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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한진가 막장드라마 재벌 집안싸움 왜 터졌나

 

한진그룹 남매의 난’, '모자의 난'이 현실화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난 25일에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집에서 이명희 고문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말다툼이 과열돼 집안기물이 파손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남동생인 조원태 회장에게 불만을 토로한 직후였다. 조원태 회장은 어머니가 조현아 전 부사장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사진까지 공개됐다. 도자기 파편, 깨진 유리창의 조각 등이 흩어진 집안 풍경, 누군가의 팔이 다친 모습 등이다. 다친 사람은 이명희 고문으로 알려졌다. 크리스마스에 재벌가 내부에서 심각한 말다툼이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게 외부에 알려진 건 더 놀랍고, 심지어 사진까지 공개된 건 더더욱 놀랍다. 재벌가 내부의 일은 항상 베일에 가려져왔는데 이번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야말로 주말 막장드라마 같은 풍경이다.

그날의 일과 사진이 몰래 유출됐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집안 구성원이 일부러 밖으로 흘렸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부 매체는 이명희 고문이 스스로 사진도 찍고 밖으로 알리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진그룹 오너가 집안 내부 분란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한진은 지분이 분산돼 분란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다.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을 조현아 전 부사장 6.49%, 조원태 회장 6.52%, 조현민 전무 6.47%, 이명희 고문 5.31%, 이렇게 보유하고 있다. 누구 하나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할 수 없고, 고 조양호 회장이 생전에 각자 맡을 부문을 지정해주지도 않았다. 

조양호 회장은 지분이 분산돼 가족 간에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지만, 고만고만한 지분은 합종연횡의 분란이 일어나기 쉬운 구도이기도 하다. 가족들 외에도 KCGI 17.29%, 델타항공 10%, 반도그룹 6.28%, 이런 식으로 지분이 분산돼 합종연횡 여부에 따라 경영권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구조다. 조원태 회장 입장에선 당장 내년 3월 주총에서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는 실질적 위협이 닥쳤기 때문에 신경이 매우 예민해진 것으로 보인다.

 

당초 조현아 전 부사장이 조원태 회장을 저격했을 때 이명희 고문과 협의가 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지만, 조 전 부사장 측은 가족과의 협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조원태 회장은 어머니가 누나 편을 든다고 의심했고 그것이 크리스마스의 파국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명희 고문이 조원태 회장에 대해 감정이 안 좋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에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 경영권을 장악할 대 이명희 고문이 협조적이지 않았고, 최근 있었던 연말인사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 쪽 임원들뿐만 아니라 이명희 고문 쪽 임원들도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만이 커졌는데, 와중에 이명희 고문은 조현아 전 부사장과 밀수 혐의 재판을 함께 받으며 더 가까워졌다고 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자신과 가까운 임원들이 밀려난 것에 더해, 조원태 회장이 호텔레저 부문을 구조조정하려고 하는 것에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원태 회장이 올 11월에 뉴욕에서 "이익이 안 나는 사업은 버려야 된다"고 했는데 그게 호텔 부문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었다. 

칼호텔네트워크는 2018년에 80억 원 적자였고, 대한항공 호텔사업 부문은 2018년에 566억 원 적자였다. 미국 월셔그랜드호텔을 소유한 한진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에 대해 올 11월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조현아 전 부사장은 호텔 사업에 애착이 크다고 알려졌다.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으로 학사과정을 밟았고, 1999년에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했다.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부문 총괄부사장을 거쳐 2009년엔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당시 재벌가에서 딸이 대표 이사를 맡은 것은 조현아 전 부사장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애착과 자부심이 컸다고 한다. 그런 호텔 부문을 조현태 회장이 구조조정하려고 하자 반발한다는 것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 자신의 복귀가 무산된 것도 반발의 이유라고 한다. 올 연말 인사에서 복귀가 되지 않아 어머니, 남동생, 여동생(조현민 전무)이 모두 일선에 나서는데 자신만 빠졌다는 것이다. 특히 똑같이 갑질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이명희 고문과 조현민 전무가 복귀했는데 조 전 부사장만 빠졌다. 조 전 부사장은 매년 100억 원씩 6년에 걸쳐 총 600억 원의 상속세를 낸다고 한다. 경영진에 복귀해 많은 연봉을 받으면 그것으로 세금을 낼 수 있다. 이 부분도 조원태 회장에게 반발하는 한 이유라는 관측이 나온다.

 

앞으로 한진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 정말 합종연횡이 이루어져 내년 3월 주총에서 막장드라마처럼 표대결로 재벌 경영권이 바뀔지, 아니면 조현아 전 부사장의 호텔레저 부문 관할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문제는 이런 이 터질 때마다 국민의 시선이 차가워진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벌 경영권 세습에 의혹의 시선이 있었다. 소유권 세습은 당연하지만 경영은 능력이 검증된 전문 경영인 몫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물론 오너 가족경영이 오히려 주인의식있는 경영을 가능케 해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이롭게 작용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막장드라마 같은 이 반복적으로 터지면 재벌 경영권 세습, 가족경영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그것은 기업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국가경제를 위해 좋을 것이 없다. 경제권력을 움켜쥔 재벌가는 보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