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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낸시랭의 섹시사진이 예술일까?

 

<강심장>에 낸시랭이 고정으로 등장한 이후 그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최근엔 다른 쇼프로그램에도 등장한 바 있다. 낸시랭의 이런 활동에 대해선 아무런 불만이 없다.


난 낸시랭 보기를 좋아한다. 그녀가 귀엽고 밝기 때문이다. 남성으로서 노출도 반갑다. 낸시랭은 어렸을 때 죄의식을 갖고 보던 성인잡지의 사진을 대명천지에 당당하고 진지하게 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낸시랭 덕분에 도색잡지를 방불케 사진이 언론에 실리기도 한다. 언론 입장에서도 참 고마운 사람일 것이다. 그런 노출 사진을 싣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힘들었는데, 낸시랭이 예술이라는 포장을 해주며 벗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낸시랭의 사진은 섹시화보가 아니라 예술작품이라니 얼마든지 기사화해도 되는 것이다.


보통 낸시랭은 논란을 부르는 도발적인 아티스트라는 이미지로 언론에 소개된다. 이것이 그녀를 여느 섹시화보 연예인과는 다른 대접을 받게 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오늘자 기사에 의하면 <강심장>은 앞으로 그런 낸시랭의 아티스트적 면모를 부각시키면서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고 직접 설명을 들을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건 많이 불편하다.


- 예술가 낸시랭은 반칙이다 -


예쁘고, 귀엽고, 섹시한 연예인 낸시랭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지만, 예술가 낸시랭이라고 하면 불편하다.


어떤 잘 빠진 여가수가 유행가를 부르며 옷을 벗었다. 그 이유는 남성들이 여자가 옷 벗은 모습을 보면 좋아하기 때문이고, 그에 따라 시청률이 오르거나 수입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러면 대중적 지명도는 올라가는 대신에 공론장에서는 욕을 먹는다.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상업적인 행위를 일컬어 ‘예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중의 욕망과 기호에 영합하는 감각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인기와 돈을 챙기는 사람을 예술가로서 존중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연예인이라고 부르며, 그중에서도 여성 육체의 성적인 포인트를 서비스 종목으로 하는 경우는 천대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육체가 끊임없이 상품화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상업적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이런 상업적 세계와 충돌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예술가는 배가 고프며, 대신에 존경을 얻는다. 똑같이 옷을 벗어도 상업세계에선 외설인 것이 예술세계에선 존중받는 것은, 예술적으로 벗을 땐 대중의 욕망과 기호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벗기 때문이다. 부합하기는커녕 역겹거나 추한 모습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낸시랭의 섹시하고 예쁜 모습은 예술행위보다는 상업적 연예행위에 가까워보인다. 상업적 연예행위라고 해서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통해 상업적 이익은 이익대로 취하면서 예술가라는 존중까지 받는 건 반칙으로 생각된다.


- 강심장의 낸시랭 예술가 띄우기는 전파낭비 -


물론 욕망을 자극하는 형태로 벗어도 예술일 수 있다. 그것에 의미가 있을 때 그렇다. 단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서 명성과 돈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때. 보통은 현대사회의 단면이나 모순, 부조리 등을 고발하거나 비꼬는 의미로 그런 표현방식을 취한다.


낸시랭도 그런 의미를 부여한다. 그녀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전쟁터에 사는 사람들에게 꿈과 판타지를 제공’ 운운하는 말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섹시화보를 예술로 바꾸기 위한 포장지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근 인터뷰에서 백수와 루저라는 단어를 경멸적으로 쓴 바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전쟁터를 이해하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모두를 잠재적 백수로, 그리고 루저로 만드는 체제다. 그래서 워킹푸어, 88만원 세대, 청년실업 등의 단어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 나타난 것이다. 이런 구조를 이해한다면 백수, 루저를 경멸할 수 없게 된다. 사회체제가 멀쩡한 국민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까.


낸시랭은 사람들의 항의를 받자, 자신이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백수는 직업유무와 상관이 없다는 엉뚱한 반론을 폈다. 사회경제적 차원에서의 문제의식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가운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니, 그저 허세어린 포장지 같은 것이다.


보통 섹시화보 활동은 연예활동 중에서도 무시당하는 영역이다. 가장 노골적인 상업활동이기 때문이다. 섹시화보 연예인 중의 한 명인 솔비가 낸시랭에게 ‘당신은 뭐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에 공감이 가는 것은,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봤을 때 낸시랭의 예술작품과 섹시화보 사이에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섹시화보 연예인이 무시 받을 때, 낸시랭은 비슷한 섹시화보 활동을 통해 이익을 취하면서도 예술이라는 존중까지 받는다. 소녀시대는 스키니진만 입어도 지나치게 야하다, 상업적이다라는 비난을 들었다. 올여름 걸그룹들도 인기와 상관없이 그런 비판을 들었다. 반면에 낸시랭은 상업적인 필살 아이템인 여성의 육체를 더 노골적으로 팔면서도, 존중이라는 이익까지 이중으로 얻는 것이다.

 

이젠 <강심장>에 예쁜 모습으로 출연하며, 자신의 예술(!)까지 부각시킨단다. 공중파에서 낸시랭의 예술론까지 들어야 하나? 연예인으로서의 낸시랭, 연예활동으로서의 섹시사진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심지어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이 예술이라는 허울까지 얻는 건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