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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SM의 이수만을 해부하다

 

이수만은 살아있는 신화다. 영미와 일본 중심으로 공고하게 짜인 세계 대중문화계의 헤게모니 구조에 ‘한류폭탄’을 투척한 사람이다. 처음엔 도시락 폭탄 정도인 줄 알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폭발력이 커져 이젠 세계를 융단폭격할 정도가 되었다.

 

한 마디로 역사를 새로 쓴 사람이다. 한민족 역사상 이런 정도로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린 이가 없었다. 물론 이수만의 SM이 일군 한류는 주로 중화-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에 집중되어 있다. 싸이 신드롬 정도의 사건을 영미권에서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SM이 이룩한 성과만 해도 엄청난 것이다.

 

HOT를 통해 한류라는 말이 시작되고, 동방신기와 보아를 통해 일본 신한류 형성의 토대를 닦았으며, 소녀시대로 마침내 신한류를 현실화시켰다. 그리고 싸이 현상에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수만에게서 한류가 시작되고, 그 흐름 속에서 YG의 세계 팬덤이 형성됐으며, 그것을 통해 싸이가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히 한류의 시조다. 공장제조식 아이돌과 패스트푸드 같은 상업적 음악으로 일군 성과이긴 하지만 어쨌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이수만은 아마 위인전기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건 그런 이수만을 조명한 본격적인 분석서가 아직 없었다는 점이다. 지식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차에 <이수만 평전>(공희준 안윤태 공저, 정보와사람)이 등장했다. ‘대한민국 문화산업 개척자에 관한 보고서’를 표방하고 있다. 두께가 무려 800여 쪽(!)에 달한다. 대중문화 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랑말랑한 에세이류는 아닌 것이다. 그야말로 평전이다.

 

필자도 대중문화계 인물이 아니다. 대중문화계 인물이라면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수만을 미화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필자들은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책의 신뢰성이 조금은 더 올라간다.

 

책의 내용은 그야말로 장대하게 펼쳐진다. 그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새로운 문화적 조류에 충격을 받은 후, 한국에 돌아와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는 이야기에서부터다. 이것을 보면 당시만 해도 미국과 한국 사이에 문화적 시차가 10년 이상 벌어져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수만이 미국에서 1980년대에 경험한 게 한국에선 1990년대에 실현됐으니까 말이다.

 

그 차이를 좁힌 사람이 어쨌든 산업적 차원에선 이수만이다. 문화적으로만 따지만 서태지이겠지만, 서태지는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진 ‘독고다이’였기 때문에 산업적으로는 이수만을 꼽게 된다.

 

이수만은 HOT를 필두로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f(x) 등을 제작해 전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 가요를 실시간으로 즐기게 만들었다. 외국과 한국의 시차가 ‘0’이 된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와 미국의 젊은이가 마침내 동시대에 살게 되었다.

 

물론 그림자도 크다. 우리 경제가 무리하게 압축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작용이 나타났듯이, 한류 압축성장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또 SM 주도의 한류란 게 아이돌 댄스음악에 국한된 것이어서, 다른 장르의 발전을 견인하지 못했을 뿐더러 심지어는 압박을 가하기까지 했다. 아이돌이 너무 잘 나가다보니 다른 장르가 고사하기 시작했고, 가수들이 예능에서 웃음을 팔며 연명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야말로 극명한 명암인데, 이 그림자 부분에 대해선 수많은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그림자가 짙다고 해서 이수만의 위상이 흔들리진 않는다. 어쨌든 한국대중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통해 야사나 루머를 수집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진지한 평전으로 접근하는 게 그를 제대로 이해할 길일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수만이 한국대중문화계에서만이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국제적 인물이고, 전 세계문화지형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란 점은 분명하다. 온갖 부정적 요소들을 다 감안하고서라도, SM이 가수형성과 음악에 있어서 새로운 국제적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진작에 나왔어야 할 평전이었다. 앞으로 대중문화 분야에 계속해서 진지한 탐구서들이 등장하길 바란다. 사진으로 뒤범벅된 자화자찬식 자전에세이들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