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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영화계 성폭력, 회식자리가 무섭다

영화계 종사 여성 9명 중 1명꼴로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여성영화인모임 등이 작년 6월부터 10월까지 배우, 연출, 작가, 스태프 등 영화산업 종사자 74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남성의 2.6%도 같은 피해를 경험했다고 한다

영상계에는 과거부터 욕망추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탈을 관대하게 봐주는 문화가 있었다. 욕망을 억제하는 모범적인 습성을 범생이기질이라면서 금기시하고, 무제약적으로 욕망을 추구할 때 예술적인 끼가 제대로 발현된다는 믿음이 있다. 성적인 부분이 그런 욕망추구의 대표적인 분야다.

 

성은 인간 욕망의 가장 근원적인 지점이고, 그래서 문명사회의 제도와 종교 등에선 성적 에너지의 발현을 크게 경계해왔다. 성적 욕망의 발산을 억압하는 것이 곧 사회화이고 문명화인 것이다. 예술은 기존 사회의 인습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데, 사회적 억압의 핵심이 바로 성억압에 있기 때문에 성적 욕망의 추구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자유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자칫 과도한 일탈을 초래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런 생각에 권력과 마초의식이 더해질 때 파괴적인 결과가 빚어진다.  

예술계에는 견제 받지 않는 절대권력들이 있다. 영상업계의 감독이나 PD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에 MBC 스타급 PD의 성추행 의혹 사건이 불거졌었다. 외주사의 비정규직 편집PD가 추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외주사 비정규직 스태프에게 본사 PD는 하늘같은 존재다. 저항이 쉽지 않고, 일을 당한 후에 고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사건도 피해를 당한 당사자는 말을 못 했고, 후임자가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논란이 된 후 보조출연자도 해당 PD에게 성추행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는 조사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업계 전체로 보면 터질만한 일이 터졌다는 분위기다.

 

그 정도로 영상업계의 잘못된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는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영화계 여성 9명 중 1명 즉 11.5%가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는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런 사회를 정상적인 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원하지 않는 신체접촉을 하거나 강요받았다는 여성 응답자는 19%에 달했다. 5명 중 1명꼴이다. 해도 너무한다

가해자 성별은 여성 7.9%인데 반해 남성이 91.7%.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다. 사건 발생 장소는 회식 등 술자리가 57.2%. 영화계 여성 입장에선 업계 남성들과 마음 놓고 회식도 못할 판이다.

 

일을 당해도 문제제기도 못한다. 그 자리에서 가해자의 잘못을 지적한 사람은 15.7%에 불과했다. 나머진 불이익을 걱정해 오히려 가해자의 눈치를 살핀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실제로 불이익을 당한다. 가해자가 약자인 경우보다 강자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가해자가 강자인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원초적 욕망이나 술로 인한 심신미약, 단수 실수 등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그런 것들이 문제라면 약자도 강자에게 실수를 해야 하는데 약자는 아무리 술에 취하고 욕망이 들끓어도 높은 상대에게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변명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근본적인 의식이 잘못됐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잘못된 예술관념, 잘못된 여성관, 마초의식, 권력에의 도취 등이 문제다. 시민의식을 확립해야 한다. 아무리 기존 인습에서 일탈하고 강자의 자리에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시민을 존중하는 것이 예외 없는 철칙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예술이 성범죄의 면죄부가 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