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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여자배우 고기품평회를 연 청룡영화상



청룡영화상에서 못 볼 장면이 나왔다. 사회자가 여배우의 화려하고 섹시한 드레스, 비주얼, 볼거리 어쩌고 하면서 사설을 늘어놓더니 베스트드레서상 시상을 한다는 명목으로 당대최고의 여배우들을 무대 위에 정렬시킨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아니 영화제에서 무슨 고기 품평회하나?


여배우들을 무대 위에 주르륵 세워놓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닭살이 돋았다. 역겨웠다.


사회자 “이 아름다운 순간을 누구하고 보내고 싶습니까?”

김윤진 (당혹스러워하면서) “여우주연상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우는 예술가다. 예술제에서 왜 예술가들을 무대 위에 세워놓고 진열을 시키나. 이건 둘 중의 하나다.


 1. 예술에서의 엄숙주의를 비웃는 퍼포먼스

 2. 여배우를 예술인도 장인도 아닌, 행사에 흥을 돋우는 꽃으로 여기는 태도


당연히 2번이었다. 이 장면이 얼마나 역겨웠던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얼굴이 제어가 안 될 만큼 찌푸러져 있다.


김하늘 (이렇게 서 있는 것이) “부끄러운데요.”

사회자 “저희가 오늘 굉장히 어려운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지만 보시는 분들은 이런 자리가 참 즐겁습니다.”


뭐가 즐겁나. 영화제라고 사람들 불러 모은 다음에 여자들 앞에 주르륵 세워 놓고 품평회 여는 게 즐겁나? 배우들이 레이싱걸인가?


레이싱걸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레이싱걸은 원래부터 여성의 섹시한 외모 그 자체를 파는 업종이다. (이런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난 성이나 외모를 파는 것이 대단한 윤리적 수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혹시 잘 태어나서 외모만 팔아 먹고살 수 있었다면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가장 수치스런 업종은 홍보광고기획같은 영혼을 파는 일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메라는 왜 훓어!-

 

만약 연말 광고대상을 하면서 여성 카피라이터들을 주욱 앞에 세워놓고 섹시하네 어쩌네 떠들었다고 생각해보라. 이게 말이 되는가?


영화상에서 여배우들을 그렇게 대우한다는 건 여배우를 전문가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레이싱걸 시상식이라면 그래도 된다. 그 업종의 특성상 외모의 상품성이 가장 중요하니까. 상을 줘도 그것을 기준으로 줘야 할 것이다.


남성에겐 능력이 요구되고 여성에겐 꽃으로서의 상품성과 서비스적 품성이 요구되는 괴상한 풍조에서 이젠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영화제에서 내가 보고 싶은 건 그 업종의 장인이지 섹시한 꽃들이 아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건 아닌데, 전도연까지 그렇게 앞에 세워놓고 있는 건 정말이지 너무했다. 이건 거의 나라망신 수준이다.


 사회자 “전도연 씨 너무 쑥스럽지요?”

 전도연 “네, 많이 쑥스럽구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인 것 같아요.”

 사회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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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가, 이게.


박시연한테는 마를린 몬로같은 예쁜 포즈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참. 이 글을 쓰다가도 나도 모르게 또 실소가 터져 나온다. 그래도 전도연한테는 예우를 한다고 “쑥스러우시죠?” 정도 해주고, 박시연한테는 막장으로 대놓고 포즈를 요구한 것이다.


박시연이 너무 곤란해 하니까 “아니면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한 번 돌아주시죠.“ 라고 요구했다. 정말 이건 아니다. 얼마 전에 음악상은 아이돌에게 올해의 가수상을 줘서 음악을 내팽개치더니, 영화제에선 배우를 고기 취급하면서 연기예술을 뭉개버렸다.


세상에 어느 전문직 시상식에서 여자들더러 앞으로 나와 한 바퀴 돌라고 요구하나? 이건 해외토픽감이다. 몰상식도 이런 몰상식이 없다.


요즘 버라이어티들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데 영화제까지 버라이어티 흉내를 내고 있다. 버라이어티의 특징이 뭐냐면 예술적 전문성이 모두 사상되고 ‘감각적, 찰나적 쾌‘만이 지고의 선으로 난무한다는 것이다. 버라이어티에선 순간적으로 웃기는 사람이 최고이지 그 사람의 연기력이나 예술적 진정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난 버라이어티 쇼프로그램 좋아한다. 하지만 영화제까지 그렇게 되면 안 된다. 그러면 배우가 설 곳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한숨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