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다 마오가 울면서 분하다고 말했다는 기사, 혹은 은메달을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기사들에 포털마다 카니발이 열렸습니다. 아사마 마오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댓글 카니발입니다. 우리 네티즌들이 이상한 방식으로 김연아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네요.
은메달도 과분하다는 둥, 트리플악셀밖에 모르냐는 둥, 주제를 알라는 둥 아사다 마오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거나, 조롱하는 댓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차마 보기가 민망하군요. 이런 식으로 패자를 능욕하면 살림살이 좀 나아지나요?
<무한도전> 권투편에서 승패에 상관없이, 국적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 하는 두 소녀의 집념, 그 치열한 열정 자체에 박수쳐주던 ‘아름다운‘ 네티즌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당시 <무한도전> 권투편은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한 일종의 예방주사였다고 지적했었습니다. 행여 올림픽 때 증오의 열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는 예방주사 말입니다. 더구나 이번 올림픽에는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라는 한일 양국 소녀들의 대결이 예정되어 있어, <무한도전> 권투편 한일 소녀들의 대결은 예방주사로서의 의미가 컸습니다.
그때 <무한도전>과 네티즌들은 참으로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지요. 프로그램은 승패를 넘어 인간의 가치를 조명했고, 네티즌들은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분석해내며 성숙한 관전태도를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효과적인 예방주사라고 생각했던 것인데요.
막상 밴쿠버 올림픽 본게임이 터지고 보니 예방주사가 다 뭡니까. 말짱 꽝이네요. 다시 증오의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김연아를 응원했던 사람들은 김연아의 승리를 자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왜 칼끝이 아사다 마오에게 향한답니까?
설령 아사다 마오가 정말로 김연아에게 진 게 분하다, 은메달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해도 그렇게 그녀를 조롱해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사다 마오는 그녀 나름대로 인생을 걸고 최선을 다했는데, 진 게 분할 수도 있고 금메달 놓친 게 분할 수도 있는 거지, 그걸 욕할 수 있습니까?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를 비난한 게 아닌데, 왜 그녀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고 해서 한국 네티즌의 욕을 먹어야 합니까?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 만세!’라고 외쳐야 속이 시원한 것일까요? 그건 그녀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것 같습니다.
- 무한도전 때와는 달랐다? -
더 문제는 아사다 마오가 ‘져서 분하다’던가, ‘은메달을 놓쳐서 분하다’는 말을 안 했다는 데 있습니다. 기사들의 내용을 찾아보면 아사다 마오가 한 말이 전혀 다른 내용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실수를 한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분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자신의 연기가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메달도 납득되지 않는다는 기사내용도 있습니다. 일종의 자책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메달을 딴 것 만큼은 다행이라고 했다는군요.
이런 내용에다 대고 ‘니가 잘못해놓고 분하긴 뭐가 분하냐’ 혹은 ‘비겁한 변명이다’라고 조롱하는 건 참으로 민망한 일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는 사람한테 그게 할 말은 아니지요. 오히려 <무한도전> 권투편에서 쓰바사 선수를 동정했듯이, 아사다 마오를 위로하고 감싸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쓰바사 선수는 한국인들이 참 따뜻하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무한도전>을 보는 한국인과 밴쿠버 올림픽을 보는 한국인은 서로 다른 사람들인가요? 갑자기 매몰찬 사람들로 변해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조금만 기사를 찾아서 읽어보면 아사다 마오가 자기 자신에게 분하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앙심을 품은 듯한 ‘분하다’는 표현보다 ‘스스로에게 아쉽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욕하는 사람들은 김연아 때문에 분하다거나 억울하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네티즌이 갑자기 한글을 잊어버렸을 리는 없고, 의도적인 오독으로 보입니다.
즉, 아사다 마오를 통쾌하게 조롱해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분하다’는 말의 내용을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 김연아 때문에 분하다거나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오독한 다음, 그녀를 마음껏 얄미워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쓰바사 선수를 얄미워하거나, ‘얻어터져서 꼴좋다’고 악플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막상 올림픽이 되니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네요. 이것이 예능으로 볼 때와 진짜 국가대항전이라고 생각하고 볼 때의 차이인가 봅니다.
우리는 <무한도전> 때 승자와 패자를 모두 따뜻하게 감싸주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지를 느꼈습니다. 상대편인 쓰바사 선수의 선전을 빌어주며 우리 스스로 즐거워했었지요. 그렇다면 그런 마음이 올림픽에도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요? 기사를 오독하면서까지 패자를 끝까지 밟아대는 매몰찬 우리의 모습은 참으로 구태의연합니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김연아의 승리에 오점으로 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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