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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트럼프, 박근혜와 SNL의 전쟁

지난 미국 대선 당시 미국 방송사 NBC‘SNL'(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를 희화화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알렉 볼드윈이 트럼프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방송이었다. 트럼프는 발끈했다. 대선 승리 후 SNS를 통해 ‘SNL은 완전히 편향되고 재미도 없다. 도저히 시청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혹평을 가했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가 ‘SNL은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전통이 있다. SNL을 조롱한 대통령은 트럼프가 처음일 것이라고 반발했다 

지난 대선 당시 우리에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tvN‘SNL코리아가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를 통해 박근혜 후보를 희화화했던 것이다. 그러자 새누리당이 강력히 반발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엔 더 강도 높은 압박이 가해졌다. 당시 tvN 관계자는 정부 출범 이후 코너 제작진의 성향을 조사해 갔다. 무서웠다라고 하기도 했고, CJ E&M 법무팀이 특정 대사의 삭제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보도됐다. 

결국 여의도 텔레토비 코너는 박근혜 정부에서 사라졌고, 이후 ‘SNL코리아에선 정치풍자를 볼 수 없었다. 최근 최순실의 봄이 터진 후 잠시 최순실 풍자가 나왔지만 그조차 이내 자취를 감췄다. CJ 쪽에서 여전히 몸을 사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전에 박근혜 정부가 CJ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위협을 가했기 때문이 아닐까. CJ는 여의도 텔레토비와 영화 변호인등으로 인해 미운털이 박혔다고 한다. 이후 CJ는 정권에 납작 엎드렸다. 여의도 텔레토비뿐만 아니라 시사토론 프로그램까지 사라졌다. ‘변호인에 출연한 송강호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휴지기를 가졌고, ‘변호인배급사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미국은 달랐다. 트럼프 당선자가 발끈했지만 방송사가 납작 엎드리거나 연예인이 위축되지 않았다. 알렉 볼드윈은 트럼프가 쇼의 메인 작가라고 조롱하면서 앞으로도 트럼프 풍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풍자 코너의 폐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양국 대선에서 똑같이 ‘SNL’ 풍자 파문이 일었고, 거기에 대해 대선 승자 측에서 불쾌감을 표시했는데,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미국은 대통령과 연예인들이 대놓고 싸운 반면, 우리 경우는 대통령은 국민통합운운하며 우아하고 고고하게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코너가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트럼프는 취임 후 첫 생방송 인터뷰에서도 ‘SNL'과 알렉 볼드윈을 비난하며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SNL‘에선 이달 초 트럼프를 히틀러에 빗대는가 하면, 멜리사 맥카시가 트럼프 백악관의 대변인을 조롱했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출현해 트럼프를 직접 거론했다. 트럼프는 크리스틴 스튜어트하고도 구원이 있었다. 과거 11번이나 그녀를 비난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마돈나하고도 싸웠다. 마돈나가 CNN으로 생중계 되는 가운데 트럼프 반대 시위에서 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트럼프는 "솔직히, 그녀는 역겹다""그녀는 자기 자신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고, 미국에게도 수치스러운 발언을 했다"라고 응수했다. 트럼프와 헐리우드의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싸움은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하는 것이다. 서로 싫어할 수 있고, 불편한 감정을 토로할 수 있다. 그걸로 끝이면 된다. 우린 이상하다. 싸움은 없는데 이상하게 코너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다문다. 그리고 어딘가의 눈치를 본다. 극단적인 수직적 권력관계라는 뜻이다. 우아한 자태로 조용히 밟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감히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훗날을 걱정해야 한다 

미국 연예인들에게 훗날의 걱정 따윈 없는 것 같다. 최근에도 마크 러팔로, 크리스 에반스, 스칼렛 요한슨 등 어벤져스멤버들을 비롯해 샤이아 라보프, 메릴 스트립, 이완 맥그리거 등 수많은 스타들이 트럼프를 비난하고 나섰다. 미 프로농구(NBA) 휴스턴 로케츠의 마이크 댄토니 감독도 인터뷰에서 트럼프 측의 대안적 사실논리를 조롱했다. 

트럼프는 이런 문화체육계와 싸운다고 해서, 그런 불관용의 태도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현지에서 나온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런 싸움조차 부럽다. 대통령이 듣기 싫은 소리에 대해 솔직하게 불편함을 토로하고 뒤끝만 없다면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소리소문 없이 코너가 사라지고, 연예인들이 입 꾹 다물고 눈치만 보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이 횡행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미국에서 'SNL‘ 작가가 불이익을 당하기는 했는데, 그 이유는 트럼프의 10살 짜리 아들을 SNS로 비하한 것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었다. 이것 말고는 트럼프를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례가 없다. 이렇게 뒤끝 없는 싸움이라면, 트럼프가 한국에선 민주적 지도자 소리를 들을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