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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힐링과 분노, 무엇이 문제일까

 

이상한 일이다. 힐링과 분노가 동시에 유행하고 있다. 힐링의 유행은 토크쇼 ‘힐링캠프’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독설막말 위주의 공격적인 토크쇼가 유행하던 끝에 나타는 ‘힐링캠프’는 출연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달래준다는 컨셉이다. 한동안 서점가에서도 스님들이 쓴 따듯한 책들이 유행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꼼수다’ 같은 분노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힐링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것인데 반해, 분노는 들끓는 정서다. 전혀 상반된 두 흐름이 왜 동시에 나타나는 걸까? 원인이 같기 때문이다. 힐링과 분노는 ‘자기계발의 파산’의 결과다. ‘저 산을 정복하면 희망이 열릴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위로만 위로만 달렸는데, 희망은 보이지 않고 심신이 만신창이가 됐다. 그래서 힐링이고 분노인 것이다.

 

사람들이 이젠 위로만 가지 않는다. 주위를 돌아보며 여유있게 걸을 수 있는 올레길이나 둘레길이 인기다. 사람들은 돌격전에 지쳤고, 돌격전의 결과로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도 버렸다. 자기계발의 10년 질주가 남긴 건 치유를 요하는 우울함뿐이다.

 

- 자기계발의 역사 -

 

자기계발 열풍이 맹렬히 타오른 건 최근 10여 년이다. 하지만 그 기원은 1990년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소비사회가 도래하면서 젊은이들이 사회를 고민하고 변혁하겠다는 의지를 버렸다. 사회를 버리자 남은 건 ‘나’였다. 나의 욕망, 나의 인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동시에 세계화 담론이 밀어닥쳤다. 이젠 글로벌 시대를 맞이해서 글로벌 1류 인재가 되어 세계무한경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1류 인재가 되어 1류의 삶을 살기 위해 나를 향상시켜야 했다. 그러던 차에 외환위기가 터진다.

 

외환위기는 한국인의 삶에서 일체의 여유를 앗아간 쓰나미였다. 1류의 삶이 문제가 아니라 이젠 죽지 않기 위해 나를 향상시켜야 했다. 이때부터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류의 절박한 책들이 인기를 얻으며 자기계발 열풍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처음엔 희망이 넘쳐흘렀다. 독종만 되면 모두들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독을 품고 자기계발해서 스펙을 쌓으면 10억을 벌 수 있고, 그걸로 재테크를 하면 부자 아빠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스펙을 쌓을 때 남도 스펙을 쌓았기 때문에 결국 언제나 제자리였다. 같은 기간, 전체 분배구조에서 노동몫이 차츰 줄었고, 대기업의 과팽창은 서민의 삶을 압박했으며, 좋은 일자리도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결국 스펙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외국자본과 큰손에 휘둘리는 개미들의 재테크도 위험천만했다. 펀드에 의존하는 것조차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불안해졌다. 집값이 폭등해서 집을 살 수도 없게 됐고, 대출 받아서 집을 산 젊은 가장들은 이자에 허리가 휠 지경이 됐다. 이런 판에 아무리 자기계발을 한들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지쳤다. 허탈해졌다. 지친 심신을 추스르고 위로받고 싶어졌다. 특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20대의 낙담이 심했다. 이때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나와 청춘을 위로했다. ‘괜찮다, 다 괜찮다’ 류의 담론이 청춘의 심신을 토닥여주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여유를 찾게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책 ‘88만원 세대’는 분노의 씨앗이 됐고, 2008년 금융위기가 기름을 끼얹었으며, ‘나는 꼼수다’로 기어이 분노가 폭발했다. ‘88만원 세대’는 젊은이들에게 아무리 자기계발을 해도 ‘우리 세대는 안 된다’는 각성을 가져다줬다. 기성세대, 기득권세력이 앞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기계발을 촉구하는 시장 체제의 정당성을 허물었다. 게다가 정치권까지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사회적 분노가 터져나온 것이다.

 

- 힐링과 분노, 무엇이 문제인가? -

 

힐링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토록 절박하게 힐링을 갈구하도록 만든 사회의 문제가 사라질까? 당연히 아니다. 힐링은 단지 마음의 위안일 뿐이고, 아무리 위안에 빠져있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잠시 기분만 좋아질 뿐이다. 위로, 공감, 응원, 이런 달콤한 소리를 들으며 자기연민에 빠져있다보면 인생을 힘 있게 개척할 힘이 길러질 수 없다.

 

요즘 분노는 기성세대와 정치권 전체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으로 터져나온다. 청춘은 아무 잘못이 없고, 기성세대가 모든 잘못을 만들었다는 인식도 있다. 이런 식의 ‘묻지마’ 분노로는 전혀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 막연한 정치혐오가 오히려 현실개선을 막을 위험성까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이 모든 역사가 1990년대 초에 젊은이들이 사회를 버리면서 시작됐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현실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치행동으로 표출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또 하나, 자기계발은 맹신해선 안 되지만 혐오해서도 안 된다. 누구에게나 능력을 기르는 것은 필요하다. 힐링과 분노는 언제든지 무능과 게으름의 핑계로 전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