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격> 월드컵 특집이 마무리 됐다. 이전 방송이 경기중계 재탕과 늘어지는 구성으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에 비해, 이번 마지막 편은 만족스러운 내용이었다.
일단 속도감이 있었다. 경기 하나를 가지고 사골 우려먹듯이 우려먹지 않았다. 여러 경기의 내용이 전개되다보니 템포가 빨라졌고, 각각의 경기의 내용에 따라 프로그램에도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이 생겨날 수 있었다.
적절한 예능적 재미도 가미됐다. 특히 한준희 해설위원이 의외의 활약을 했다. 해설위원 모드에서 남편 모드로 넘어갈 때 빵 터졌다. 이경규가 계속 해서 한준희 해설위원을 놀리면서 한 위원으로 인한 재미를 극대화했다. 그야말로 최대한 ‘뽑아먹은’ 것이다. 덕분에 아기자기한 웃음이 만들어졌다. 이경규의 능력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정서적 몰입도도 높았다. 경기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출연자와 붉은악마의 희비가 화면으로 잘 전달됐다. 아르헨티나에게 참패당할 때 붉은악마의 비분강개한 모습은 가슴을 울리는 바가 있었다. 나이지리아와 대전할 때도 시시각각 급변하는 현지의 정서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남자의 자격>은 이번에 월드컵 독점중계로 인한 방송사간의 다툼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었다. KBS가 정식 중계팀까지 동원해 ‘맛좀봐라!’로 끼어들었고, SBS가 지체 없이 ‘어딜감히!’로 응수했기 때문이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1, 2편의 예능적 재미가 위축된 감이 있었다. 다행히 3편에서 예능프로그램 본연의 재미를 찾아서 다행이다. 차후에 이런 국민적 관심사 가지고 방송사끼리 독점 다툼 벌이는 추태가 반복돼선 안 된다. 예능을 예능으로만 즐기기 위해서라도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접근권은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할 것이다. 제도적 개선을 기대한다.
- 어떻게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악플이 -
가끔 한국사회의 냉혹함에 놀란다. 이번에도 놀랐다.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김보민 관련 기사에 달린 악플들 때문이다.
어떻게 남편의 실수에 가슴 졸이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도 거기에 악플을 달 수 있을까? 심지어 장모에 대한 악플도 있었다. 정말이지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냉혹한 반응이다.
난 <남자의 자격>을 보며 ‘이 정도면은 김남일과 김보민을 향한 악플들이 잦아지겠지’라고 생각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에게는 쉽게 아픈 소리를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겐 그러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의 실수에도 쉽게 욕을 하지만 친지의 실수엔 안 그런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사정이란 것이 있고, 상처 받을 심장이 있는 법이다. 생판 남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에 쉽게 욕할 수 있다. 하지만 친지들의 경우엔 그들의 사정을 우리가 잘 알 수 있고 그들의 상처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웬만큼 실수해도 욕을 잘 안 하게 된다. 이게 인지상정이다.
그런 인지상정에 비추어봤을 때, <남자의 자격>이 김남일의 실수에 대한 그의 입장을 부각시키고, 김보민이 그 장면을 볼 때의 아픔을 정서적으로 부각시킨 정도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욕하는 소리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청자가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내가 순진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욕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욕하고 있었다. 그런 장면을 보고도! 우리가 욕하지 않아도 이미 잘못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자책하고 있으며, 충분히 아파하고 있는 그 모습을 뻔히 보고도 말이다.
이렇게까지 우리 사회 분위기가 냉혹하고 살벌한지는 미처 몰랐다. 우리 사회가 날로 황폐해진다는 생각은 항상 했었지만, 이번에 방영된 <남자의 자격>같은 그림을 보고도 여전히 욕을 할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건 생각보다 더 심하다. 그래서 놀랐다.
월드컵을 국민적 축제로 즐기기 위해 사라져야 할 것이 방송사의 독점 경쟁만은 아니다. 바로 이런 ‘증오’도 사라져야 한다. 국가대항전과 증오가 결합하는 순간 축제는 끝이다. 그때부터는 환멸스러운 추태만 있을 뿐이다. 다음부터는 독점이나 증오로 얼룩지지 않는 축제를 즐길 수 있기만을 바란다. 물론 대자본의 상업주의, 노출상업주의, 무질서의 폭주도 견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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