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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김남주, 송승헌과 네티즌에게 당했다

 

살다 보면 세상사가 참 오묘하며 얄궂다고 느낄 때가 있다. 또, 비록 조금씩이나마 세상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도 있다. 이번 김남주의 수상 모습이 그랬다.


강력한 대상후보였던 그녀는, 최우수상을 받은 후 벅찬 눈물을 흘리며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속사정이야 어찌됐건 그 구도상으로 봤을 때, SBS에서 김혜수가 불참한 것과 대조되는 풍경이었다. 그후 김남주는 자신이 대상을 못 받은 것이 상반기 작품이어서 불이익을 받은 면이 있다며, 다음에는 <선덕여왕>처럼 긴 작품이나 하반기에 하는 작품을 해야겠다고 농담조로 말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확실히 있다. 방영시기가 시상식에 가까운 작품일수록, 그리고 대작일수록 수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이 어디인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의 대중문화 시상식은 챙겨야 할 사람에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상을 주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상을 줄 사람이 여러 명이면 해법은 간단하다. 공동으로 주면 된다. <무한도전>팀 6명과 이순재에게 공동으로 대상을 준 적도 있는 기상천외한 나라인 것이다.


그런 관행이 이어졌다면, 아무리 상반기 작품이고 짧은 작품이어도 대상을 받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선덕여왕> 출연자와 함께 받으면 그만이니까. 김남주에게 불운이었던 것은, 하필 2009년엔 MBC가 그런 구태를 꿈도 꾸지 못했다는 데 있다. 왜일까?


바로 2008년 송승헌 공동대상으로 인해 일어났던 사이버 민란 때문이다. 당시 송승헌 공동대상에 대한 분노의 열기는 대단했다. 그것은 MBC의 치욕으로 남았다. 그 후유증은 2009년 연기대상에 전년도 대상 수상자들이 전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누가 전년도 대상 수상자로서 차기 대상을 시상해야 할지를 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김남주가 그 후폭풍에 직격당했다. 송승헌 사태가 아니었으면 아무 생각 없이 예전처럼 그녀에게 공동대상이 주어질 수도 있었으나,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김남주는 송승헌에게 당한 셈이다. 2009년에 김남주가 2008년 송승헌 사태로 인해 대상을 놓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이럴 때 세상사는 정말 오묘하다는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네티즌이 변화의 주역 -


2008년 사이버 민란의 주역은 바로 네티즌들이었다. 송승헌 공동대상이 발표된 직후 네티즌들은 밤을 새워가며 MBC를 성토했다. 당시 관련 기사엔 하룻밤 새 2만 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리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네티즌의 비판이 없었다면, MBC 입장에선 대상자 한 명을 정하기가 매우 난감했던 2009년에 공동수상 카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또다시 사이좋은 공동수상 풍경을 봤을 가능성이 높다.


1년 전 네티즌들의 노고 때문에 2009년에 MBC는 감히 공동수상을 생각조차 못했고, 그래서 김남주가 대상을 놓친 것이다. 비록 고현정의 참석으로 인해 대상 수상자가 바뀌었다는 뒷얘기로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MBC가 공동대상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고, 그랬기 때문에 2009년 MBC 연기대상은 2008년보다 훨씬 진일보한 구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


이렇게 세상은 앞으로 전진한다. 그 순간엔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나중에 길게 돌이켜 보면 조금씩 나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런 게 세상의 이치인데, 2008년과 확연히 다른 2009년 MBC 연기대상의 모습이 모처럼 그것을 실감케 했다.


‘어차피 한국 시상식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비판은 해서 뭐 하냐, 차라리 안 보고 만다’는 식의 냉소적인 댓글들을 참 많이 봤다. 만약 모두가 그렇게 냉소하고 뒷짐만 지고 있었다면 2008년과 2009년 사이에 달라진 것은 없었을 것이다. 2008년에 수많은 네티즌들이 적극적으로 비판에 나섰기 때문에 김남주는 안타깝게 대상을 놓쳤지만, 시상식 문화는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세상이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시상식은 매우 중요하다. 대중문화계의 한 해를 결산하는 행사이며, 그 자체로 우리나라 대중문화계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버라이어티 쇼의 무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후손에게 부끄러운 무대를 물려주지 않을 수 있다. 1980년대만 해도 우리 시상식 무대는 손발이 오그라들만큼 창피해보일 때가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현재는 정말 많이 나아졌다. 그리고 지금처럼 네티즌이 감시와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더욱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