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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아내의유혹 제작진의 막장적 사고방식

 

아내의유혹 제작진의 막장적 사고방식


23일에 ‘아내의 유혹 제작진, 막장이라는 표현 삼가해달라’는 기사가 나왔다. 내용인즉슨 이렇다.


'아내의 유혹' 제작진은 막장 드라마라는 일각의 지적에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책임 프로듀서는 "이 드라마를 일방적으로 몰아부쳐 막장드라마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표현을 삼가해달라"면서 "대다수 국민이 즐기는 드라마를 공개적으로 막장이라는 언어중에서도 가장 심한 표현을 쓴다는 것은 마치 우리 사회가 희생양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 씁쓰레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에 이어 또, "작가와 PD는 준비기간을 표함해 거의 1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대본집필과 연출작업으로 거의 초죽음이 되다시피하며 일에 매달리고 있다"면서 "40분짜리 일일극을 매주 5개씩 만드는 작업은 매우 힘든 일이다",  "요즘 드라마가 광고 판매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의 유혹'이 광고를 완판(完販)한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라고 말했다 한다.


이건 정말 막장이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아내의 유혹>은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 왜냐하면 대다수 국민이 즐기는 드라마이므로

-> 또 제작진이 초죽음이 되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으므로

-> 일일극을 만드는 일은 힘든 일이므로

-> 광고를 많이 팔았으므로

-> 그러므로 <아내의 유혹>을 막장드라마라고 비난하지 말라.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국민이 즐긴다는 것은 시청률이 높다는 얘기다. 이 논리는 결국 시청률 높고 광고 판매 잘 했으면 막장드라마가 아니란 소리다. 이게 말인가?


막장드라마란 건 오로지 시청률만 높이려는 상업주의적 목적으로 극을 도식적/극단적으로 구성한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시청률 높고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니 극 구성과 상관없이 막장드라마가 아니란다.


이야말로 극단까지 간 막장적 사고방식이다. 시청률과 광고판매수익으로 가치판단까지 규정하려는 상업주의의 막장. 제작진이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니 막장 드라마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제작진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므로 막장 드라마라는 비난을 말아달라는 말은 더 황당하다. 이 세상에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나? 범죄자도 열심히 일한다. 비리사범도 자기 나름으로는 열심히 일했다.


가치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제작진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에 막장드라마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도처에서 이어지는 반론이 있다. ‘나도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인데 왜 막장이냐?’는 것이다. 심지어는 극을 재미있게 잘 만들었으니 막장드라마가 아니라 명품드라마라는 강변까지 나온다.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 ‘쾌락’과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 정말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저 기사로 제작진마저도 막장적 사회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난 연말 시상식에서도 시민단체로부터 비난 받았던 어느 프로그램의 수상자가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우리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비난을 못할 것이라는 반론이었다. 자신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그 내용의 가치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시민단체의 비난이 옳고 그르고와는 별개로, 그 수상자의 반론은 우리가 얼마나 ‘가치기준’이 무너진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실감케 했다. ‘열심히 해서 재밌게 해줬으면 그만 아니냐! 내용은 왜 따져!’


시청률 높고 광고 많이 팔았으니 막장 드라마 아니라는 제작진의 사고방식은, 결국 연말 시상식 때 시청률 높고 광고 많이 팔아준 배우에게 연기상을 안기는 해괴한 풍토로 연결된다. 정초부터 막장으로 시작해서 연말에 막장으로 끝나는 앙상한 드라마왕국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