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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시크릿가든, 불쌍한 하지원이 문제다

<시크릿가든>이 시청자들이 그렇게도 바라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이 안 좋다. 조급하게 제작하느라 완성도가 떨어진 측면도 있지만, 뭔가 이야기 자체에 맥이 빠졌다는 느낌을 준 것이 그 이유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시크릿가든> 신드롬을 가능케 한 핵심적인 원인을 알 수 있게 된다. 보는 사람을 강렬하게 사로잡으며 폐인들을 양산했던 핵심적인 그 무엇인가가 사라졌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맥이 빠졌다고 느낀 것이다.

대부분의 매체들이 <시크릿가든> 신드롬의 이유를 감각적인 대사나 현빈의 멋진 캐릭터에서 찾았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마지막까지 여전히 있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허전함을 느꼈다. 무엇 때문일까?

'아픔'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대부분의 매체들이 간과한 <시크릿가든> 신드롬의 진짜 이유였다. 그렇다고 감각적인 대사나 현빈의 캐릭터가 무의미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도 당연히 인기의 이유였다.

감각적이고 경쾌한 구성은 시청자를 유쾌하게 했다. 현빈의 직설적인 왕자님 캐릭터는 통쾌하고, 후련하며, 멋졌다. 이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기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시크릿가든>에 격렬하게 몰입하며 '앓이'를 하게 한 것은 그런 이유들에 더해진 아픔의 존재였다.


- 불쌍한 하지원이 문제다 -

'불쌍한 하지원'이 문제다. <다모>에서도,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도 하지원은 불쌍했다. 그녀가 불쌍해 질 때마다, 그래서 그 처연한 눈빛을 선보일 때마다 폐인들이 양산된다. 하지원만이 할 수 있는 눈빛 테러다.

하지원을 불쌍하게 하는 것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차/계급차의 대상이다. <다모>의 종사관,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의 재벌2세, 그리고 <시크릿가든>에서의 재벌3세.

<다모>에서 하지원은 천인 신분이었고,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는 친구집에 얹혀사는 신세였고, <시크릿가든>에서는 친구와 옥탑방을 나눠 쓰는 신세였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은 하지원이 사는 집을 보며 '서울에 이런 동네가 다 있었어?'라고 했고, <시크릿가든>에서 현빈은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나 나올 법한 집이라고 했다.

그나마 <다모>의 남자주인공들은 하지원을 따뜻하게 대해주기라도 했지만, <발리에서 생긴 일>과 <시크릿가든>의 남자주인공들은 툭하면 하지원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조인성은 '나 사실 너한테 별 관심 없거든?'이라며 그녀를 무참하게 했고, 현빈은 '난 너랑 결혼할 생각 없다. 적당히 곁에 있다 물거품처럼 사라져달라'며 역시 그녀를 무참하게 했다. 조인성은 하지원에게 돈을 뿌렸고 현빈은 자신의 신분을 자랑했다. '너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거든?'

그럴 때마다 하지원은 예의 그 아픔 눈빛을 선보였다. <시크릿가든>에선 백지영의 노래가 그 정서를 더 심화시켰다. 이러면 시청자도 함께 아파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드라마에 깊숙이 빠져들고, 간절히 해피엔딩을 열망하며 게시판 시위를 하게 된다.

<시크릿가든> 마지막회에는 이런 아픔의 정서가 없었던 것이다. <시크릿가든>에서 아픔의 정서가 얼마나 중요한 지는 처음에 영혼이 바뀌었을 때도 짐작할 수 있었다. 영혼이 바뀌자 드라마는 아주 밝기만 한 코믹극으로 변모했고 그 전까지의 열풍이 사그라들었었다. 둘의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온 후 현빈이 하지원을 아프게 하자 다시 열풍에 불이 붙었다.


- 저평가된 하지원 -

<시크릿가든>에선 유난히 현빈만 화제가 됐다. 마지막회가 방영된 날 보도된 기사의 키워드도 '주원앓이'였다. 물론 현빈의 멋진 캐릭터가 작품의 화제성에 큰 역할을 했지만,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시크릿가든> 신드롬의 핵심은 아픔이었고 그 아픔을 절절히 보여준 사람은 하지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에 대한 언급이 너무 없다.

그녀는 유난히 상대 남자배우들을 돋보이게 한다. <다모> 때도,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도 그랬고 이번 <시크릿가든>도 그렇다. 그녀가 워낙 아픈 캐릭터를 연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성 캐릭터의 강함이 부각되고, 그녀를 감싸주는 흑기사적 면모도 부각되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최하층의 배역들을 맡기 때문에 상대 남자의 화려한 신분도 부각된다. 강하고, 여자가 기댈 수 있고, 돈 많은 화려한 남자. 이 시대가 선망하는 인물 아닌가. 그래서 하지원의 상대역들이 계속 뜨는 것이다.

반면에 하지원은 불쌍한 역만 맡는 데다가 김태희, 전지현, 송혜교, 한가인 같은 화려한 미인도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시선을 덜 받는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들이 그렇게 절절한 아픔의 정서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고, 폐인들도 양산하지 못했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시크릿가든>이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이래로 각종 매체들은 감각적인 대사와 현빈의 캐릭터에만 주목했고, 그래서 아쉬웠다. 신드롬의 바탕이 된 하지원이 지나치게 저평가됐기 때문이다.

그녀가 단지 얼굴이 예쁘고 귀여운 표정을 잘 지으며 코믹하게 망가질 줄만 아는 배우라면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는 충분히 소화해냈겠지만, 툭하면 폐인을 양산하는 그런 아픔을 시청자에게 느끼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원은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다. 백지영의 목소리를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처럼 하지원의 눈빛도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눈빛과 연기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다모>, <발리에서 생긴 일>, <시크릿가든> 같은 작품들이 계속 그녀를 원하는 것일 게다. 그녀는 기대에 200% 부응했다. 시청자들은 언제나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며 폐인이 되었다. <시크릿가든>의 결말이 아프지 않자 실망이라며 '앙탈'을 할 만큼. 개인적으로 해피엔딩 마니아이기 때문에 현재의 결말에 불만은 없다. 그것과 별개로 <시크릿가든>을 보는 동안 하지원의 눈빛 때문에 아팠고, 그래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