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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박원순 미투, 수직적 조직문화 돌아봐야

 

아직 확실한 진실을 알 순 없지만 고소인의 말에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는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여성을 피해자라고 규정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피해자라고 규정하는 악습이 우리 언론에 있어왔다. 여성단체도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의 말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무조건 두둔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박유천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한 여성을 피해자라고 불렀다가 박유천 무혐의로 결정된 사건이 있었다. 엄태웅이 고소당한 사건도 무고로 끝났다.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성추행범으로 몰린 사건도 무혐의로 정리됐다. 이렇기 때문에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로 규정하는 건 위험하다. 

보통 한 쪽에서 피해를 주장하면 가해자로 지목된 쪽은 침묵하거나 반발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가 있다. 일반인이야 공개사과할 일이 없지만 유명인 사건에선, 유명인이 사법적 절차와 별개로 대중에게 입장을 밝히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게 잘못인정과 사과가 나오면 피해를 주장하는 측을 피해자라고 규정할 수 있다. 반대로 가해자로 지목된 쪽이 강력하게 부인한다면 수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박원순 시장 사건의 문제는 진실규명을 하기도 전에 가해자로 지목된 쪽이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내밀한 사건의 당사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진실이 미궁에 빠져버려서 판단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단서가 나왔다. 박원순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하루 전인 8일에 미투 관련 보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고소 사실을 보고했느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미투 관련 보고 자체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83시경에 첫 번째 보고가 있었고, 밤에 모종의 회의가 있었으며, 9일 아침에 또 다른 보고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거론되는 서울시 직원들이 고소 사실 보고는 부정하지만, 보고 자체와 회의 등은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고소인의 주장에 대한 논의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말을 들은 박 시장은 서울 시장 사퇴를 거론했다고 보도됐다. 

그렇다면 박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을 그런 보고에 대한 응답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엔 박 시장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몰랐지만, 시간이 흘러 8일과 9일에 있었던 보고, 회의 등을 파악하자 박 시장 죽음의 인과관계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시장이 추문 보고에 대한 응답으로 죽음을 선택했다면, 그 내용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전혀 사실이 아닌데도 시장 사퇴를 거론하거나 죽음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러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피해를 당했다는 측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 되기 때문에, 아직 수사 전이지만 고소인을 피해자라고 규정해도 된다. 이런 부분이 가해자의 인정이나 사실확인이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피해자 규정을 해선 안 되는 일반 사건과 다른 점이다. 

4년 동안이나 뭐하다가 이제야 고소했느냐고 하는데, 미투 운동이 원래 오래 전 사건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성범죄는 드러내기가 어려운 사건이어서 용기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 다반사다. 

피해자 측의 2차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왜 공론화하지 못했는지 그 내용을 밝혔다. 20161월부터 매 반기별로 인사이동을 요청하는 등 4년간 피해자가 서울시청 비서실 관계자 등 20여 명에게 성추행으로 인한 고충을 호소했지만 묵살당했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들은 "예뻐서 그랬겠지", "(인사이동을 하려면) 시장에게 직접 허락 받아라", "몰라서 그래", "남은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해 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달라"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충격이다. 이런 분위기에선 문제를 알리기가 쉽지 않다. 

사실관계를 조사해 확인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조직문화와 비서의 위상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한국 조직문화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이며, 내부고발자를 절대악으로 여기는 조폭과도 같은 끈끈함으로 악명이 높다. 비서는 무조건 보스의 심기를 좋게 해주는 존재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이런 고압적 구조에서 권력자가 남성이고 하급자가 여성일 때 반복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왔다. 서울시가 그랬는지 확인해야 하고, 그 문제와 별개로 우리나라 조직문화 전반에 걸쳐 근본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