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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박찬주 사태, 국방장관의 경고가 황당한 이유

 

갑질 논란 박찬주 대장이 자신의 전역이 연기된 데 이의를 제기하며 인사소청을 냈다고 한다. 박 대장은 갑질 의혹이 폭로되자마자 바로 다음 날에 전역지원서를 냈었다. 많은 비판이 제기됐고 국방부는 전역 신청을 받아주지 않은 채 진상조사를 하기로 했다. 이에 불복하며 다시 전역을 요청한 셈이다. 

전역부터 하면 군인 연금을 받는 데에 불이익이 없지만 징계 후 불명예 전역하면 손해가 생긴다. , 군에서 조사 받으면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대장이기 때문에 부실 조사로 끝날 수도 있지만 국방부의 의지에 따라선 조사와 처벌의 수위가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전역 후 민간인이 되면 조사가 어려워진다. 민간 검찰이 군을 수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 갑질로 분류 되서 처벌도 경미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역을 재촉하는 것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종의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장은 처음 전역지원서를 내며 군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자책감때문이라고 했는데, 자기 살 길을 찾기 위한 꼼수로 군의 명예를 또 훼손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방부 검찰단에 출석하며 정말 죄송한 마음이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지금은 조사에 협조하며 자숙할 때다. 반대로 인사소청을 제기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결국 죄송하다는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대한민국 군을 이끌었던 대장이 갑질 논란에 휩싸인 것도 문제지만, 그 문제가 드러난 후에 당당하게 책임지는 모습이 아닌 꼼수로 회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국민에게 자괴감을 주고 있다. ‘일국의 대장이 이런 수준이었다는 말인가?‘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박 대장은 자신이 나름대로 부인의 갑질을 막으려고 했으며, 부인의 부당 대우를 구체적으로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장관의 경고 전화를 받고 부인에게 크게 호통 친 후 약 한 달 간 부인을 수도권 본가에서 생활하도록 할 정도로 부당행위를 막았다는 것이다.

 

이것도 이상하다. 함께 거주하면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갑질을 몰랐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또 정말 부인을 막으려고 했다면, 부인이 공관병에게 명령할 수 없도록 조치하면 그만이다. 병사들에게도 자기 부인 말을 듣지 않도록 명령하면 된다. 하지만 박 대장이 공관병들에게 내 부인은 여단장급이라면서 부인의 권위를 오히려 세워줬다는 제보가 있었다. 자신은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말이 변명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육군 대장이 이런 구차한 느낌을 주는 것도 국민에게 자괴감을 준다. 

이번 사건에서 더 큰 문제는 군 당국이 박 대장 부부의 갑질을 진작부터 인지했었다는 대목이다. 작년 7월에 한민구 당시 국방부 장관이 부인이 공관병 등을 부당 대우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전화를 박 대장에게 했다고 한다 

공관병 부당 대우에 관한 정보가 장관한테까지 올라가서 장관이 직접 주의를 줄 정도면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고 봐야 한다. 지휘관이 공관병을 사적으로 부리는 것은 군대에서 만연한 일이기 때문에 웬만한 수준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례를 넘어서는 수준의 갑질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 정도의 갑질이 포착됐는데도 장관이 전화를 통한 구두 경고로 그쳤다는 것이다. 공관병은 업무규정상 공적인 일만 하도록 돼있다. 업무규정이 없다고 해도, 주권자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했는데 지휘자가 부당한 대우를 했다면 이건 중대 사안이다. 특히 공관병의 몸종화는 이미 수십여 년 전부터 국방부에서 금했었다. 그걸 만인의 모범이 돼야 할 대장이 어겼다면 확실하게 조치했어야 했다. 전화 경고 정도로 그쳤다는 것 자체가 우리 국방부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했는가를 보여준다. 

대장 부부의 개인적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 군 관계자는 박 대장은 부인이 공관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공관병이 일하는 장소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나름대로 부당 대우를 막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이 말도 우리 군이 얼마나 무개념인지를 보여준다. 정말 막으려고 했으면 명령권자가 막지 못할 리가 없는데도, 엉뚱한 궤변으로 박 대장을 두둔하는 느낌이다. 

이러니 군이 한국에서 후진적인 집단이라는 말이 나온다. 봉건시대엔 고위인사들에게 몸종이 있었지만 현대엔 사라졌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도 국가가 몸종을 지급하진 않았다. 그런데 군대엔 아직도 봉건적인 몸종 문화가 남았다. 민주공화국 수준으로 진화하지 못한 화석 같은 조직인 것이다.

 

과거 군사정부가 가능했던 것은 군이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선진적인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 주도로 봉건문화를 일소하고 근대화를 이뤘다. 그후 우리 사회는 초현대화로 가고 있는데 군은 여전히 과거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보, 안보노래만 할 것이 아니라 군 문화를 현대로 끌어올려 국민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고위직들의 잘못된 행태에부터 철퇴를 가해야 한다. 한민구 전 장관처럼 전화 경고나 했다간 군의 현대화는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