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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비록 유승준이 받은 처벌은 안타까우나



유승준이 7집을 발표했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인터넷으로 공개된 뮤직비디오가 10만여 건의 조회수, 600여 건의 추천, 3200여 개의 댓글을 기록하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한 케이블 티비는 유승준 복귀를 주제로 한 토론프로그램까지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성시경의 유승준 관련 발언으로 격렬한 공방이 일어났었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국가의 처벌은 과했고, 또 유승준에게 법 앞의 평등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다.


연예인이 공인이 아니라는 주장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진짜 공인인 권력층, 사회지도층의 비리엔 한없이 관대한 사회가 연예인들의 경범죄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건 우습다.


지난 여름 연예인 학력위조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했었다. 연예인 얘기하다 말고 사회자가 공인의 거짓말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런 식의 주제를 던졌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진짜 공인들이 어떻게 학벌사회를 고취시키고 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 예컨대 서울대 출신 국회의원들끼리 모여 서울대당 운운했던 사건이라든가, 이런 걸 추궁해야지 몇몇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화형대에 올려 세우는 건 말이 안 된다.”


내가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라고 논의를 탁 끊자 사회자가 순간 얼마나 당황하던지. 연예인이 공인이 아니라는 건 옛날부터의 내 신념이고 여기에 대해선 아무런 이견이 없다.


문제는 병역기피·국적포기는 교통법규위반이나 불륜, 성행위 등과는 차원이 다른 사안이라는 점이다.(성행위 사실이 드러나면 처벌받는데 난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성행위는 범죄다. 최음제인 줄 알고 먹었다는 말에 가중처벌 받은 연예인도 있다. 최음제 복용도 처벌대상이라니 황당하기만 하다.)


병역기피·국적포기는 그런 사안과는 다르다. 연예인이 공인이 아니라는 명제가 성립한다고 해서, 그것이 병역기피·국적포기를 용인해야 한다는 말은 될 수 없다.


유승준에 대해 구구절절한 사연을 올린 한 누리꾼의 글을 읽었다. 유승준에게도 뭔가 사정은 있을 것이다. 한국에 넘쳐나는 수많은 병역비리 사범들에 비해 유승준에게 내려진 처벌이 과한 감은 있다. 하지만 비극적인 것은, 그리고 부정할 수 없이 객관적인 것은 ‘스티브 유’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상징적 사건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모든 남성에게 병역의 의무가 부과된 이 나라에서, 그리고 거의 모든 남성이 병역을 인생의 어두운 기억으로 떠올리는 나라에서, 누군가는 병역을 기피하고도 밝은 태양 아래 잘 살 수 있다는 허탈감을 줄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 개인 유승준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그 자신이 한국 최고의 스타였기 때문에 짊어진 업보다.


병무청은 이 사안에 대해 장병의 사기저하 운운하고 있다. 이게 틀에 박힌 말 같지만 분명히 맞는 말이다. 생각해보라. 임진왜란 때 전 조선인에게 징집령이 떨어졌는데 조선 최고의 남아라고 일컬어지던 누군가가 명나라 국적을 취득해 장안 처자의 환호 속에 부와 인기를 누리고 있다면. 조선 남성들이 어떤 기분을 느꼈겠는가. 국가는 이런 사태에 단호히 대처할 의무가 있다.


유승준은 외국인이다. 어떤 외국인이 자국민들을 매우 불쾌하게 하고 자국의 기강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국가가 그 외국인에 대해 얼마든지 입국금지 조치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이 모든 외국인이 한국 법 앞에 평등한 사태다.


유승준 지지 측에서 병역의무를 지고 있는 다수 남성들의 불쾌감을 경시하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왜 안티팬의 상징이던 문희준이 군대에 다녀오자 안티들이 사라졌겠나.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분명한 이유도 없이 슬그머니 유승준의 활동이 허가된다면 그건 국가가 암묵적으로 병역기피·국적포기를 허락한 셈이 된다. 그렇게 되면 차인표, 장혁, 윤계상, 홍경민은 뭐가 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연예인, 무용수, 운동선수들이 군대에 가고 있다. 입국불허 되고도 잘 살고 있는 슈퍼스타 유승준과는 달리 그들은 입대로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이건 연예인이 공인이냐 아니냐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한 공동체 운영의 근간이 걸린 일이다. 병역의 의무를 다한 다수 국민이 이를 자신이 감수한 희생에 대한 배신으로 느낀다면 국가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유승준 측이 국민의 배신감을 해소할  분명한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막연히 국내 팬들의 구명활동에 기댄다든가, 개인적 동정심에 호소한다든가, 인터넷 활동으로 분위기를 떠본다든가 하는 방식은 장벽을 더 쌓을 뿐이다.


병역의무를 감수한 사람들이 느끼는 배신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터넷 발언들은 이 사안을 격렬한 난타전으로 만들어 유승준 앞에 건널 수 없는 넓은 강을 만든다.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상징적 사건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국가도 이 사안을 경시할 수 없다.


법 앞의 평등이라든가 하는 차가운 논리 말고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에 대한 실질적 설득이 필요하다. 인간적으로는 안타까운 감이 있으나, 한국 최고의 스타여서 상징적 사건의 주인공이 돼버린 유승준으로선 한국 내 상업활동을 위해 반드시 이런 절차를 밟아야 한다. 안 그러면 군대에서 ‘뺑이 치다 온’ 사람들이 납득해주질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