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시크릿가든>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이른바 '시가앓이'다. 시청률이 대단히 높은 건 아니었지만 시청률 이상의 신드롬이었다. 방송3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모두 <시크릿가든> 패러디가 나오는 것이 그 신드롬을 상징한다. 남자주인공인 현빈을 극중에서 '똘추'(또라이추리닝)으로 만든 문제의 트레이닝복은 예능인들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도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시크릿가든> 관련 설정이 나와 이 드라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네티즌 시청자들이 열병을 앓았다. <시크릿가든> 공식 홈페이지의 일일 페이지뷰가 1100만 건을 돌파했을 정도다. 보통 드라마의 페이지뷰가 100만 건 수준이어서 이것은 당분간 깨지기 힘들 대기록이라고 한다. 일시 접속자가 너무 많아 홈페이지가 마비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현빈과 하지원의 일거수일투족에 울고 웃으며 이 드라마에 열광했다. 가히 <지붕 뚫고 하이킥> 이후 최강의 로맨스였다.

소재로만 보면 이런 열광을 이해하기 힘들다. <시크릿가든>에 나온 소재들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어서, 네티즌들이 '사골'이라고 비웃을 정도였다. 재벌과 신데렐라 스토리, 악착같이 반대하는 사모님, 기억상실, 혼수상태, 말만 들어도 짜증나는 닳고 닳은 설정들인 것이다.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도 그다지 흥미로울 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을 열광케 한 <시크릿가든>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 유쾌하고 통쾌한 구성 -

<시크릿가든>은 기본적으로 화사하고 유쾌했다. 이것만으로 큰 미덕이 된다. 세상살이가 우울하기 때문에 유쾌하고 밝은 이야기는 시청자에게 위안을 준다. 유쾌하다는 게 말은 쉽지만 그걸 표현하는 건 난감한 일이다. 예컨대 <개인의 취향>은 화사한 화면에 코믹한 설정을 연발했지만 시청자를 그다지 유쾌하게 만들지 못했다. 흥행에 실패한 대다수 트렌디 드라마들이 이런 전철을 밟는다.

반면에 <시크릿가든>은 대사가 반짝반짝 빛났다. 현빈과 하지원 사이에 오고가는 대사들은 너무나 감각적이고 톡톡 튀는 것들이어서 상황의 진부함을 날려버렸다. 작가의 전작을 비트는 등 능수능란한 패러디도 요즘의 감각에 맞았다.

설정도 빛났다. 예컨대 기억상실이 그렇다. 기억상실은 사골 소재인데, <시크릿가든>은 기억상실 이후의 설정을 비틀어서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여주인공이 울고 짜면서 극이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둘의 사랑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비틀기였다. 하지원은 '아드님을 제게 주십시오'라며 더 적극적으로 변했고, 현빈은 21살의 김주원도 사랑할 것 같다는 하지원에게 '그... 그럴래?'라고 수줍게 말했다. 이것은 달달함의 극치였고, 소재의 진부함 따위는 설 자리가 없었다.

<시크릿가든>은 또 통쾌하기도 했다. 현빈이 '톡 까놓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현빈이 얄밉도록 솔직하게 자신의 특권신분을 과시하자, 재벌이란 설정이 짜증나는 사골에서 상큼한 개그 아이템으로 탈바꿈했다. 요즘 톡 까놓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다. 시청자는 그런 직설 토크에 통쾌함을 느끼는데, <시크릿가든>도 그런 종류의 통쾌함을 줄 수 있었다.

- 너무나 멋진 현빈 -

'엄친남'이 대세다.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부잣집 아들. <시크릿가든>은 그런 당대의 욕망이 극대화된 남자주인공을 만들어냈다. 현빈은 일반적인 엄친남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초 엄친남'이었다. 잘 생기고 능력 있는 것은 기본인데다가, 키 크고 스타일리쉬하고 따뜻하고 달콤하고 헌신적인, 그러면서 동화 같은 집에 사는 남자였던 것이다.

그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천애고아 여주인공의 흑기사를 자처했다. 여주인공의 꿈이 좌절될 뻔하자 그는 전세기까지 불러 여주인공을 도왔다. 이런 흑기사 캐릭터는 2010년에 '서변앓이', '걸오앓이' 등의 신드롬을 불러일으켰었다. <시크릿가든>에서 현빈의 캐릭터는 가히 흑기사의 끝장이라 할 만했다.

당연히 여심이 반응했다. 남자주인공의 매력은 시청자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 현빈은 여기에 정말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하늘이 내린 캐스팅이다. 그는 원래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출연했다. 잘 되는 드라마는 이렇게 넘어져도 황금밭으로 넘어진다.


- 흑기사를 부르는 마성의 눈빛, 하지원 -

여기까지였다면 인기 드라마는 됐을 것이지만,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는 건 힘들 수도 있었다. <시크릿가든>에는 유쾌함, 멋짐, 달달함을 뛰어넘는 거대한 한 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픔'이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신분차에서 오는 아픔. 이런 종류의 설정은 흔하디흔한 것이지만 거기에서 절절한 아픔을 길어내는 드라마는 많지 않다. <시크릿가든>은 아주 많이 아팠다.

여주인공인 하지원의 눈빛이 <시크릿가든>의 아픔을 상징한다. 현빈과 하지원의 달달하고 유쾌한 로맨스가 진행되는 사이사이에 하지원은 처연한 눈빛으로 현빈을 쳐다봤다. 현빈이 자신과 하지원 사이의 계급차를 상기시킬 때마다, 하지원을 무참하게 만들 때마다 그랬다. 그때 OST인 '그여자'가 흘렀고, 이것은 시청자의 심장을 아리게 만들었다.

그 아픔 때문에 시청자는 폐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원은 이미 전과가 있는 배우다. <다모> 때도 바로 이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픈 눈빛으로 시청자를 테러했다. 그녀의 눈빛은 그 대상인 남성을 흑기사로 만든다. 사랑이 애절해지고, 남자주인공이 뜨고, 시청자는 그들의 사랑을 지켜주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게 된다. 그래서 이번에 <시크릿가든> 홈페이지가 마비됐던 것이다. 그들의 사랑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시청자들의 봉기였다.

1년 전 최강 로맨스였던 <지붕 뚫고 하이킥>도 유쾌하면서 아팠다. 거기에선 식모가 주인집 의사 아들을 사랑했다. 그 식모(신세경)이 눈물 흘릴 때 시청자도 함께 울었다. 그들이 죽었을 때 시청자들은 치를 떨며 분노했다. 이것이 신분차(계급차)에 기반한 아픈 로맨스의 힘이다. <시크릿가든>은 네티즌 감각의 톡톡 튀는 표현법으로 이런 전통적인 멜로의 정곡을 찔렀다. 그래서 신파가 아니면서도 충분히 아팠고, '앓이'에 빠진 폐인군단을 양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청자가 모두 이 아픈 사랑이야기의 흑기사가 되었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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