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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추노, 이다해 노출과 샤방샤방의 의미는?

 

<추노> 방영 첫째 주에 화제가 됐던 건 장혁, 한정수의 복근과 함께 어떤 상황에서도 ‘샤방샤방’함을 유지하는 이다해의 얼굴이었다. 다른 노비들이 얼굴에 때국물을 묻히고 있을 때도, 도피행각을 벌여야 할 때도 절대로 잃지 않는 불굴의‘블링블링’이라고나 할까?


<추노> 방영 둘째 주가 되자 이번엔 이다해의 노출이 화제가 됐다. 이다해가 길바닥에서 뜬금없이 겁간을 당할 뻔하다 구출된 것이다. 강도를 만나 폭력의 위협을 받다 구출되는 설정으로 해도 됐을 텐데, 드라마는 굳이 겁간이라는 상황을 설정했다. 왜?


그래야 이다해의 옷을 벗길 수 있으니까, 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추노>가 호시탐탐 자극적인 볼거리를 보일 기회를 노리기 때문이다. 아예 벗고 살다시피 하는 장혁이라든가, 한정수의 목욕씬이 그렇고, 노골적인 성매매의 모습을 보여준 사당패의 장면도 그랬다. 주막의 여인들도 속살이 내비치는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추노>가 일편단심 팬서비스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다해가 오지호를 만난다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이다해의 옷을 한번 벗겨준 것도 팬서비스의 일환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벗든, 안 벗든 이야기 전개에는 상관이 없지만 <추노>는 그럴 때 벗어주는 길을 택한다.



그래서 이다해는 어이없이 샤방샤방한 얼굴과 뜬금없는 노출 덕분에 이주 연속해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샤방샤방 블링블링한 얼굴과 노출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다해를 보면 <추노>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이다해 이슈는 <추노>를 상징한다.


- 멍에를 벗어던진 한국형 블록버스터? -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은 대체로 무거웠다. 민족사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었다고나 할까?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내거나, 깊이 있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의 특징이었다.


특히 굴국 많은 현대사의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금기였는데, 1990년대에 표현의 자유가 생기면서 그 금기를 풀어내는 것이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숙제가 됐다. 금기를 뚫어낸 블록버스터들을 보며 한국인들은 감격에 부르르 떨었고, 그것은 흥행대박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모래시계>와 <쉬리>를 들 수 있겠다. <태극기 휘날리며>나 <여명의 눈동자>도 그렇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우리 역사를 서사적으로 그려내는 대작들을 추구하기도 했다. <해신>, <대조영>, <불멸의 이순신> 등이 그렇다. 2010년 한국형 블록버스터인 <추노>는 이 둘 중 어느 쪽의 노선도 걷지 않는다. 



이제는 홀가분해졌다고나 할까? 멍에를 벗어던진 느낌. 아니면 상업주의의 질주로 인해 더 이상 골치 아픈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블록버스터도 가벼운 상품이 되어간다고나 할까?


혹은 한국 제작기술의 자신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과거엔 볼거리만으로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었지만, 이젠 부산 앞바다에 스펙타클한 해일이 밀어닥치게 할 수도 있고, 광화문에서 핵폭탄을 두고 총격전을 벌일 수도 있고, TV 드라마에서 영화적 화질과 특수효과로 격투를 벌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자극적인 볼거리를 원하는 관객의 요구와 그런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제작능력이 21세기에 만난 셈이다.

 

- 불굴의 샤방샤방과 노출의 의미? 보고 즐겨, 롸잇 나우! -

 
그런 맥락에서 <추노>는 무거움을 벗어던진 볼거리 추구형 엔터테인먼트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추노> 직전에 방영된 <아이리스>도 분단이라는 민족사의 비극을 배경으로 깔았지만, 볼거리 추구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추노>도 신분차별의 문제 같은 조선사의 비극을 배경에 깔았지만, 방점은 볼거리 제공에 찍혀있다.



처절한 비극 속에 빠진 노비임에도, 마치 노비복장 코스프레를 하고 어느 파티장에 나타난 강남 규수같은 모습의 블링블링 이다해가 바로 그런 <추노>의 정체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줬던 것이다. 노비는 이야기 전개를 위한 설정일 뿐이고, 진짜 방점이 찍힌 건 아름다운 볼거리였다는 얘기다.


<추노>는 짐승남 초콜릿 복근 열풍에 발맞춰 남성들의 몸매도 호시탐탐 보여준다. 장혁과 한정수가 ‘보여주는 남자’로 떴다. 주막집 여인네들도 몸을 보여준다. 이다해는 첫째 주에는 얼굴을, 둘째 주에는 몸을 보여줬다.


물론 가장 중요한 볼거리는 화려한 액션과 아름다운 영상이다. 무거운 이야기는 2선으로 빠지고, 액션과 영상미 그리고 육체미가 최전방에 나선 신개념 한국형 블록버스터 사극. 이다해의 작품 내 이야기 구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샤방샤방한 얼굴, 뜬금없는 노출을 통해 <추노>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보고 즐겨, 롸잇 나우!’


뭐, 좋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액션, 영상미, 육체미 다 좋은데, 이 작품이 극장에서 선택한 사람만 보는 영화가 아니라 가정집에서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지상파 드라마라는 것을 제작진이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는 점이다. 볼거리도 좋지만 가족 시청자들을 민망하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조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