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김과장>이 시청률 18%선을 넘으며 대박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별한 스타도 없다.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는 사극이나 멜로, 가족스토리도 아니다. 그저 가벼운 코믹터치 스토리의 소품일 뿐이다. 이 정도면 10%만 넘겨도 성공이라고 할 판인데 20% 가까이 치고 올라갔다. 이례적인 사건이다.
초반엔 주인공 김과장(남궁민 분)의 ‘삥땅’ 스토리가 시청자를 통쾌하게 했다. ‘어디 한 군데 안 썩은 데가 없고, 안 허술한 데가 없는’ 대한민국에서, 작당해서 ‘노나먹으며’ ‘삥땅’으로 한 탕하는 게 최고라는 김과장. ‘오리’(약자)들이 아무리 울어도 들어주는 사람 없는 이 나라에서 정의를 위한 용기를 내봐야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삥땅’이다. 권력자들은 공권력까지 동원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삥땅치지만 김과장은 한 푼 두 푼 티 안 나게 삥땅쳐서 10억 정도 모으려고 할 뿐이다.
바로 이런 설정이 시청자의 속을 뻥 뚫어줬다. ‘사회지도층은 대놓고 해먹는데 서민은 언제까지 착한 바보 ‘호구’ 노릇만 할 것인가. 국가도, 회사도, 누구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으니 내 살 길은 내가 찾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사회심리를 <김과장>이 건드렸다. 사회적 신뢰가 붕괴되어가는 현실과 드라마가 공명한 것이다. 2000년대에 직장인 10억 모으기 열풍이 있었는데, 김과장의 목표도 10억이다. 이런 대목도 시청자와의 일체감을 높인다. <김과장>은 성실히 일만 해선 10억 모으기 힘드니 ‘삥땅’이라도 쳐야 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불행한 시대.
김과장이 10억을 모으려는 이유는 ‘부패 없는 깨끗한 나라’ 덴마크로 이민가기 위해서다. 어차피 한국은 썩었으니, 약자의 최선은 탈출이라는 ‘탈조선’ 심리의 반영이다. 이것이 작품 초기 <김과장> 돌풍의 배경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블랙코미디로는 10%대 초반을 넘어서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미니시리즈가 러브라인도 없이 20% 수준까지 올라가려면 동력이 더 필요하다.
그 부분을 김과장의 동료들이 해결해줬다. 크게 해먹으려는 대기업 경영진이 삥땅전문 김과장을 스카웃했다. 장부조작을 해주면 김과장의 소소한 삥땅을 묵인해주겠다는 조건이다. 그래서 대기업 경리과장으로 들어갔는데, 바로 그 경리부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짠내’가 폭발했다. 경리부장을 비롯한 경리부 직원들이 보여준 직장인의 현실이다.
자존심 따위 ‘접어두다 못해 꾸깃꾸깃 구겨 처박아놔서’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한다는 경리부장. 철저히 회사에 순종하며 오너 일가를 받들어모시고 직장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유학 보낸 ‘딸내미’ 대학 마칠 때까지 6, 7년은 더 버텨야 한다며 간도 쓸개도 빼놓고 일한다. 그에게도 한 땐 ‘A4용지처럼 스치면 손끝 베일만큼 날카롭고 빳빳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할 때 한 번, 애 낳고 나서 또 한 번, 대출 받아 집 사고 나서 또 한 번, 이렇게 차례차례 그 자존심이 무너져가, 이젠 자존심 따위 찾을 수도 없는 소시민이 돼버렸다. 삥땅회계 스페셜리스트인 김과장은 언제든 일터를 옮길 수 있지만 경리부 직원들에게 사표는 곧 나락이다. 가족들 때문에라도 그들은 껌딱지처럼 회사에 붙어있을 수밖에 없다. 불의엔 회피하고 압력엔 순응하고 성과급엔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바로 이런 직장인들의 현실을 김과장의 동료들이 짠내 풀풀 나는 리얼리티로 보여준 것이다. 우리네 부모, 조카, 자식들의 이야기다. 자칫 허공에 부유할 수 있는 코미디가 짠내 리얼리티로 지상에 안착해 시청자에게 위로를 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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