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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2007년 대중문화계 결산(1)

 

2007년 대중문화계 결산(1)


21세기, 약속의 땅은 오지 않았다. 우리에게 닥친 건 화려한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가난한 소비사회였다. 출판, 영화, 대중음악, 순수예술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문화성이 퇴조하고 있다. 그 자리를 대치하는 건 상품성이다. 문화인들의 외적 상품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한 해였다. 이제는 성형을 안 한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세상이 됐다. 신정아 파문은 순수예술계에서조차 외적 상품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웅변했다.


어른들은 먹고 사느라 문화를 향유할 여유가 없고, 청소년은 입시에 매달리느라 여유가 없다. 그나마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용돈은 모두 IT 통신사의 매출로 빨려 들어간다. 소비문화가 화려해질수록 문화가 고사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커져만 간다. 게다가 2006년도에 닥친 한미FTA 폭탄은 여전히 그 폭발시기를 기다리며 잠복해있다. 2007년은 숨 막히는 한 해였다고 총평할 수 있다.


음반시장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가요계에선 연일 곡소리가 터져 나온다. 음악을 담은 음반이 사라지고 찰나적 소비상품이 유통되는 디지털 음원 시장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이렇게 되면 대중예술의 깊이는 점점 더 얕아지고, 어차피 얕은 음악을 굳이 음반 사서 들을 필요가 없는 악순환이 심화될 것이다.


음악 진흥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대중예술인에게 수익이 충분히 분배되지 않는 디지털 음원 시장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또 입시를 없애 청소년들이 상품이 아닌 음악을 향유할 여유를 갖도록 교육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방송사는 디지털 음원용도에나 적합할 상품이 아닌 음악을 소개하는데 책무감을 가져야 한다.


복제기술은 산업의 존재조건이면서 동시에 산업의 이윤원리를 침해하는 적이기도 하다. 원본을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올해도 음악, 영화, 출판 등의 부문에서 디지털 복제와 관련된 대립이 이어졌다.


21세기 디지털 복제의 특징은 다중의 손에 의해 최고 수준의 원본모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불특정 다수가 이 복제유통에 끼어들었다. 마침 강화된 저작권관리 풍토와 함께 네티즌과 저작권관리권자들의 힘겨루기가 펼쳐졌고 2007년 말엔 이에 연루된 학생이 자살하는 참극까지 빚어졌다. 기술이 앞서가는데 제도가 아직 정리가 안 됐다. 국가는 단지 단속만 하면 그만이라는 태도에서 벗어나 디지털 복제 시장의 질서를 수립할 적극적인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한국영화는 위기론이 터져 나올 정도로 위축된 한 해였다. 자신들이 과거에 성공시킨 패턴을 반복하는 방식으론 앞으로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유치산업인 한국영화를 미국영화와 자유경쟁시키겠다는 정부의 턱없는 만용은 위험하기 이를 데 없다. 스크린쿼터, 마이너쿼터 그 외 각종 육성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전도연이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큰 경사였다. 강수연 이후 우리나라 배우가 이른바 세계 4대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모두 수상했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한국영화가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서양 사람들한테 동양 여자는 이국적인 꽃이다. 상 주기 좋다. 한국 영화가 상을 받을 때가 됐는데 막상 나오는 작품들이 2% 부족해서 부담 없는 여자연기상을 주고 있다고 나는 해석한다. 그러므로 내가 느끼기에 여우주연상의 약진은 우리 영화계에 가해진 채찍질이다. 우리 영화계는 아직 일본이나 중국이 받았던 것만큼의 주목을 못 받고 있다. 아직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올해 국내에서 최고의 주목을 받았던 영화는 화려한 휴가와 디워다. 화려한 휴가는 대선을 맞아 한나라당 반대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디워는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논란을 야기했다.


디워 사태에선 일단 타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네티즌 대중의 공격성의 문제가 드러났다. 그리고 1차원적인 상품 완성도 평가에 안주하는 일부의 근시안도 문제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투자부진에 빠진 나라인데 영구아트무비의 모험투자를 냉소하는 한쪽의 흐름은 퇴폐적이다. 그렇지만, 그 모험투자의 결과물이 완성도가 뛰어나다고만 강변하는 반대편도 황당했다.


디워 흥행에 애국심 요소는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을 애국주의라고 굳이 조소한 것은 너무했고, 애국주의 요소가 없다고 받아친 쪽은 기이했다. 애국심을 개탄하는 쪽에서 디워가 미국에서 나라망신을 시켰다고 부끄러워하는 웃지 못할 일도 연출됐다. 일부는 디워가 미국흥행에 실패하자 좌절하는 일도 있었다. 미국에서 지금 당장 인정받는 것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한국사회의 미숙성을 여러 모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