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능 음악 칼럼

아저씨들은 어떻게 여자들을 밀어냈을까

 

 최근 여성들이 나오는 버라이어티였던 <골드미스가 간다>가 약 1년 8개월 만에 종영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박명수, 탁재훈, 김구라 등이 출연하는 <뜨거운 형제들>을 신설했다. 이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주말 버라이어티가 남성만의 세상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건 말이다.


 <골드미스가 간다>가 퇴출되기 전에도 주말 버라이어티는 이미 남성들, 그중에서도 특히 30대 이상 아저씨들의 세상이었다. 여성들의 영역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이번에 주말 여성 버라이어티가 사라지며 그 구도가 선명히 부각된 것이다.


 그나마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이 보조적인 역할로라도 나오는 <패밀리가 떴다2>는 시청자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만 여성 출연자들이 의미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건 이 프로그램의 컨셉트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자들끼리 가상결혼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 외에 시청자 다수의 보편적 사랑을 받는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남성들이 완전히 장악했다. <무한도전>이 그 선두였다. 그 다음엔 <1박2일>이 뒤를 이었고, <남자의 자격>이 연이어 성공했으며, 토요일엔 <천하무적 야구단>이 남성성을 과시하고 있다. 간혹 호평을 받는 <단비>에서도 여성들은 극히 제한적인 역할로만 출연할 뿐이다. 왜 시청자들이 지금 남성들, 아저씨들에 꽂힌 것일까?



- 생고생엔 남성들이 유리했다 -


 기본적으로는 돌고 도는 트렌드의 순환을 지적할 수 있겠다. 한때 남녀동수의 출연자들이 짝짓기 놀이나 게임을 하는 버라이어티 포맷이 큰 인기를 끌었었다. 어느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그런 포맷에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최근 <패밀리가 떴다2>가 짝짓기의 분위기를 내려고 하지만 시청자로부터 질타를 받을 뿐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무한도전>이 리얼버라이어티의 쓰나미를 몰고 왔다. 리얼버라이어티는 주말 예능 판도를 뒤흔들었고, 그 이전 포맷들을 모두 구시대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무한도전>이 선도한 리얼버라이어티란 다른 말로 하면 ‘생고생 버라이어티’가 된다. <무한도전> 이후 예능 촬영은 체력전이 됐고, 시청자는 이제 웬만한 고생엔 자극도 받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남성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여성들이 영하 10도의 날씨에 야외취침을 할 수 있을까? <무한도전>은 한겨울 알래스카의 얼음 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자고 촬영을 강행했다. <1박2일>은 약 10센티미터에 달하는 두꺼운 얼음을 깨고 전원이 입수했다. <남자의 자격>도 겨울에 계곡물 입수를 선보였다.


 최근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수행하는 과제들은 그야말로 ‘무한도전’이다. 다리를 절며 마라톤에 도전하고, 콧물을 줄줄 흘리며 지리산에 오른다. 수십 킬로그램의 장비들을 지고 산악행군을 하기도 한다. 비오는 날 추격전을 벌이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박명수는 피를 흘렸고, 이하늘은 이빨이 부러졌다. 가혹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도 수시로 발생한다. 2년 전 <1박2일>에서 한겨울에 옷을 벗었을 때 사람들은 너무하다고 했지만, 이제 그 정도는 뉴스거리도 안 된다.


 여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이다. 아무데서나 자고, 아무데서나 씻고, 생리현상까지 그대로 내보내는 리얼버라이어티라는 괴물은 여성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 아저씨들이 더 정겨웠을까? -


 리얼버라이어티엔 단순히 생고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는 가혹물이나 즐기는 새디스트가 아닌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의 진짜 정신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우애’다. 남성 출연자들은 극한의 고생을 함께 하고, 극단적인 과제를 함께 성취해내며 진짜 형제 같은 우애를 쌓아간다. 시청자들은 여기에 공감하고, 위안을 얻고 있다.


 불황과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주말 저녁 한때만이라도 인간적인 훈훈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일까? 똑같이 고생하는 리얼버라이어티였지만 우애를 느낄 수 없었던 <라인업>은 실패했다. 이경규는 우애 코드를 살려 <남자의 자격>을 만들었고, 시청자는 여기에 공감했다.


 최근에 사람들은 젊은 여성들보다는 남성들, 특히 30대 이상의 소탈한 아저씨들에게서 인간미를 느끼고 있다. 요즘 시청자들의 젊은 여성에 대한 정서를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개그콘서트>의 ‘남보원’이다. 거기에서 여성은 화려한 것만 좋아하고, 꾸미기 좋아하고, 어느 정도는 이기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남성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여성 시청자들도 ‘남보원’의 이런 시각에 동조한다. 주기적으로 터지는 ‘00녀’ 사태에서도 젊은 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을 알 수 있다. ‘00녀’에 대한 분노는 사실 젊은 여성들에 대한 일반적 악감정에 그 맥이 닿아있다. 그 이유에 대해선 따로 진지한 사회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아저씨들의 형제애에서 사람들은 여성에게서보다 훨씬 인간적인 느낌을 받는다. 주말 리얼버라이어티가 시청자에게 공감을 주는 코드에는 ‘향수’도 있는데, 이 때문에도 남성들 중에서 연령대가 높은 아저씨들이 환영받는다. 대체적으로 대중문화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동반상승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19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그런 변화의 선두에 서있다.


 여성은 연령대가 낮을 경우 화려함, 귀여움, 섹시함 등으로 부각된다. 걸그룹이 대표적이며 주로 집단토크쇼나 여타 쇼프로그램에서 활약한다. 특이하게 여성 버라이어티로 작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청춘불패>의 경우, 걸그룹의 그런 매력을 남성 진행자가 소개해주는 포맷이다. 연령대가 높은 여성은 꾸밈을 버린 화통한 토크로 <세바퀴>같은 토크쇼에서 활약한다. 사람들은 여성에게서 화려함이나 아줌마 수다라는 코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리얼버라이어티의 남성 출연자들은 대체로 평균이하를 표방한다. 외모적으로도 평균이하처럼 보이는 출연자들이 많다. 그런 모습에 시청자들이 인간미를 느끼는 것인데, 여성의 경우는 평균이하처럼 보이기 힘들다. 외모적으로 평균이하인 여성을 시청자는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외모가 뛰어난 여성은 그 자체로 우월하게 보이기 때문에 평균이하를 가장할 수 없다.


 리얼버라이어티의 남성들은 몸을 던지고,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여성은 그러기도 힘들뿐더러, 모처럼 그렇게 할 경우에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드센 여자’라는 비호감 딱지를 받는 경향이 있다. 몸을 던지는 리얼버라이어티와 향수·우애의 시대가, 신체적 불리함에 사회적 편견까지 안고 있는 여성들에겐 총체적으로 불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걸그룹이 꽃이 되고 아줌마들이 화통한 토크를 맡고 있는 속에서, 예능 중의 예능인 주말 저녁 버라이어티를 아저씨들이 점령한 시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