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의 뚜껑이 열렸다. 대박이었다. 가수들 노래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장난 아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특집이나 <슈퍼스타K>에 이어 '노래를 듣는다는 것'에 대한 대국민 교육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그것을 위해 꼭 서바이벌이라는, 등수를 매기고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방법이 동원돼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하지만 이해가 가기도 하는 것이, 이미 시대가 그렇게 자극적인 방식이 아니면 사람들이 집중해주지 않게 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가수들을 그대로 어느 음악프로그램이 섭외해서 그 노래들을 똑 같이 부르게 했어도 <나는 가수다>처럼 시청자의 몰입이나 화제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불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구성이 초래한 '쪼는 맛'이 집중도를 높였고, 그것이 음악에 대한 몰입으로 이어졌다. 서바이벌 구성없이도 가수들의 음악만으로 시청자들이 알아서 음악에 집중하고 음악인들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라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상황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수다>는 우울한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삽화로 보인다.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예능에 나와서 서바이벌 경쟁을 벌여야 겨우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시대.

얼마 전에 김태원은 <위대한 탄생>에서 도전자들에게 예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옆자리에 앉은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지만, 우리 현실을 <나는 가수다>가 냉정히 보여주고 있다.


- 불행한 가수 가난한 시대 -

이 프로그램에 나온 가수들이 오늘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들의 노래도 이미 알려진 것들이었지만, 예능의 가장 살벌하고 자극적인 구성을 통해서야 그들은 국민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가수다>는 양면적이다. 서바이벌 열풍에 편승했다는 점에선 부정적이고, 하지만 그 구성을 통해서 이 땅에 노래, 가수, 음악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것이다. 이 부정성과 긍정성이 모두 이 시대의 삽화다.

경쟁 프로그램인 <해피선데이>에선 가수들이 복불복과 야외취침을 하고, 온갖 과제를 수행하며 심지어는 건강검진이라는 사생활까지 공개한다. 그것보다는 <나는 가수다>처럼 순수한 무대만으로 관심을 받는 것이 차라리 더 나아보이기도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예능을 통하지 않고도 가수들이 독자생존하는 것일 텐데, 그게 안 되니까 문제다. 이런 시대에 실력 있는 가수들의 입지가 얼마나 좁은지를 <나는 가수다>가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나온 가수들이 언급됐을 때, 출연자들은 '웃기지 마라, 그런 가수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나올 리가 없다'라고 반응했다. 우리나라가 정상이라면 그 판단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가수다>에 줄줄이 출연한 정상급 가수들이 웅변해준 것이다.

이런 예능 서바이벌 무대라도 국민과 소통할 수 있고 진정한 무대를 보여줄 기회가 주어진다면 일단 감사해야 하는 상황. 그게 한국의 가수들이 처한 상황이다. 가난한 현실 불행한 시대.


- 개그맨이 가수 잡아먹다? -

<나는 가수다>는 그 구성을 통해 각별한 몰입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것이 의미있는 것은 서두에 말했듯이 대국민 교육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집중해서 듣게 되면 더 깊이 체험하고 즐기게 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수준 높은 가수를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이나 취향이 생기게 되고, 이렇게 소비자의 성격이 변하면 그에 따라 음악계가 바뀔 힘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자극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가수들을 소비했다는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이 몰입의 경험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첫 회의 편집은 아쉬웠다. 정작 가장 중요한 노래가 나올 때 프로그램은 엉뚱한 수다를 내보내 몰입을 방해했다. 가수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개그맨이 그 사이를 치고 나오면 안 된다.

앞으로 <나는 가수다>가 한국에 '진짜 가수'들의 중흥기를 이끌어내길 기대한다. 얄팍한 서바이벌 편승으로 시작해 그런 결과를 낳는다면 그야말로 '진흙에서 피어난 연꽃'이 될 것이다.

Posted by 하재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그러게 말입니다. 가수가 가수로서 활약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도 어제 방송은 그런 기회를 다시금 보여줄 수 있어서 좋긴 했습니다. 저도 도중에 개그맨들이나 말 나오는 건 싫더군요.

  2. 나는 가수다로 어제는 정말 많이 행복했습니다.
    그 감동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이렇게 뷰에서 관련글을 찾아 읽고 있는데
    하재근 님의 글이 가장 제 마음을 대표하는 것 같네요.
    너무 좋은 글, 분석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3. 공감이 많이 가는 말씀입니다.

    저도 어제 보면서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하는
    정상급 가수들을 보며 반갑기도 했고,
    한편으로 그들이 상처 받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선 간만에 좋은 음악을 들을수 있어서
    반갑기도 했지만
    이 프로그램 취지에 걸맞게 오래 가려면
    편집에 좀더 신경을 써야 할것 같아요.

  4. 글쎄요.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이 시청자들의 주목만을 얻기 위한 장치였을까요?
    결과론일지 모르겠지만,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을 취한 덕분에 가수들도
    훨씬 집중력 있는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편집에 대한 부분은 공감합니다.
    MBC 게시판이고, 어디건 그 이야기니, 다음 회부터는 나아지겠죠.

  5. 멋진 분석이십니다..
    개인 일정상 본방은 못보고 이렇게 글들을 읽고다니고 있습니다만..
    요즘 세상에 그 가수들의 노래를 TV에서 들을 수 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시청자 역시 감사해야 할 상황이겠지요..
    앞으로 노래 위주의 편집으로 볼거리와 들을거리를 꾸준히 제공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6. 호랑잡는거북 2011.03.07 12:39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어제 정말,, 감동감동또감동!!!
    그런데 진짜 개그맨들의 수다가 몰입을 방해했어요 ㅠㅠ
    노래부를때 만큼은 음악프로그램의 방식을 따라하는게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 부분만 더 개선된다면,
    노래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고,,
    듣는 즐거움을 더욱 만끽할 것이라 생각되었어요^^

  7. '나는 가수다' 우려와는 다르게 몰입도 완전 짱이었습니다.
    그리고 간만에 멋진 노래들을 들으면서 감동도 엄청 받았습니다.
    가수는 역시 노래를 잘해야 한다는 너무도 단순한 진리를 어제 다시한번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멋진 가수들과 노래들에 등수를 매겨야 하고 누군가는 탈락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보는 내내 가슴 한켠을 아프게 했습니다.
    안그래도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인데...
    점점 더 세상은 생존게임의 세계로, 적자생존의 세상으로 변해가는데...

  8. 저도 재미있게는 봤지만 개그맨들이 자꾸 끼어드는게 짜증났었는데..
    남자의 자격 합창단편에서 연습했던 부분들은 편집을 했지만, 마지막 노래부를때는 자막도 거의 없이 노래만 들려줬던것이 기억나네요...
    다음주에는 조금더 노래를 들려주기를 기대해봅니다

  9. 지나가다 2011.03.08 14:5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정말 공감합니다. 한마디한마디 정말 공감이 가네요. 특히 노래가 시작했는데도 듣는 사람들이 호들갑떠는 소리가 나와서 많이 거슬리더라구요. 이래서 예능프로그램을 싫어하는건데... 아무튼 좋은 분석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