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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신언니'가 진짜로 시작됐다

 

<신데렐라 언니>는 ‘신데렐라의 언니’가 아니라 ‘신데렐라인 언니’라는 말이 있었다. 1~4회에서 언니인 문근영이 선역이고 동생인 서우가 악역이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서우가 워낙 얄미워보였기 때문에 도저히 신데렐라 같지가 않아서, ‘신데렐라인 언니와 팥쥐 동생’ 이야기, 혹은 ‘캔디 언니와 이라이자 동생’ 이야기 같았다. 초반에 <신데렐라 언니>는 진짜 ‘신데렐라 언니‘  이야기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서우의 역할인 효선이었다. 효선이가 착하고 불쌍해보여야 은조가 ‘신데렐라의 언니’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은조는 ‘욕심 많은 팥쥐의 언니’ ,‘심술장이 이라이자의 언니’가 될 뿐이다. 졸지에 팥쥐가 된 효선 역의 서우는 시청자의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심지어 발연기 논란까지 일어났다. 미운털이 완전히 박혀서 하나부터 열까지 욕을 먹었던 것이다.


5회에서 마침내 서우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재투성이 신데렐라의 면모가 나타난 것이다.



- 불쌍한 서우에게 입이 생기다 -


<신데렐라 언니> 5회에서 펼쳐진 ‘효선이 신데렐라 만들기 프로젝트’의 시발점은 효선이의 독백이었다. 1~4회에서 <신데렐라 언니>는 철저히 은조의 관점만을 보여줬고, 은조의 독백만을 들려줬었다. 그건 시청자에게 은조를 사랑하고 효선을 미워해달라고 신호를 보낸 것과 같았다.


5회에서 마침내 서우에게 입을 만들어줬다. 시청자는 효선이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니에게 기훈이 오빠와 자기가 만나고 있다고 얄미운 말을 하고서는, 속으로 아파하는 그 여린 마음을 말이다.


이 세상에 100% 악인이 얼마나 될까? 보통은 선악이 공존하는 약하고 불완전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면,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에게 애정이 생기고 연민이 생긴다.


그런 까닭에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주인공의 사정을 이해시킨다. 그런 과정을 통해 한양 주민들에겐 개차반 추노꾼일 뿐인 대길이를 시청자가 사랑하게 되고, 출세에 집착하는 악덕의사일 뿐인 <하얀거탑> 장준혁이 연민의 대상이 된 것이다. 반면에 악역의 사정 따위는 잘 알려주지 않는다.


<신데렐라 언니> 5회는 효선이의 사정을 부각시켰다. 1~4회에서 은조가 혼자서 아파하는 모습만을 보여줬던 것과 달리, 효선이가 외롭게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은조의 독한 말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새엄마의 여우짓에 모함당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이러면 더 이상 미워할 수 없게 된다. <신데렐라 언니>가 서우에게 병주고 약준 것이다.



- 연약한 희생자가 된 효선 -


극중에서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시청자는 그를 동정하게 된다. <신데렐라 언니>는 5회에서 서우가 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4회에서 모든 것을 독식하고 은조마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언니로 만들려고 보채는 그 효선이가 아니었다.


1~4회에선 은조가 효선이에게 엄마를 뺏겼었는데, 5회에선 효선이가 새엄마 모녀에게 아빠를 뺏겼다. 은조가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엄마와 함께 행복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여 밉상이 된 그 효선이는 없었다.


효선이는 그나마 사이가 좋았던 새엄마마저 남동생에게 빼앗겼다. 효선이는 명품으로 새엄마의 사랑을 얻으려 안간힘을 쓸 뿐이다. 하지만 새엄마는 효선이를 물욕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이용한다. 이건 교묘한 학대다. 효선이는 망가졌다. 애정결핍을 쇼핑중독으로 채우는 된장녀가 되고 자존감이 파괴됐다. ‘난 꿈이 없어’라고 자기비하하면서 우울에 빠져드는 아이. 1~4회 효선이의 가증스러움을 새엄마가 가져가면서 효선이를 밉상에서 구원한 것이다.


이제 효선이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다 가지려 하는 ‘독식녀’가 아니다. 안타까움만 남은 ‘불쌍녀’일 뿐이다. 그런 효선이에게 ‘넌 꿈이 뭐니? 작정이란 게 계획이란 게 너한테 있기나 하니?’라는 은조의 말은 가시가 되어 심장에 박혔다. 그 가시는 계속해서 효선이를 찌른다.


1~4회는 은조가 상처를 자기 안에 갈무리하며 혼자 그 아픔을 삭이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에, 효선이는 남들에게 자기 상처를 감싸달라고 ‘찡찡대는’ 모습만을 보여줬었다. 5회는 효선이가 홀로 상처를 달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은 감싸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므로 효선이가 돌아온 기훈에게 안겼을 때 더 이상 얄밉게 보이지 않았다. 만약 1~4회에서 기훈에게 안겼다면 밉상 여우짓이라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5회는 효선이가 당하는 모습과 그녀의 상처를 먼저 보여줬기 때문에, 불쌍한 아이가 모처럼 마음 기댈 곳을 찾아 그 품에 파고드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느껴졌다. 기훈의 팔에 의지하는 모습은 마치 가냘픈 새 같았다.


은조와 기훈의 시선이 서로 얽힐 때, 소외감을 느낀 효선이가 옆에서 나지막이 한숨을 쉬는 모습도 불쌍해보였다. 효선이가 기훈과 둘이 있게 됐을 때 ‘왜 이제 왔냐’며 울먹울먹하는 모습이 마치, ‘나 그동안 시청자들한테 야단 맞았어’라고 하소연하는 것 같아서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문근영이 보여줬던 위악적인 모습도 5회에선 서우의 몫이 됐다. 언니에게 공격적인 말을 툭툭 내뱉지만 그것은 사실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달라는 비명처럼 들렸고, 한편으론 더 이상 착한 척하지 않는 시원시원함으로도 보였다. ‘너 예쁘다’는 언니의 칭찬에 감동하는 순수함도 보여줬다. 가식적이지 않고 시원시원하면서 여리고 위악적인 성격과 칭찬에 금방 감동하는 순수함. <부자의 탄생> 부태희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는 밉상이 될 수 없다.


<신데렐라 언니>가 악역이었던 효선을 선역으로 변신시킨 것이다. 효선은 더 이상 팥쥐도 아니고 이라이자도 아니다. 새엄마의 여우짓에 상처 입은 어린 새로서, 효선이는 이제서야 진짜 ‘신데렐라’가 되었다. 감싸주고 싶은 ‘신데렐라의 언니’와 역시 감싸주고 싶은 ‘신데렐라’의 이야기. <신데렐라 언니>는 이제 비로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