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 사극 장영실이 최근 주춤했다. 15회 기준으로 11.7% 정도의 시청률이다. 주중 미니시리즈라면 나름 선방한 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KBS 주말 사극치고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국에서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사극은 궁중 정치투쟁물이다. 주로 왕이거나 왕이 되려는 인물이 주인공이고, 그 인물을 둘러싼 세력이 극한대결을 펼친다. 이러다보니 혼란기나 극적인 대결이 일어났던 시대의 지도자가 사극 주인공으로 각광받는다. 이성계, 이방원, 수양대군, 정조 등이다.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를 구한 전쟁영웅도 사극에서 사랑받는다.

 

궁중에서 처첩 간에 치정싸움을 벌이는 사극판 사랑과 전쟁도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다. 주로 후궁 사이의 암투를 그린 것으로 막장드라마의 사극 버전이다. 저주, 독살, 매질, 음모, 협잡 등이 기본으로 등장한다. 장희빈이 이 바닥의 끝판왕이다.

 

 

정치투쟁 사극이나 전쟁영웅물은 중년남성들이 선호한다. 궁중 치정극은 주부들이 선호한다. 이러한 고정 시청층을 바탕으로 20% 전후 정도까지는 올려주는 것이 정통사극이다. 그런데 장영실10% 초반에 머물러 있다. 인터넷에서의 화제성도 떨어진다.

 

장영실이 기존 사극의 패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극한대결을 주도하는 지도자나 전쟁영웅 혹은 암투의 처첩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바로 기술자 장영실이 주인공이다. 작품은 전쟁이나 암투 대신에 장영실이 이치를 깨달아가며 한 단계 한 단계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공들여 묘사한다.

 

특히 물시계, 간의, 편경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래픽 처리까지 동원해 섬세하게 그려냈다. 과거 중국에 있었다는 초대형 물시계를 재현하기도 했다. 앞으로 장영실이 조선에서 만들게 될 대형 물시계도 꼼꼼하게 재현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론 이 대목이 감동이었다. 어렸을 때 장영실 전기를 통해 그가 접하고 만들었다는 대형 물시계에 대한 묘사를 글로는 읽었으나, 실제 어떻게 생긴 것인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드라마 장영실이 물시계를 형상화해서 보여줄 때, 글로만 읽었던 물시계를 수십 년 만에 실제로 확인하는 감격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제작진의 노력이 흥행에는 도움이 안 된 것으로 보인다. 수시로 등장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대신에 암투, 액션, 목욕씬 등을 투입했다면 지금보다는 시청률이 더 높았을 수 있다. 그랬다면 우린 특별한 드라마 장영실이 아닌 평범한 사극 또 하나를 보는 데에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모처럼 방송사가 비상한 의지를 가지고 만든 과학기술 사극이 시청자의 외면을 받는다면, 앞으로 방송사는 더 이상 모험적인 시도를 안 하게 될 것이다. 남는 것은 천편일률적인 싸움이나 암투의 이야기뿐이다.

 

 

사실, 5만 원권 화폐의 주인공은 신사임당이 아닌 장영실이어야 했다. 장영실은 오로지 본인 스스로의 노력으로 성취를 이루어낸 성공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한국 과학기술의 상징인 인물이다. 한국이 앞으로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과학기술 발전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장영실은 국가적 표상이 될 만한 인물이다.

 

태종과 세종이 장영실을 알아보고 우대한 것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은 과학기술자를 우대해주고 있는가? 아이들의 미래 희망에서 과학자가 사라지고, 이상적인 사윗감, 남편감으로 기술자가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보면 상황은 비관적이다. 미국 펀드매니저가 최고 신랑감으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세계적인 기술자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한국은 지금 두뇌유출 현상이 심각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장영실같은 작품이 더욱 조명 받아야 한다. 장영실 신드롬을 통해 과학기술자들이 보다 인정받는 사회가 되고, 또 방송계가 자극 받아 더욱 수준 높은 과학기술 드라마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영실이 성공해야 우리 사회와 사극이 더 풍부해진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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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