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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이시영 ‘임신투혼’ 다시는 없어야 한다

 

최근 이시영의 임신 소식에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바로 직전까지 그녀가 MBC '파수꾼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의 촬영 스케줄은 살인적이다. 과거 한예슬이 스파이 명월촬영 중에 미국으로 가버린 일이 있었다. 너무나도 열악한 제작환경이 문제라고 했다. 건강한 사람도 병원신세를 지도록 하는 게 한국의 드라마 제작환경이다. 영화판으로 넘어간 톱스타들이 드라마엔 아예 발을 끊는 것도 이런 구조가 영향을 미쳤다.

임신한 몸으로 그런 촬영을 소화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 이시영은 자식을 잃고 복수에 나서는 형사 역할이었다. 2층에서 떨어지고, 자동차에 매달렸다 굴러 떨어지는 등 고강도 액션이 이어졌다. 그걸 모두 직접 해냈다고 한다. 역시 프로라며 찬탄이 이어졌다. ‘임신 초기에 보여준 액션 투혼, 프로는 달랐다’, ‘임신 중에도 연기 투혼’, 이런 식으로 투혼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포털에 걸렸다.

 

열정적인 모습에 대중은 매력을 느낀다. 무명배우에 예능 비호감이었던 이시영이 호감 연예인으로 거듭난 계기는 부자의 탄생이었다. 외모가 망가지는 것을 불사하고 열연을 보여주자 사람들이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후 권투 선수로 활동하며 더욱 인기가 커졌다. 외모 꾸미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매진하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번 임신투혼도 그런 열정의 한 단면으로 보여 매체의 호평이 나왔다.

 

하지만 캐릭터를 열심히 연기하거나 스포츠에 매진하는 것과 임신투혼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칫 본인이나 태아의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투혼이라는 제목으로 고무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물론 이시영은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고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위험성이 낮다고 해도, 그녀가 이런 일로 찬사 받은 것이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임신투혼을 은근히 강요하거나 당연시하는 흐름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 전부터 투혼은 우리 대중문화계의 고질병이었다. 과거 무한도전레슬링 특집에서 박명수가 네티즌에게 큰 비난을 받았다. 레슬링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형돈은 열정적으로 임해 크게 사랑 받았다. 머리 충격에 구토가 나오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는 레슬링을 강행했다. 병원에서 만류하는데도 진통제만 맞고 복귀한 정준하에게도 찬사가 쏟아졌다. 박명수도 처음엔 의욕적이었다. 그러다 뒷머리를 크게 부딪힌 후 소극적으로 변한 것인데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비난하기만 했다. 부상투혼이 만연한 이유다. 위험하거나 힘들어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 즉시 질타가 쏟아진다. 대중이 부상투혼을 강요하는 셈이다.

 

가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카라의 한승연부터, god 박준형, 걸스데이 민아, 최근엔 트와이스 정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수들이 깁스투혼으로 호평 받았다. 이중엔 인대 파열이나 골절 환자까지 있었다. 여자친구의 꽈당투혼도 유명하다. 젖어서 미끄러운 무대 때문에 계속 넘어지면서도 열정적으로 무대를 완수해 사랑받은 것인데, 그렇게 반복적으로 넘어질 경우 주최측이 즉시 중단시키고 무대를 정비했어야 했다. 투혼이 만연한 사회가 안전불감증을 부른다. 위험한 행위를 투혼이라며 고무하는 언론관행부터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