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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마션 신드롬, 한국인이 SF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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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영화인 <마션>10월 초에 신드롬적 인기를 보였다. 108일에 개봉해 역대 10월 개봉 외화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고, 바로 다음날인 한글날엔 역대 한글날 최고 스코어, 역대 10월 개봉 영화 중 일일 및 주말 최고 흥행 스코어 기록과 최단기간 100만 돌파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6일 만에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폭발적으로 관객이 들었다는 건 그만큼 이 영화를 기다린 관객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최근 개봉한 <탐정>이나 <인턴>의 경우는 개봉 초기 성적이 안 좋았다. 별다른 기대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입소문으로 차츰 관객이 늘어가 마침내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탐정>이나 <인턴> 개봉 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국 관객이 <마션>엔 폭발적인 기대를 가졌을까?

 

<마션> 전엔 크리스토퍼 놀란의 SF 영화인 <인터스텔라>가 헐리우드도 놀랄 정도로 대박을 맞았다. 그 전엔 <그래비티>가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하자 한국인이 SF영화를 특별히 사랑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헐리우드 관계자들은 한국 관객의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며 낯간지러운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한국) 관객들의 과학적 수준이 높아서흥행이 폭발했다고 한 것이다.

 

 

과학적 수준 때문이 아니란 걸 우리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사실 헐리우드 SF 영화가 관객의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각효과에 있다. 우리 한국영화가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영역을 그들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꼭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지 않아도 우주선이 나오는 블록버스터는 <스타워즈> 이래 지속적으로 사랑받아왔다.

 

후진국이나 개도국이 선진국을 절대로 넘볼 수 없는 영역이 군사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압도적인 시각효과로 중무장한 SF 블록버스터도 선진국에서만 만든다. 한국 관객은 한국인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아기자기한 스토리의 한국영화를 뜨겁게 사랑하지만, 신기하고 장대한 화면에 대한 갈증도 가지고 있다.

 

물론 <인터스텔라> 유형의 영화들이 과학적 지식을 내세우기 때문에, 교육에 민감한 학부모들이 자녀 손을 붙잡고 극장을 찾은 것도 흥행에 영향을 미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장대한 특수효과 화면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흥행에 뒷심이 생기긴 어려웠을 것이다.

 

 

<마션>이 개봉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난 또 다른 이유는 <인터스텔라>. 관객들은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가 또 나왔다는 기대를 가졌다. <인터스텔라>는 한국 관객에게 자부심을 줬다. ‘나는 심오한 영화를 재밌게 보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영화를 재밌게 만들면서 동시에 심오한 듯이 적당하게 포장하는 기술에 능한 사람이다. 한국 관객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인터스텔라>처럼 재밌는 와중에 뭔가 의미가 깊은 것처럼 명작 MSG’를 친 영화들에 열광했다. 한국 관객에겐 재밌는 영화를 보며 지적인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바로 <마션>이 그런 작품일 거라는 기대가 모아졌다. 과학적 지식에 기반해 우주를 그린 영화이고, <인터스텔라>에서 우주복 입고 나왔던 멧 데이먼이 또다시 우주복을 입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션>을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은 크리스토퍼 놀란처럼 영화를 재밌게 만들면서 명작 MSG'를 치는 데에 능한 유형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의 욕구가 얼마나 충족될 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도 요즘 들어 우주 영화에 호응이 커진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젊은이들이 이민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현실에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우주 영화는 신천지를 보여줬다.

 

원래 미국에서 우주는 신천지였다. 서부를 향해 영역을 넓히는 프런티어 정신은 서부 개척이 완료되면서 끝났다. 미국은 우주로 눈을 돌렸다. 우주를 개척하는 뉴프런티어가 제시된 것이다. <인터스텔라><마션>은 바로 그 뉴프런티어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알게 모르게 영화 속에 스며든 그러한 신천지 개척정신이 우리 관객에게도 흥분을 안겨줬을 것이다.

 

하지만 헐리우드 뉴프런티어의 주체는 미국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막대한 돈을 주고 전투기를 사면서도 기술도 제대로 받아오지 못하는 처지다. 우주는 고사하고 지구의 하늘도 개척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에 더욱더 돈 만 원을 주고 관람하는 휘황한 우주 판타지가 대리만족으로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