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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낸시랭 왕진진 파문의 엉뚱한 효과

낸시랭과 일명 왕진진 회장’(전준주) 커플이 화제다. 이른바 왕진진 회장은 처음에 위한컬렉션 회장이라며 마치 재벌 2세쯤 되는 문화계 유력자처럼 소개됐지만 사람들은 그 실체를 의심했다. 심지어 과거 고 장자연의 편지를 받았다고 주장한 사람과 동일인 아니냐는 황당한 의심까지 나타났다

너무 황당해서 차마 방송에서 전하기도 어려운 의혹이었는데, 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왕진진 본인이 장자연 편지 사건의 주인공이라고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낸시랭 혼인신고는 희대의 의심스런 사건이 돼가고 있다

장자연 편지 사건은 2011년에 터졌다. 2009년 장자연 유서 사건이 유야무야된 후 2년 만에 장자연 사건에 다시 불을 붙였다. 한 매체가 장자연의 편지라며 편지 50여 통, 230쪽 분량을 입수해 일부를 공개한 사건이다. 장자연이 생전에 얼마나 처절하게 피해를 당했는지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편지가 공개된 후 온 나라가 들끓었다. 처음 공개한 매체는 필적감정까지 했다고 주장했고, 유명한 기자까지 나서서 편지 내용이 진실일 거라고 거들었다. 네티즌은 그 내용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사법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정밀하게 분석해보니 필적이 달랐고, 장자연한테 편지를 받았다고 했지만 편지가 배달된 흔적이 없었으며, 장자연이 면회 왔었다고 했지만 면회 기록도 없었다. 장자연이 오빠라고 부를 나이도 아니었고, 두 사람이 친해질 만한 계기도 없었다. 법원은 조작이라고 판단하고 왕진진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은 이 판결을 믿지 않았다. 여배우를 유린한 기득권층을 보호하기 위해 증거를 은폐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상당수 매체들도 이런 판단을 함께 했다. 그래서 장자연 사건이 거론될 때면 으레 유서 내용과 편지 내용이 함께 소개됐다. 하도 두 가지가 동시에 소개되다보니 유서와 편지가 뒤죽박죽이 돼 어떤 게 유서이고 어떤 게 편지 내용인지 구분이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요즘도 부모님 기일날에도 접대에 나섰다는 등의 편지 내용이 유서인 것처럼 보도된다.

 

최근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재조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과거 장자연 편지의 내용이 다시 화제가 됐다. 이미 사법당국이 위조라고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그 편지를 믿었고, 그 내용에 부합하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매체들이 장자연의 자필 편지가 있었다라고 여전히 보도했다

그런데 그 편지를 위조했다고 사법당국이 판단한 주인공이 이번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낸시랭이라는 유명인의 남편이라는 타이틀로 말이다.

 

매체들이 왕진진에 대해 집중 취재를 했는데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실체가 없는 조직의 회장이라고 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것 아니냐는 것부터 사실혼 의혹, 전자발찌 의혹까지 다양한 것들이 나왔다. 낸시랭와 왕진진은 진실을 밝히겠다며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없고, 이젠 이들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 낸시랭 혼인신고가 엉뚱하게 과거 장자연 편지가 조작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제야 믿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말해주는 것은 아무리 그럴 듯한 이야기여도 그것이 거짓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장자연 사건 당시 우리 사회는 크게 분노했다. 그래서 장자연의 억울한 피해를 말하는 이야기는 모두 사실인 것 같았다.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모두 기득권 세력의 은폐 공작인 것 같았다.

 

사람은 분노하면 냉정을 잃기가 쉽다. 특히 집단적 분노일 땐 그 정도가 더하다. 사회 정의를 위한 분노엔 정당성이 부여되기 때문에 집단적 분노 에너지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처럼 질주하기 일쑤다. 이런 열기에 휩싸이면 분노에 부합하는 말만 들으려 한다. 냉정한 지적은 물타기로 몰려 난타 당한다. 이래서 정체가 의심스러운 장자연 편지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것이다.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했으니까

지금 사람들은 왕진진을 믿는 낸시랭을 비난하지만, 과거 장자연 편지를 믿었던 우리 사회도 그리 당당한 입장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어떤 순간에도 냉정함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 아무리 사회정의를 위해 분노할 때라도 언제나 사실관계를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