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의 ‘어남류, 어남택’ 남편찾기 대전이 결국 ‘백어택’으로 귀결됐다. 개정팔(류준열)과 택이(박보검) 중에서 택이 이겼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역대급 반전 사태다. 그만큼 황당하기 때문이다.
이번 반전과 비견될 만한 사태는 과거 ‘지붕 뚫고 하이킥’의 결말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세경과 지훈(최다니엘)의 러브라인이 막판에 황당하게 엇갈렸다. 순수성으로 사랑 받았던 세경의 캐릭터가 준혁(윤시윤)도 좋아했다가 지훈도 좋아했다가 하는 ‘무줏대녀’로 망가졌다.
더 황당한 건 세경과 지훈이 막판에 교통사고로 인해 죽은 것처럼 묘사됐다는 점이다. 산골 소녀의 성장담이 담긴 시트콤이라고 굳게 믿으며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에 대한 테러였다. 반전의 충격이나 여운을 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결말을 낸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을 위해 막판에 펼쳐진 시청자를 헷갈리게 하는 떡답 장난, 러브 라인 장난 등이 사람들을 탄식하게 했다. ‘시청자 우롱이 지나치지 않은가!’
그때가 2010년이었다. 5년 만에 비슷한 사태가 재현됐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선 그동안 남편찾기 게임이 항상 있어왔다. ‘응답하라 1997’이나 ‘응답하라 1994’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있었으나 큰 논란을 부르지 않은 것은, 남편이 결국 순리대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감정묘사가 충분히 되고, 극이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은 사람이 결국 남편이 됐다. 시청자들도 상당부분 남편찾기의 결말을 알고 있었고, 결국 남편찾기 게임이란 순리대로의 결말이 전제된 상태에서의 놀이였다.
쓰레기나 개정팔이라는 별명은 이 캐릭터들이 무뚝뚝하다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는 이 무뚝뚝한 사람들이 여주인공에게 얼마나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따듯하게 행동하며, 남들 모르게 여주인공을 도와주는지 시청자에게 보여줬다. 그것은 작가가 시청자에게 ‘앞으로 이 사람이 여주의 짝이 될 겁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과 같다.
‘응답하라 1988’ 후반부, 개정팔과 택이가 서로 콘서트장 앞 덕선이를 향해 뛸 때도 그렇다. 드라마는 택이가 아닌 개정팔을 중점적으로 보여줬다. 그건 시청자를 개정팔에게 감정이입시키는 장치였다.
몰입은 개정팔에게 시켜놓고 막판에 남편은 택이 됐다. 이건 반칙이다. 반전을 위한 반전, 충격을 위한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택을 남편으로 할 거라면 애초에 개정팔의 마음을 그렇게 공들여 묘사하면 안 됐다. 김주혁이 초반에 택이가 아닌 개정팔의 성격으로 묘사된 것도 결국 시청자 우롱이 됐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세경을 ‘무줏대녀’로 만들어 순수한 캐릭터를 훼손한 것처럼, ‘응답하라 1988’도 덕선이를 무줏대녀로 만들어 망가뜨렸다. 중반에 덕선이가 상대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면 자동적으로 자기도 좋아하는 아이로 묘사 됐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지만, 결말만 순리대로 됐으면 그 정도는 ‘익스큐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말이 택이와 개정팔의 달리기 시합으로 귀결되며, 결국 덕선이는 자기한테 다가오기만 하면 누구라도 상관없는 희대의 ‘무줏대녀’가 되고 말았다.
개정팔 캐릭터도 망가졌다. 극중에서 개정팔은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며, 과단성까지 갖춘 캐릭터로 묘사됐다. 선우(고경표)가 선배와 충돌할 뻔하자 개정팔이 즉각 선배에게 주먹을 날린 장면이 캐릭터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가 덕선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 건 자기 친구들이 덕선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선우가 좋아하는 줄 알았고, 나중엔 택이가 끼어들었다.
친구들에 대한 배려 때문에 고백을 못한 거였는데, 막판에 드라마는 개정팔이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망설이다 덕선을 놓친 것으로 묘사했다. 주요 캐릭터의 성격을 갑자기 바꾸며 ‘찌질이’로 만든 것이다. 덕선은 무줏대녀가 되고 개정팔은 찌질이가 된 것. 바로 이것이 ‘백어택’이 빚은 참사다.
과거 ‘오로라 공주’는 주인공의 러브라인을 갑자기 바꿔 시청자의 질타를 받았다. 남주인공을 갑자기 밀어버리고 다른 사람과 여주인공을 연결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임성한 작가는 기분 내키는 대로 극본을 쓰는 거냐는 비난을 받았다. ‘응답하라 1988’이 여주인공의 짝처럼 묘사된 사람을 갑자기 밀어버린 것도 이런 충격을 줬다.
반전도 좋고 충격도 좋다. 하지만 반전을 위한 반전은 곤란하다. 무조건 시청자를 놀라게 하기 위해 엉뚱한 결말을 내는 식이라면, 보는 시청자 입장에선 허탈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응답하라 1988’ 제작진이 남편찾기 떡답 놀이에 몰입하다 판단력을 잃었던 것처럼 보인다. 너무 꼬고 꼬다 엉켰다고나 할까? 다른 제작진들도 경계할 일이다. 억지로 시청자 뒤통수 치려다가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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