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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이다해보다 신세경이 행복했다

 

<추노>에서 민폐녀로 찍혀 아직까지 욕을 먹고 있는 여배우가 이다해다. 그녀의 심경이 담긴 인터뷰 기사가 나와서 흥미롭다.


이다해는 <추노>에서 죽고 싶었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시청자들의 욕을 많이 먹었는데 막판에 죽으면 시청자의 화도 풀릴 것이란 이유. 둘째는 죽으면 강한 임팩트가 남는다는 이유다.


둘 다 맞다. 대체로 죽으면 나쁜 것은 용서 받고 좋은 기억이 극대화된다. 또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여운이 남는 캐릭터로 기억된다. 강렬한 인상도 남는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는 얘기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신세경도 죽고 싶어 했었다. 신세경은 자신의 바람대로 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다해는 죽지 못했다. 장혁이 죽는 것에 들러리로 섰을 뿐이다. 장혁이 장렬하게 죽기 위해 이다해는 살아야 했다. 그래야 장혁이 모든 것을 다 주며 여자를 지킨 사랑의 주인공이 되니까. 그다음엔 송태하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으로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들러리로 섰다. 그게 끝이었다.



이것이 이다해가 맡은 캐릭터와 신세경이 맡은 캐릭터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다해는 보조 캐릭터였고 신세경은 중심 캐릭터였던 것이다.


막판에 죽는 건 제작진이 사랑하고 역량을 집중한 캐릭터들의 특권이다. 그것이 <추노>에선 장혁이었고, <지붕 뚫고 하이킥>에선 신세경이었다. 물론 장혁의 죽음은 감동을 주고, 세경의 죽음은 울화를 줬다는 점에서 질적인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핵심 캐릭터라서 막판에 죽을 수 있었다.


이다해에겐 결국 그런 비중이 끝까지 허락되지 않았던 셈이다. <추노> 초반에 이다해는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그때 제작진은 후반부에 이다해의 캐릭터가 변화될 예정이니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빈말이었다. <추노>는 장혁, 오지호, 공형진 등 남성 캐릭터들에게만 에너지를 집중했다. 이다해는 끝까지 겉돌았다. 활기가 살아나지도 않았고, 능동성이 살아나지도 않았다. 막판엔 아기나 돌봤을 뿐이다. 장혁과 오지호 사이에 뜨거운 열기가 돋아날 때도 병풍으로 그 옆에 있었다.


작품 자체가 여성 캐릭터에겐 무심한 것 같았다. 예컨대, 초반에 인상 깊게 등장했던 설화도 중반 이후부턴 ‘청승 눈물 + 민폐 징징’의 무의미한 캐릭터로 전락했다. <추노>는 끝까지 남성들만을 부각시켰다. 이다해는 심지어 악역인 이종혁(황철웅)보다도 존재감이 없었다.



<추노>는 그렇게 이다해에게 비중을 주진 않으면서, 노출을 시키고 모자이크를 하고 선녀 같은 캐릭터 표현을 하도록 해 욕은 있는 대로 다 먹게 했다. 그야말로 비운의 이다해다. 죽고 싶은데 죽지도 못했던 그녀. 막판에 남의 죽음이 돋보이도록 장식해주는 역할이었고, 그래서 장혁이 멋지게 돋보였는데, 비난은 마치 주연이 작품을 망치기라도 한 것처럼 많이 들었다.


이다해가 남성 캐릭터에게 치인 건 <추노>가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에덴의 동쪽> 당시에 악플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아 인터넷을 안 볼 정도까지 됐었다고 한다. 바로 그 <에덴의 동쪽>에서도 그녀는 남성 캐릭터에게 치여 비중은 비중대로 줄고, 캐릭터는 무의미한 병풍 캐릭터가 됐으면서 욕은 욕대로 다 먹었다.


<에덴의 동쪽>이 송승헌을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느라 이다해 캐릭터를 삼천포로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부유하던 그녀는 결국 하차를 결단했다. 이 일을 전후해 욕을 그렇게 먹었던 것인데, <추노>에서 남성캐릭터를 위한 병풍으로 욕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입하는 일을 또 당했다. 그 욕을 아직도 먹고 있으니 확실히 비운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했다는 이다해의 고백을 뒤늦게 들으니, 원하던 대로 죽을 수 있었던 신세경이 그래도 행복한 배우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