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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김소연의 절묘한 마법, 기적을 만들다

 

새해 첫날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바로 전날 밤 1년을 결산하는 연기대상에서 두 명의 대상자가 나왔었다. 한 명은 전반기를 지배했던 ‘쩜하나 구느님’ 장서희고, 또 한 명은 후반기를 지배했던 ‘사탕키스 뵨사마’ 이병헌이었다.


그런데 1월 1일 오후가 되자 전혀 엉뚱한 사람이 이슈검색순위 1위로 떠올랐다. 바로 대상은커녕 연기상 자체를 아예 못 받았던 김소연이었다. 그녀는 연기상 본상은 못 받고 인기상이라는 애매한 상을, 그것도 공동수상으로 받았을 뿐이다. 인기상은 연기대상에서 일종의 부록과 같은, 말하자면 뷔페 잔칫집에서 나눠주는 기념품과 같은 성격의 상에 불과하다.


한 해를 수놓았던 기라성 같은 사람들, 대상을 비롯해 최우수상, 우수상 등을 가져간 수많은 스타들을 제치고 기껏 인기상 공동수상자에 불과한 사람이 다음 날 이슈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야말로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 구박이 불러온 행운 -


KBS 연기대상의 상상을 초월하는 구박, 그것이 김소연에게는 행운이었다. 그녀는 수상자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시상식에 의해 최악의 피해자가 됐지만, 바로 그 때문에 최고의 수혜자가 되는 행운을 차지했다. 정말 세상사는 오묘하다.


시상식은 자사 홍보를 늘어놓느라 김소연을 다그쳤다. 그녀는 벅찬 감격을 표현할 여유를 박탈당하고 속사포 개인기를 펼쳐야 했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도 찬밥인 배역이더니, 연말 시상식에서도 찬밥 취급을 받은 것이다.


그러자 시청자들 사이에서 열화와 같은 동정론이 일어났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비록 이병헌의 사랑을 얻지는 못했지만, 대신 시청자의 사랑을 얻은 구도가 정말 우연히도 연말 시상식 때 그대로 반복됐다.


주인공은 김태희였지만 사랑은 김소연이 받은 구도도 그대로 반복됐다. 본상인 우수상 대 부록인 인기상의 구도는 드라마와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김태희가 줄줄줄 흘렸던 눈물보다 김소연의 보일 듯 말 듯 맺힌 눈물이 더 강렬했던 구도도 그대로 재현됐다.


인기상이나 챙겨주면서 본상 수상자는 물론이고 향후 드라마 출연자들보다도 김소연을 가볍게 대한 시상식. 그렇게 경시당하고 구박받은 덕분에 김소연은 연기대상의 히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이 진행될 줄 누가 예측했으랴.



- 김소연의 마법이 구박을 선물로 바꿨다 -


말하자면 김소연은 2009년을 마감하며 기적 같은 선물을 받은 셈인데, 그 선물을 준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김소연 자신이다. 김소연이 스스로 구박을 최고의 선물로 바꿔버렸다. 여기에 인생사의 묘미가 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인기상은 연기상의 부록에 불과하다. <선덕여왕>에서 조연 고현정이 주연 이요원을 능가했다면, <아이리스>에선 조연 김소연이 주연 김태희를 능가했다. 그러므로 김소연이 연기본상에서 배제당하고 인기상이나 할당 받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일이었다.


만약 김소연도 그렇게 생각했다면? ‘뭐야, 나한테 겨우 이 정도 상이 가당키나 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인기상을 받은 후 가볍게 ‘감사합니다’ 한 마디만 하고 내려갔다면? 그랬다면 그녀는 결코 검색순위 1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인기상 정도에도 너무나 기뻐하고 감격해했다. 빨리 끝내고 사라지라는 주최 측의 어이없는 구박에도 그녀는 ‘죄송해요’을 연발하며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모습이었다. 겨우 인기상 정도에!


인기상 정도에 눈물까지 맺혀가며 감격하는 모습은 안쓰러웠다. 최우수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한껏 들떠 최대한의 감사를 표현하려고 애쓰다보니 자연스럽게 터진 속사포 수상소감은 사랑스러웠다.


그녀가 눈물 맺힌 눈으로 속사포 수상소감을 터뜨리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았던, 그 자체로 최고의 쇼였다. 누구라도 김소연을 동정하고 그녀의 모습에 즐거워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스러움, 순수함, 겸허함, 안쓰러움 등이 중첩된 ‘호감 100배 종합선물세트’였다. 그래서 그녀는 2010년 벽두에 최고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녀가 이따위 인기상이 다 무어냐는 마음을 가졌다면 결코 이 큰 선물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시청자의 사랑을 받은 것에 무조건 감격하는 그 순수한 마음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본상 수상자들을 제치고 일개 조연이 주인공이 되는 마법이 펼쳐질 수 있었다. 기적을 만들어낸 김소연의 마법, 그 비밀은 바로 ‘겸허함’이었다.


시상식 때마다 참석이나 수상과 관련한 구설수에 오르는 배우들이 본받을 일이다. 본상을 받고도 어두운 표정을 보이거나, 혹은 참석조차 거부하는 행태들에 비해 김소연이 보여준 모습은 얼마나 찬란한가. 새해 벽두의 작은 기적은 겸허한 사람에게 결국 더 큰 것이 주어진다는 인생사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