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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이다해 거듭되는 불운, 추노 최대의 피해자가 되다

 

<추노>가 전개되며 ‘개인’ 이다해가 많은 욕을 먹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왜 캐릭터나 제작진이 아닌 개인 이다해가 욕을 먹는단 말인가. 이에 대해 제작진이 모두 자신들 책임이라고 하는 해명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추노> 신드롬을 통해 수많은 배우들이 수혜를 입고 있는데 이다해만 미운 털이 박히는 모양새다. 또다시 이다해는 불운하다. 그동안 그녀는 계속해서 비운에 처해왔는데, <추노>에서마저 불운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다해와 장혁의 2008년 드라마 <불한당>은 저주 받은 걸작이었다. 작품은 상당히 훌륭했었지만 흥행에서 참패했다. 이때부터 이 둘은 불운했다. 이중에서 장혁은 <추노>로 권토중래했는데 이다해만 다시 진창에 빠지고 말았다.


<불한당> 당시 이다해는 초반에 비난을 받았었다. 지나치게 과장되고 들뜬 캐릭터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현실성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연기력까지 의심받았다. 하지만 중반에 접어들며 초반의 이상한 캐릭터가 드라마상의 설정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중반 이후 이다해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열연했지만, 시청자는 보지 않았다. 시청률이 ‘안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흥행에서도, 연기자로서의 평판에서도 결국 이다해는 <불한당> 최대의 피해자가 됐다.


불운은 다음 작품으로 이어졌다. 이다해는 <에덴의 동쪽>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됐다. 드라마 초반 포스터에는 송승헌과 함께 이다해가 전면에 부각됐었다. 그런데 작품이 진행되며 이다해의 캐릭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송승헌과 함께 러브라인을 형성할 예정이었지만, 송승헌이 이연희와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어가는 바람에 이다해의 역할이 있을 곳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다해는 동생과 형 사이를 오가며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허황된 캐릭터로 변했다. 사건진행의 주체가 되지도 못했다. 결국 그녀는 중도 하차를 결정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다며 그녀를 비난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가 중도 하차하는 것이 더욱 책임감 있는 행동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다해가 말도 안 되는 캐릭터를 이어가면서 억지 삼각관계를 만들면 작품이 더욱 막장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구도였기 때문이다. 이다해는 연기자로서 당대 최고 인기드라마의 주요 배역을 스스로 거부하는 희생을 통해, 오히려 작품을 구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얻은 건 비난이었고, 당시 연말 시상식에서 <에덴의 동쪽>팀이 상을 휩쓸 때 그녀는 포스터에서조차 삭제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문제작 <추노>다.



- 왜 이다해는 욕을 먹었을까 -


오지호는 욕을 먹지 않는데 이다해는 욕을 먹고 있다. 연기력으로만 보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오지호는 지저분하고 이다해는 깨끗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이다해를 깨끗하게 만든 게 문제의 핵심이다. <추노>의 다른 캐릭터들은 지저분한데, 이건 그 배우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버려가며 작품을 위해 분골쇄신하는 구도를 만들어준다. 반면에 이다해의 깨끗함은 남들 다 그렇게 고생하는데 혼자서만 자기 얼굴 챙기는 얄미운 이미지를 형성했다.


<추노>의 다른 캐릭터들은 원초적인 생명력이 꿈틀꿈틀한다. 역동적이다. 선악의 양면성이 동시에 구현되는 복합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사도 찰지고 시원시원하다. 모두 개성이 넘친다. 한 마디로 강렬하다.


반면에 이다해의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소극적이다. 답답하다. 게다가 절대로 대중이 호감을 보내지 않는 ‘민폐형 캐릭터’이기까지 하다. 이다해는 장혁의 인생에 민폐를 끼치고, 도주하는 오지호와 붙어 다니며 하얀 소복을 나풀나풀 거려 또 짜증나는 민폐를 끼쳤다. 추적자들이 오지호를 따라잡을 때 언제나 이다해가 빌미를 제공했다. 제 앞가림도 못하고 주인공 인생 발목 잡는 민폐형 캐릭터는 비호감 1순위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다른 인물들이 모두 과장된 지저분함, 치열하고 처절한 고통을 보여주는 판에 혼자서 ‘울트라 화이트’로 몸을 화사하게 감싸고 낮이나 밤이나 신부화장을 하고 있으니, 밉상의 결정체가 된 것이다.


<추노>의 다른 여배우들도 깨끗함을 유지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이다해의 깨끗함만 얄밉게 받아들여진 건, 그녀만 선녀처럼 ‘우아를 떨기’ 때문이다. 원초적 생명력의 민초들이 흐드러지게 판을 벌리고 있는데 혼자서 구름 위를 거닐며 CF를 찍고 있으니 시청자에게 찍힌 것이다.



- 이다해가 안타깝다 -


하지만 이건 작품의 구도일 뿐이다. <추노>라는 작품 자체가 리얼리티 무시하고 과장된 표현과 볼거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서 장혁은 과장되게 야성적으로 보이며 열연하는 짐승남의 이미지를 갖게 됐고, 그런 장혁과 대비되어야 했던 이다해는 자연스럽게 과장된 깨끗함을 갖게 된 것이다.


<추노>는 어차피 리얼리티를 무시하기 때문에 이다해를 그렇게 그리기로 결정한 이후엔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극단적으로 그런 이미지의 정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더러움과 깨끗함이라는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장혁이 표현된 방식과 이다해가 표현된 방식이 모두 같은 사고방식에서 출발한 것이란 얘기다.


그런데도 이다해만 욕을 먹고 있다. 그녀의 거듭되는 불운이다. <추노>가 볼거리 추구형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라고 생각하고 즐기면 사실 이다해의 튀는 깨끗함도 ‘그러려니’하면서 볼 수 있는데, 다수 대중의 정서엔 그것이 용납이 안 됐던 것 같다. 위에 열거한 이유들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민심은 천심이다. 드라마가 시청자를 이길 순 없다. 시청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작품이 변해야 한다. 이다해 캐릭터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추노> 제작진은 개인 이다해에게 너무나 큰 피해를 입힌 셈이 됐으므로,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이다해 캐릭터에 공을 들여야 한다. 연이어 작품의 구도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이다해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