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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야심만만 어이없는 연고전 만행

 

오랜만에 정말 못 볼 꼴을 봤다. 이번 주 <야심만만>에서다. 여름방학 특집으로 학구파 연예인 특집을 한다면서 연고대 동문 대항전 구도를 만들었다. 이건 만행이다.


어떻게 지상파 프로그램이 대놓고 연고대를 띄워주며 집단화할 수가 있나? 절대로 해선 안 될 짓이다. 출신 학교의 인연을 가지고 집단을 형성하며 대립하는 것, 즉 학연 학벌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폐다. 이것을 고취하는 건 사회적 범죄나 마찬가지다.


연고대 학벌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구파이고 지적인 사람이라는 편견을 확대재생산한 것도 사회적 범죄다. 이건 거꾸로 낮은 학벌은 지성적으로 저열하다는 차별의식을 조장한다.


입시공부 잘한 것과 인간의 지성, 학구열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입시 문제 잘 풀었다고 학구파라고 하는 것은 인류 지성에 대한 모독이다. 학문사에 족적을 남긴 인류 지성 중 누가 입시공부 따위를 했단 말인가?


연예인까지 학벌을 기준으로 파당을 짓고 대접받는 것을 보면서 청소년과 학부모들이 어떤 느낌을 받겠나? 입시경쟁과 사교육과 학벌사회라는 종양을 고취한 패륜적 방송이었다. 여름방학 특집 참 기괴하게도 한다.


이따위 방송을 할 바엔 차라리 수영복만 입은 연예인들을 데려다놓고 낯 뜨거운 쇼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건전한 일이다. 오락 프로그램의 퇴폐성이 연 수십 조의 사교육비와 어린 학생의 자살과 국민의 한을 양산하는 학벌주의의 악독성에 비할까?


- 연예인까지 연고고대 나뉘어 패거리 지으라고? -


한국사회엔 대중적인 차원에서 학벌주의를 상징하며 동시에 고취하는 두 개의 이벤트가 있다. 첫째는 고교 정문에 걸리는 서울대 입학 플랜카드이고, 둘째는 연고전이다.


고교 정문에 걸리는 서울대 플랜카드는 이 땅의 교육붕괴를 의미한다. 학교의 목표는 인간 교육이지 입시경쟁이 아니다. 그러나 서울대 플랜카드는 학교의 목표가 입시경쟁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이 땅에서 교육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또 그런 현실을 심화하는 역할을 한다. 학벌사회의 깃발인 것이다.


연고전은 국립대인 서울대 다음으로 최고 학벌인 양대 사학의 위상을 과시하는 행사다. 이것을 부러워해 여타 사립대들이 비슷한 행사들을 기획했었으나 연고전만이 각광을 받는다. 이 연고전의 양상이 졸업한 동문들에 의해 사회에서 확대재생산 되는 것이 바로 ‘학벌사회’인 것이다.


그에 따라 서울대 플랜카드 안 걸기 운동과, 연고전 무시하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능프로그램이 연예인에게조차 연고전의 구도를 고취한 것은 어떤 비난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 다시는 이런 만행이 없어야 -


지구상에 한국과 같은 극심한 학벌사회는 없다. 미국도 일본도 우리처럼 심한 건 아니다. 한 미국특파원은 미국의 유명 정치인과 만나 인터뷰를 하며 한국식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출신 대학을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쪽 보좌관이 말하길, 수많은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지만 출신학교를 중요하게 물어본 것은 한국기자가 처음이라고 해 그 기자는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기 속에 자신도 모르게 내재한 학벌의식, 출신학교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습성의 이상함을 외국에서 깨달은 것이다.


이런 악습을 고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학벌이 모든 것인 사회에서 지식창조성도 발전될 수 없고, 사회의 합리성도 발전될 수 없으며, 오직 악에 받친 입시경쟁과 야만적 차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공식적인 장에서는 그 사람의 학벌을 아예 무시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출신 학교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능력과 사회적 성취만으로 평가받는 체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입시성적에 의한 차별이 사라지고 선진적인 능력사회가 된다.


그런데 지상파 프로그램이 공개적으로 연예인 학벌을 확인하며 그것을 기준으로 집단을 나누는 방송을 하다니! 그것도 한국 학벌주의의 진원지인 연고대를 중심으로! 제 정신인가?


프로그램은 학벌이 낮은 MC몽 등을 멍청한 사람 취급했다. 입시성적 낮은 사람이 멍청하다면 서울 명문대 출신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멍청한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소가 웃을 일이다. 수학의 정석 달달 외우는 것과 인간의 지적 능력은 그다지 상관이 없다. 프로그램이 망국적 편견을 재생산했다. 이런 편견은 결국 서울대, 연고대 출신이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엘리트 귀족주의로 이어진다.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학벌과 영어실력 가지고 인간 지성을 평가하는 것은 오래된 악습이다. 이번 <야심만만>은 그중에서도 너무했다. 어떻게 대놓고 연고대 학벌을 가를 수 있나? 공식적인 장에서는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몰지각의 표본같은 방송이었다. 절대로 이런 일이 반복 되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