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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촌스러운 사나이, 김보성 의리 열풍

 

최근 들어 김보성이 데뷔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1989년에 출연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하이틴 스타로 잠시 주목받았던 이래 오랫동안 큰 인기를 모으지 못했고, 심지어 2000년 이후 십년 이상 동안 비호감이기까지 했던 그에게 CF 제의가 밀려드는 것이다.

 

시작은 비락식혜 CF였다. 여기서 그는 느닷없이 쌀가마니를 후려치며 ‘우리 몸에 대한 으리!’를 외치더니 모든 단어에 ‘으리’를 집어넣기 시작한다. ‘전통의 맛이 담긴 항아으리!’, ‘신토부으리!’, ‘에네으리기음료!’, ‘아메으리카노!’. 이렇게 외치더니 ‘이로써 나는 팔도와의 의리를 지켰다. 광고주는 갑, 나는 으리니까! 으하하하하’라며 마치 70년대 액션영화 주인공 같은 느낌으로 포효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네티즌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사람들은 김보성과의 ‘으리’를 지켜야 한다며 식혜를 사먹기 시작했고 광고 방영 직후 한때 비락식혜 편의점 매출이 70%까지 올랐다고 한다. 김보성은 다른 광고에서도 변함없이 ‘귀거으리’, ‘목거으리’, ‘악세사으리’, ‘윗도으리’, ‘아랫도으리’를 외쳤고, 네티즌 사이에선 으리를 집어넣어 패러디 만들기 열풍이 이어졌다. ‘롯데으리아’, ‘너구으리’, 벚꽃 나드으리‘, ’파으리바게뜨‘, 이런 식이다.

 

김보성이 의리를 외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1990년대부터 초지일관 의리를 외쳐온 ‘싸나이’였는데 그에 대한 반응은 냉랭했다. 그런데 왜 2014년에 갑자기 사람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걸까?

 

- 불신 사회의 그림자 -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동안 김보성은 비호감 캐릭터였다. 방송에 나와서 투박하게 의리만을 외치는 모습이 너무나 이상하고, 촌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 볼 땐 이상했던 것에도 사람은 이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선병맛후중독’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처음엔 낯설고 비호감이었지만 자꾸 접하다보니 은근히 중독된다는 뜻이다. 김보성이 무려 10년 이상 의리를 외치자, 결국 사람들은 그 캐릭터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정까지 들어 그에 대한 의리 감정까지 생겼다. 왠지 박대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 즈음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김보성의 의리 캐릭터를 패러디하고 CF에서도 그를 내세운 것이 기폭제가 됐다.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이 최근 들어 극에 달했다는 것도 의리 열풍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김보성에 대해 단순한 호감을 넘어서서 거의 추앙하는 분위기까지 나타나는 것은 그가 초지일관 외친 의리라는 가치가 현실에서 극히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선장은 승객들의 믿음을 저버리고 도망쳤다. 국가시스템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우왕좌왕했다. 이럴 때 의리는 ‘나는 당신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다’, ‘나는 당신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의미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끝까지 내 손을 놓지 않겠다는 우직한 메시지에 사람들은 무의식적 안정감을 느꼈다. 최근 서울시장 후보 박원순이 기민하게 의리를 내세운 것은 이런 대중심리를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에 의리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군사정권 싸나이’들과 이 정서가 연관됐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 의리는 친구선후배 간의 일차원적 동지애로 국가 공익과는 배치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회의 의리가 쿠데타와 시민 학살로 이어진 것이 그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1990년대에 의리는 조폭 혹은 촌스러운 정서와 연관됐기 때문에 한참 신세대 혁명이 일어나던 분위기와 맞지 않았다. 한 마디로 교련복 입은 복학생 이미지를 풍겼다. 2000년대 디지털 혁명 시대에도 의리는 구시대적 정서였다. 그랬던 것이 최근 들어 절대적 불신의 시대가 되자 신뢰의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의리 역시 ‘신뢰 테마주’로 상한가를 맞게 된 것으로 보인다.

 

 

 

- 대중문화 트렌드의 결정판 -

 

이외에도 김보성에겐 최근 대중문화 트렌드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다양한 요소들이 녹아있다. 일단 그는 ‘상남자’ 캐릭터인데 이것은 최근 남성전성시대와 맞물렸다. 주말 저녁 예능에서 오직 남자들만 활약하는 시대다. 여자들을 내세운 예능은 이내 폐지되거나, 심야 토크 혹은 종편 토크 등 주변부로 밀려난다. 남성전성시대에 유행하기 시작한 단어가 상남자인데 김보성은 1990년대부터 이미 상남자였다.

 

그런데 최민수 같은 구식 상남자와 다른 것은 김보성이 우스꽝스럽다는 점이다. 주말 예능에서 인기를 끄는 남자들은 완벽남이 아니다. 모두 찌질하거나 어딘가 빈 구석이 있는 불쌍한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들에게 사람들은 인간미를 느낀다. 의리로 주식 투자했다 망한 사연 등 불쌍한 무용담으로 점철된 김보성은, 현실에 체현된 예능 캐릭터였다.

 

2000년대 인터넷 시대는 유희의 시대라고 할 만하다. 과거처럼 무게 잡고 의미를 내세우는 것들은 외면당하고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B급 표현들이 환영받는다. 모든 무거운 것들은 희화화의 대상으로 가차없이 패러디된다. 우스꽝스럽게 ‘으리’를 외치는 상남자 김보성은 최고의 패러디 ‘떡밥’이었다. 김보성이 비락식혜 광고에서 보여준 것은 남들이 자신을 비웃는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희화화한 것이었다. 자기자신을 향해 <라디오스타>식 돌직구를 던진 것인데 요즘 네티즌은 이런 농담에 열광한다.

 

복고와 사투리가 유행하는 시대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정신없이 달려온 데 대한 반발로 촌스럽고 아날로그적인 것을 다시 찾고 있다. 이럴 때 김보성은 마치 70년대 철 지난 액션배우 같은 스타일로, 혹은 촌스러운 80년대 복학생 스타일로 복고적 정서를 느끼게 했다. 또, 요즘 사람들은 고독하다. 물리적으로도 나홀로 가구가 증가하고 있고, 정서적으로도 세상이 너무 각박해졌기 때문에 고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SNS나 게시판, 메신저 등에 매달리지만 그런 가상의 연결에 빠져들수록 현실에서의 고독감은 더 커진다. 그래서 더욱 사람들은 자기 손을 잡아줄 뜨거운 사람을 원한다. 나를 평가하지 않고, 나를 내치지 않을 사람 말이다. 김보성이 바로 그런 느낌을 주는 캐릭터였다.

 

정리하면 자극적인 유희와 위안을 추구하는 불안 불신 고독의 각박한 시대가, 십 년 이상 의리를 외친 우직하며 우스꽝스러운 상남자에게 반응해 ‘으리 김보성’ 열풍이 나타났다고 하겠다. 김보성 자체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지 못할 경우에 곧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있겠지만, 상남자 김보성 캐릭터에 열광했던 대중심리는 그대로 남아 또 다른 ‘으리’의 대상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