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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하이킥, 황정음 드디어 울었다

 

황정음이 울었다! 그것도 코믹하게 운 것이 아니라 아프게 울었다. 황정음의 반격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처음 뜬 건 황정음이었다. 신세경이 아직 ‘재투성이’일 때 화사한 미모와 떡실신하는 투혼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의 얼굴, ‘코믹퀸’으로 우뚝 선 것이다. 황정음은 극 초반에 떡실신 뿐만 아니라, 좌충우돌 온갖 소동을 일으키면서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역이 됐다.


그사이 신세경은 서서히, 은근하게 시청자의 감정을 몰입시켜 나갔다. 그러다 아버지와 재회한 후 흘린 눈물로 일거에 ‘아픔의 퀸’에 등극했다. 러브라인이 시작되자 그녀의 존재감이 폭발했다.


그녀는 먼저 지훈과의 아픈 이야기로 사람들의 심장을 울렸다. 그녀가 대두될수록 <지붕 뚫고 하이킥>의 인기가 올라갔고, 작품성에 대한 찬사도 커져갔다. 그다음 세경은 준혁과의 코믹한 러브라인으로 웃음까지 책임졌다.


준혁이 세경의 일거수일투족에 오버하는 모습이 손발이 오그라들도록 민망하며 웃겼던 것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 모처럼 찾아온 폭소였다. 그다음엔 준혁이 세경의 마음을 확인하며 상처를 받고, 세경이 지훈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지막을 장식한 건 눈물의 피아노씬이었다.


‘세경-지훈’에서 ‘세경-준혁’으로, 다시 ‘세경-지훈’으로 이슈의 중심이 이동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초반부에 코믹퀸으로 떠올랐던 정음보다 세경에게 눈길이 더 모아지는 분위기였다. 최근엔 신세경의 존재감이 확실히 더 컸다. 



- 황정음의 반격? 드디어 울다 -


이런 점에서 봤을 때, 15일에 방영된 <지붕 뚫고 하이킥> 89회는 확실히 정음의 반격이라 할 만했다. 모처럼 정음이 이야기의 중심에 선 것이다. 그것도 세경의 방식으로. 한동안 정음은 스쳐 지나가는 코미디만 하고, <지붕 뚫고 하이킥>은 주로 세경의 상처와 아픔, 변화를 세밀히 보여줬었다. 그에 따라 세경에게 점점 더 몰입될 수밖에 없었다. 89회에선 정음의 상처와 변화, 성장기가 그려졌다. 그녀의 눈물과 함께. 

그동안 신세경이 안 먹던 커피를 마시고, 사랑니를 빼고, 처음으로 여유 있게 도시구경을 하는 에피소드들은 마치 영화나 베스트극장처럼 아름다운 화면과 함께, 그리고 세경의 진심 어린 눈물과 함께 그려졌었다.


89회에서는 정음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세경의 이야기처럼 세밀하게 나왔다. 세경이 커피를 마시고 도시 구경을 하던 에피소드 초반에, 그녀의 변하기 전 상태, 즉 자기 것을 고집하는 고지식한 면을 <지붕 뚫고 하이킥>이 제시했던 것처럼, 89화에선 정음이 진심어린 눈물을 흘리기 전에 쇼핑 중독에 빠져 무대책의 삶을 사는 그녀의 기존 모습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깔았다.


그리고 세경이 마침내 도시와 만나 차가운 푸른 빛 앞에 홀로 서며 성인식을 치렀듯이, 정음도 세상과 만나 그 전의 삶에 작별을 고한다. 아픈 캐릭터인 세경이 홀로 도시에 섰을 때 그녀는 혼자였지만, 상대적으로 밝은 캐릭터인 정음이 세상과 만난 순간엔 지훈이 곁에 있어준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에도 정음의 이야기는 세경의 이야기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방대 출신으로 사회와 맞닥뜨리고, 잘 나가는 남자친구와 무일푼으로 만나야 하는 그녀의 상처는 충분히 잘 전달됐다. 그리하여 정음의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가 더 커졌다.

그동안 세경의 상처는 아프게 그려졌지만 정음의 상처는 웃기게 표현된 측면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서운대 학생증이 탄로 나려 할 때 그녀가 몸을 던져 막던 장면을 거론할 수 있겠다. 정음에게 최대의 치부, 최대의 아픔이 터지는 이야기마저 코미디로 표현된 것이다. 반대로 지훈이 세경더러 가정부라고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무참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정음의 상처가 그렇게 웃기게, 과장된 코미디로 그려지지 않았다. 세경의 상처가 그려졌던 방식으로 정음의 이야기가 전달됐다. 지훈이 정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순간에 정음이 느꼈을 무참함이 그대로 전달됐고, 정음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장면에서도 아픔이 느껴졌다.


그동안은 영화처럼 아름다운 쇼트도 세경 에피소드의 전유물이었다. 이번엔 정음의 이야기에 그런 쇼트가 함께 했다. 정음이 지훈에 의해 끌려나왔다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회사로 들어가려 문고리를 잡는 순간이 그랬고, 결국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다시 나와 지훈과 마주 서는 장면이 그랬다. 오랜만에 진지한 이야기와 아름다운 화면구성으로 황정음이 부각된 것이다. 정음과 지훈-정음 라인의 존재감이 커졌다. 황정음의 반격이다.


89회는 모처럼 정보석과 가족들이 폭소를 터뜨려주기도 했다. 주방에서 정보석을 속이는 가족들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웃겼다. 최근 <지붕 뚫고 하이킥>이 너무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우려스러웠다. 이번 89회는 웃기기도 했고, 또 지나치게 우울하지 않은 방식으로 정음의 상처를 그려주며 따뜻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딱 이런 정도로 갔으면 좋겠다. 너무 우울하면 괴롭다. 웃음, 상처, 변화, 희망, 이런 정도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