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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불안 불신 분노의 2016년

 

2016년은 부정적인 이슈가 많은 한 해였다. 올 봄에 이세돌 알파고가 한 포털사이트 이달의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큰 화제였지만, 사람들은 신기술에 대한 희망보다 불안을 느꼈다. 인간을 압도할 정도로 성장한 인공지능이 결국 인간의 일자리들을 모두 빼앗아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그후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 등이 계속 화제가 됐고, 불안이 이어졌다. 하반기엔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의료 등 현업에 투입된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러한 첨단산업의 대격변에 우리나라가 뒤처지는 반면, 중국이 약진한다는 소식이 또다른 면에서 미래 불안을 초래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가 말로는 창조경제를 외치지만 이런 급변에 대처할 산업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불신이 커졌다. 조선산업, 해운산업 등을 덮친 위기로 정부가 산업적,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인식이 더 확산됐다.

 

옥시 사태가 터지면서 불신과 분노가 터져나왔다. 기업체가 팔아치운 상품 때문에 국민들이 죽어나갔는데도 우리 정부는 지난 몇 년간 무기력했다. 해외 대기업이 한국인을 무시하는 것도 화가 날 일이지만, 한국인이 한국 정부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은 그야말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생활용품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기도 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라 터져 국민이 생활 속에서 체감하는 불안이 극에 달했다. 특히 여성들이 범죄표적이 되면서 강남역 인근에 여성들이 직접 나와 시위를 벌일 정도가 됐고, 여성혐오 이슈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여름엔 교육부 나향욱 정책기획관이 신분제’, ‘민중은 개돼지발언을 했다고 해서 국민 분노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관료, 지배층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졌다. 이렇게 열불이 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때문에 서민이 에어컨을 켜지 못해 분노 폭발 지경이 됐다. 돈 없는 서민에게 부담을 전가시킨 듯한 전기요금 체계가 우리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가을이 되자마자 경주에서 5.8 규모의 지진이 터졌다. 정부는 괴담을 불신하라고 했지만, 국민은 정부를 불신했다. 네티즌이 정부 경보와 별개로 지진희앱을 만들었고, 생존배낭이 유행하는 등 사람들은 자력갱생에 나섰다.

 

바로 이어 게이트가 터졌다. 한 포털 10월 이달의 검색어는 최순실이었고, 11월은 박근혜였다. 최순실에 대한 의혹에서 시작된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넘어가면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이슈의 블랙홀이 되었다. 지금까지 쌓여온 분노, 불신, 불안이 일시에 백만 촛불로 터졌다. 태블릿PC를 보도한 JTBC는 일약 촛불의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세...가 다시 떠올랐다. 방송가에서 사라져가는 이슈였지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세월호 7시간이 비로소 제대로 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이 강남에 있는 미용사와 메이크업 전문가를 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이 개돼지취급당했다는 느낌을 증폭시켰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무시한다는 불안이 더 커졌다.

 

 

연말에 초유의 조류독감 사태와 달걀 파동이 터지며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중됐다. 메르스 사태 때의 기억도 다시 소환됐다. 국민과 여론을 통제하고, 이념을 앞세우는 일에는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국민의 일상을 챙기는 일에는 기본적으로 무관심한 국가 아닌가라는 느낌이 더 커지며 병신년을 마감했다.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뽑았다. 백성이라는 물이 임금이라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불안, 불신,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백성이 해일이 되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그 해일의 조짐이 보인 2016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