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빠가 은조를 울렸습니다. <신데렐라 언니>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는 논의가 있었죠. 아무 것도 모르고 이미숙에게 당하기만 하는 ‘바보’ 아저씨, 김갑수가 제일 불쌍하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병실에서 은조는 엄마에게 아빠를 정말로 사랑한다 말해달라고, 뜯어먹을 게 있어서 곁에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좋아해서 곁에 있는 거라고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그건 ‘신뢰할 만한 관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달라’는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하지만 이미숙은 코웃음을 치며 ‘뜯어먹을 게 있어서 좋아한다’고 일축해버립니다. 그건 ‘이년아 세상에 그런 따뜻함은 없어’라고 은조의 심장을 후벼 파는 일이었지요. 바로 그때 김갑수가 병실문을 여는 것이 지난 주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7회에서 김갑수는 이미숙의 말을 듣고 힘없이 병원을 나섭니다.


우리의 마음 여린 아가씨, 은조는 새 아빠의 상처를 염려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김갑수가 이미숙의 여우짓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당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다 알면서 감싸줬던 겁니다. 김갑수는 은조의 상처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조가 그렇게 정 떨어지게 행동한다는 것까지 말입니다. 김갑수 캐릭터가 불쌍한 순진남에서 위대한 대인배로 격상되는 순간입니다.


은조는 혼란에 빠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뜯어먹으려고 붙어있는 걸 뻔히 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왜 버리지 않는 거야?’ 새 아빠에게 그걸 묻습니다. 김갑수는 대답하지요.


“상관없다. 내가 니 엄마 좋아하니까.”


“제가 어떻게 해야 돼요?”


“날 버리지 마라.”



은조는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차갑고 냉소적인 캐릭터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은조는 지금까지 거의 매회 우는 모습을 보여준 울보 아가씨였습니다. 하지만 7회에서 은조가 흘린 눈물은 지금까지의 눈물과 달랐습니다. 7회에서 은조의 눈물은, 심장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 은조 울린 새 아빠 -

뜯어먹고 뜯어먹힐 뿐, 인간적인 관계나 신뢰할 만한 사랑이란 없다고 믿었던 은조. 엄마도 자신도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믿었던 은조.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가시 돋친 갑옷으로 자신을 감싸고 남을 찔러대던 은조. 은조는 여태까지 홀로 살아온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곁을 지켜주는 아버지가 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이 아닌 그 속에 있는 실체를 고스란히 알면서 사랑해주는 사람. 즉,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안아주는 사람.


아버지는 뜯어먹거나 먹히는 것과 상관없이 사랑하고 지켜주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신뢰를 은조에게 안겨줬습니다. 아버지가 은조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 내 곁을 지켜달라는 것.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관계는 가족입니다. 상처 입은 ‘어린 아이’ 은조에게 드디어 따뜻한 가족의 품이 생긴 겁니다.


아무도 믿지 못하고 외로움에 떨던 은조에게 그것은 엄청난 사건이었지요. 마침내 은조 마음 속에 있는 ‘어린 아이’가 그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은조와 새 아빠가 경찰에게 조사 받을 때 조바심을 내는 은조의 손을 꼭 잡아주며 아버지가 말하죠. “괜찮아.” 그때 은조는 아버지를 애처로운 눈으로 응시합니다.


은조에겐 ‘괜찮다’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겁니다. ‘괜찮아. 그렇게 조바심 내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넌 사랑받을 만한 아이야. 걱정하지 마.’



은조는 기훈에게도 마음을 열었었습니다. 기훈은 은조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뜯어먹을 게 없어도 웃어주고, 은조의 이름을 불러주며, 곁에 있어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 마음의 문을 열려는 찰나 갑자기 떠나버렸죠. 기훈이 떠난 건 은조에겐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인 일이었고, 더 차갑게 세상을 향한 문을 닫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지속적인 사랑에 대한 신뢰는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은조에게 필요한 건 은조를 안아주면서 언제나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지, 자기 필요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은조는 어렸을 때 부모와 애착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오로지 가식으로 똘똘 뭉친 엄마의 행태도 상처였지요. 기훈이 훌쩍 떠나버리며 은조의 심장엔 비수가 꽂혔습니다.


8년의 시간이 지난 후 새 아빠가 그 상처를 어루만져준 겁니다. 하지만 <신데렐라 언니>는 은조를 불쌍하게 보이려고 작정했는지 7회 후반부에는 효선이와 아버지가 정겹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죠. 마치 초반에 은조가 엄마를 필요로 했을 때 효선이가 엄마를 독차지한 모습을 보여줬듯이 말입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7회 마지막에 김갑수를 쓰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은조의 치유는 미궁에 빠져버렸습니다. 홀로 된 은조는 다시 상처를 끌어안고 아파하겠네요.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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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읽는 동안에도 울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녀 간의 러브라인을 강조하는 드라마 보다
    인간 관계의 감성을 건드리는 이런 드라마가 저는 참 좋습니다..
    한번은 만나봤음직한 혹은 한번은 만나봤으면 하는 사람들..
    네 멋대로 해라,추노,신데렐라언니...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의 스쳐지나는 많은 사람들의 관계를 담고 있어..
    그 여운이 오래가고 있는 듯 합니다.
    어제 병실 문을 나간 후에 나눈 김갑수,문근영 대화는
    지금까지 마음 한켠 먹먹해지고 있고 글을 읽어내리면서도 또 눈물이 나네요.
    은조의 감정선을 가장 잘 파악해주신 듯한 글이구요.
    기훈의 빈자릴 채워준 은조새아빠의 믿음을 통해 마음의 문을 연 은조에게
    또다시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8회 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 좋은 글 2010.04.22 13:50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잘읽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마음에 와 닿는 리뷰를 읽는건 드라마를 두배로 즐기는 방법인것 같습니다. 좋은 리뷰 계속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