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중사회문화 칼럼

야만적인 대학원, 오죽하면 마스크를

 

지난 713일에 서울대 대학원 학생들이 대학원생 인권을 보호할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라며 기자회견을 했다. 이 사건이 후폭풍을 일으키는 것은 대학원생들이 교수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부 대학생들이 학내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대학원에선 드물었다 

특히 서울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이 교수 문제를 지적하는 기자회견을 연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민주화 운동의 그 뜨거운 시대를 거치면서도 대학원생들이 교수들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함구해왔다는 뜻이다. 이것으로 대한민국 대학원 내의 주종관계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대 대학원 학생들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것은 지난 연세대 텀블러 사제폭탄 사건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는 별개로, 대학원생이 교수의 질책에 느낀 인격적 모멸감이 범행동기라고 주장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교수의 갑질에 치어 살던 다른 대학원생들의 억눌린 정서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 사건 이후 서울대 대학원의 이른바 팔만대장경 스캔 노예사건이 해당 교수에게 중징계가 내려지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난 1월에 대학원생이 교수의 무리한 지시로 대학원생 4명이 1년 동안 8만 쪽이 넘는 문서를 4000여개의 PDF 파일로 스캔해야 했으며 비상식적인 개인 심부름을 강요받았다고 고발한 사건이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사건 내용이 너무 왜곡 과장됐다고 해명했다 

이외에도 6월에 폭언 및 성희롱 의혹을 받은 교수에게 정직 3개월 판정이 내려지는 등 대학원 교수 갑질 관련 이슈가 잊을 만하면 등장했는데, 각 개별 사건의 진실과는 별개로 이런 이슈들이 대학원생들의 여론을 계속 키웠다. 그러다 집단행동에까지 이른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한 학생은 정직 3개월 같은 솜방망이 징계로 교수의 갑질을 제대로 방지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실 내 표절문제, 왕따문제 대책 마련해라는 주장도 나왔다. 자신이 당한 언어폭력을 고발한 학생도 있었다. 자신을 자판기라고 밝힌 대학원생은 졸업 여부가 완전히 교수 재량이기 때문에 갑질이 횡행한다고 했다.

 

이번 기자회견에 나선 일부 학생들은 이례적으로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다. 대통령, 재벌, 검찰, 그 누구를 비판할 때도 당당하던 학생들이 교수갑질을 비판하는 자리에선 얼굴을 가린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교수를 두려워하는 지 알 수 있다. 학생이 자기주장을 하기 위해 얼굴을 가려야 하는 분위기라면, 그것 자체로 이미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지식 창조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만 가능하다. 기독교와 성리학이 사람들을 억눌렀던 중세, 조선시대에 지식 창조가 정체됐던 이유다. 우리나라는 교육에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고등교육 기관의 지식창조력이 떨어진다. 우리 대학원에서 아직도 조선시대적인 분위기가 판을 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노예라는 전근대적인 단어가 대학원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한 우리 대학원이 진정한 지성의 전당이 되기는 어렵다. 교수가 학생들의 대학원 졸업, 더 나아가 향후 학문세계에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절대갑으로 군림하는 구조가 사라져야 4차산업혁명이든 신지식사회든 가능해질 것이다. 교수 갑질을 고발하는 대학원생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기는 것이 고등교육 정책의 과제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