지금은 ‘개무시’당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과거에 청년학생들은 큰 가치들을 논했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등록금 정도에나 쩔쩔매고 있다. 과거에 청년학생들은 주류시스템을 ‘개무시’했었다. 그러면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가치를 찾으려고 했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주류사회에 잘 편입될 것인가만을 고민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독자성을 상실하고 주류사회의 부속품이 된 것이다. 자부심과 개성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주류체제는 ‘개무시’로 화답하고 있다.


과거엔 청소년문화와 기성사회인들의 문화 사이에 청년학생들의 문화가 분명한 존재감을 가지고 생동했다. 지금은 청소년과 함께 기획사의 상품에 열광하며, 기성사회인들처럼 자기계발에 탐닉한다. 별도의 존재감이 사라진 것이다. 옛날 대학생들은 사회가 추종하는 가치들에 대해 ‘웃기지 마라!’라고 오기를 부렸다. 지금은 그런 오기나 무모함들이 사라져버렸다. 기성사회의 가치들을 추종만 하는 한 청년학생들은 절대로 기성사회를 뛰어 넘을 수 없다. 


지금까지 열거한 변화들에 의해 대학가요제 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청년학생들의 존재감이 ‘안습’으로 전락했다. 과거에 청년학생들이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사회가 챙겨줘야 하는 집단이 됐다. 이런 상황에선 청년학생들의 문화가 다시 융성하기 힘들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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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가요제가 몰락하는 것은 저도 슬프지만,
    글이 약간 산으로 간다는 느낌과 동시에
    모든 탓이 청년 개개인에게 돌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하필이면 거대자본이 탄생하고
    나아가 청년들은 시간과 여유가 없어진 것도 사실입니다.

  2. 대학생들의 마인드와 가요계의 흐름자체도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물론 그런 것이 다 상업적인 부분과 맞물려 진행된 것이겠지만요.
    잘 보고 갑니다. ^^

  3. 라모스 2009.10.07 19:10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이럴 때 일수록 대학가요제의 존재가 더욱 빛이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4. 심각하게 이어지다 '동부화재'보고 깜딱 놀랐습니다.

  5. 청년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사회가 학생들을 그렇게 가르치는겁니다 모든 감성들이 매마르게 자랄수밖에없고 그냥 태엽마냥 그렇게 굴러가면서 살아가는걸가르치는 세상에서 그런 청년문화가 사라졌다고 청년들에게 뭐라고 하는건 어른들이 부끄러워해야하는거죠 요즘 자라는 아이들이 나는 무엇을하는 존재인가를 생각하기보다 그저 부모님말 잘듣고 안튀게만 행동하면 중간은 간다라는 사고방식을 넣어준게 이 시대 어른들입니다. 음악 감성이 있어야 할수있는겁니다 좋은대학못갔다고 패배자 취급을 받는 시대를 만들어 즐기고싶은거 못즐기고 하고싶은거 못하고 공부만하는게 정답인것처럼 가르쳤놓고 음악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건 정말 간사한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이세대는 이미 일회용들에 입맛이 길들여져있고 감성따윈 필요없이 모든걸 돈으로 해결할수 있다고 배웠을테니까요 청년들의 대학가요제를 죽인건 이사회와 어른들인데 이제와서 뭐라고 할껀덕지도 없지 싶습니다 ...

  6. 땡깡아 2009.11.03 13:0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그건 아니지
    과거의 어느시대에 훌륭한 어른들이 넉넉하고 좋은 교육을 베풀수 있었더냐
    지난날의 청년문화는 지금보다 분명 좋은 여건이었기에 만들어질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거냐
    무조건 어른탓만하고 보는 그대의 정신연령은 대략10세 전후일 것이다

  7. 예슬아빠 2009.11.03 13:4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공감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나와 별 관련도 없는 이슈들에 대해서도 분개하고, 집회를 하고, 수업을 거부하곤 했었는데... 요즘의 대학생들은 철저하게 성공 공식에 익숙해 있는 듯 합니다. 그렇게 초중고를 다녔고, 대학도 그렇게 다니는 거죠. 과외를 받고, 학월을 다니고, 해외 연수를 가고...

    어떻게 보면 완전히 강자의 논리에 길들여진 거죠. 다양성의 추구나 자유로움이 참 아쉬워 보입니다.

  8. 이 글을 통해 나는 필자 하재근이란 자야말로 사태파악 않고 적당히 글질이나 하는 싸구려 글쟁이로 전락해가는 중이라고 판단된다. 이대나온여자라는 이름이 어처구니가 없다? 그게 정말 잘난척하려고 달고나온 이름이라고 판단하고 있는건가? 마이너 블루스 형식에 가사를 입혀 부른 곡이 표절이라고 하고 싶은건가? 전자에 있어서는 앞서 말했다시피 상황파악 않고 대충 지껄이는 소리에 불과하며,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단연코 무지의 소치다. 아리랑을 예로 들면 그 민요의 기본 형태는 고정적이되 가사와 즉흥은 자유재량이다. 블루스도 마찬가지. 음악적 견해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대나온여자'라는 팀이름에 대한 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비난은 그저 가소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