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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귓속말, 악은 왜 성실할까

 

귓속말이 의외로 동시간대 1위에 올라서며 순항하고 있다. '추적자', '황금의 제국', ‘펀치등을 쓴 박경수 작가의 작품으로 거대 로펌과 방산비리 재벌의 이야기다. 최근에 부패 기득권층을 법의 세계를 중심으로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귓속말바로 전에 방영됐던 피고인이 재벌, 검찰, 변호사 거대 연합에 위태롭게 맞선 전직 검사와 변호사의 이야기였다. ‘귓속말에선 거대 기득권 연합에 전직 판사인 변호사와 전직 형사가 맞선다. 비슷한 설정이라서 식상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그래서 귓속말의 선전이 의외라는 것이다.

박경수 작가의 전작들이 모두 무거웠기 때문에 귓속말의 분위기도 짐작할 수 있었다. 뚜껑을 연 결과 역시 무겁다. ‘김과장처럼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 것이다. 최순실 정국 이후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졌기 때문에 이젠 대중이 김과장과 같은 가벼운 이야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고전이 예상됐고, 초기 반응도 그렇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꾸준히 입소문이 퍼지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초반엔 낯설었지만 어느 정도 각 캐릭터가 이해되고 대립구도가 자리 잡자 시청자들이 불가항력적으로 끌려들어가는 이야기의 힘이 발휘됐다. 대립하는 캐릭터가 한둘이 아니다. 주인공인 이동준(이상윤)과 신영주(이보영)부터 원수지간으로 만났고, 거기에 로펌 수장과 재벌 그리고 각각의 자식들에 대법원장까지 모두 각자의 욕망으로 대립한다. 이 구도를 이해시키기까진 어려움이 있었지만, 일단 세팅이 끝나자 흡인력이 폭발했다.

폭발 에너지의 원천은 결국 공감이다. 우리 시스템, 우리 기득권 체제에 대한 불신을 박경수 작가가 탁월하게 형상화했다. 이 작품에서 대형 로펌은 법비(法匪)’ 즉 법을 활용하는 도적으로 불린다. 그 법비는 군사정권과 결탁한 재벌에 의해 키워지고 이용됐다. 그랬던 로펌이 이젠 장차관, 청와대 요직을 비롯한 사회 각계에 영향력을 뻗치고 전직 고위인사들을 고문으로 빨아들여 독자적 권력으로 자립하려 한다. 로펌과 재벌은 서로 권력투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이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서민이 나타나면 둘이 합쳐 억누른다. 서민은 그들이 법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권력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이 비정한 설정에 시청자들이 공감한 것이다.

 

작품은 생생한 대사들로 세상을 야유한다. “재판을 실력으로 하나? 인맥으로 하지”, “법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용해먹는 거이제. 법을 꾸어도 먹고 삶아도 먹는 분들하고 일항께 이라고 시상이 편해븐 것을 왜 몰라으까와 같은 대사로 법의 공정성이 작동하지 않는 우리 공화국을 풍자하는 것이다. 이런 대사들 중에 초반에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악은 성실하다였다.

악이 왜 성실할까? 자기 이익을 위하기 때문이고, 그것을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때문이기도 하다. 봉건사회에서 귀족은 저절로 특권을 누렸지만 헌법에 민주공화국이라고 돼있는 곳에선 특권을 위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또 숨겨야 할 것도 많다. 실무자 한 명, 수첩 한 권도 성실히 관리해야 한다.

공화국에선 법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강자는 법을 부려 특권을 누린다. 약자는 법의 방패로 자신을 지킨다. 그러므로 공화국에서 법은 권력 충돌의 전장이 된다. 식상하더라도 자꾸 다뤄질 수밖에 없다. 재벌 법비 연합에 서민 법조인이 맞서는 설정인 귓속말도 그래서 시청자의 지지를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