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N의 오디션 프로그램 <코리아 갓 탤런트>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시청자 사과 및 관계자 징계'라는 징계 처분을 받았다. 지난 달 최성봉 출연과 관련된 편집 때문이었다.

당시 최성봉의 노래를 들은 시청자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는 3살 때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5살 때 구타에 못 이겨 뛰쳐나온 후 혼자 살아왔다고 했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말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시청자 눈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오디션에서 중졸 수리공이라든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던가 하는 식으로 고생한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시청자가 연민을 느끼고 있을 때 나온 최성봉의 목소리! 그는 '한국판 폴 포츠'라는 표현을 위해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의 성악곡을 들은 사람들은 폭풍 감동에 휩싸였다.

그런데 방송이 끝난 후 다른 얘기들이 나왔다. 방송에선 그가 5살 때 이후 혼자 커온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사실은 예술고등학교에 다녔던 사람이라는 증언이었다. 사람들은 곧 배신감을 느끼고 최성봉을 비난했다.

바로 이 사건 때문에 <코리아 갓 탤런트>가 징계를 받은 것인데, 알고 보니 최성봉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예술고등학교에 다녔다는 말을 이미 했고 촬영분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제작진이 그 부분을 빼고 방송을 내보낸 것이다.

역경을 이겨낸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를 만들려는 제작진의 의욕이 지나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최성봉의 인생에서 가장 어두웠던 이야기와 그의 목소리를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티즌은 최성봉의 신상을 곧 밝혀냈고 과장된 스토리의 작위성이 폭로되었다.

만약 최성봉이 사전에 예술고등학교에 다녔다고 말한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없었다면. 그는 네티즌에게 거짓말쟁이로 찍혀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청년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편집 때문에 매장당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징계는 그런 이유로 내려졌다. 너무 드라마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다.


- 정말 공정함을 원할까? -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 이유를 분석하는 TV 뉴스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대중이 공정함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정함에 대중이 끌린다는 건데 정말 그럴까? 대중이 원하는 것이 정말 공정함일까?

특혜 없이 자신의 실력만으로 객관적인 판정을 받아 승승장구하는 구도에서 대중이 공정한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공정하게 실력 경쟁을 했더니 역시 잘 생기고, 배경 좋고, 돈 많은 집 자식이 이기더라' 이런 스토리를 대중은 원하지 않는다. 대중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불쌍한 사람의 휴먼드라마', 거기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대리만족이다.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청자 투표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시청자 투표는 절대로 공정하지 않다. 대중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휴먼드라마에 몰표가 나오는 것이 시청자 투표의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 끝난 <위대한 탄생>을 꼽을 수 있겠다. 여기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김태원과 외인구단'에게 거의 묻지마 몰표가 쏟아졌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팀원 전체에 대한 몰표였다. 반대로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감싸고 돈 멘토 휘하의 도전자들은 손해를 봤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멘토 때문에 표를 못 받았다고 했다. 이것을 공정하다고 하기는 힘들다.

오디션 열풍의 기폭제가 된 <슈퍼스타K> 시즌2에서도 가장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던 허각이 몰표를 받았었다. 허각 말고도 왕따 스토리를 가지고 있던 장재인이 인기를 끌었고, 불우한 가족사라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던 김보경이 탈락했을 땐 시청자의 항의가 빗발쳤다. 반대로 얄미운 스토리로 부각된 김그림은 네티즌의 공적이 되어 가족까지 고통받았다. 실력보다는 스토리였던 것이다.

한국 최고의 가창력을 보여준다는 <나는 가수다>마저도 스토리에 좌우된다. 임재범은 부활한 락의 신화, 방황을 끝내고 돌아온 진짜 가수, 아내의 암투병,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 등의 스토리로 부각됐다. 사람들은 임재범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역시 음악은 감동을 줘야 해!'를 외쳤다. 아이돌로 순탄하게 살아왔고 딱히 인생의 감동을 줄 여지도 없는 옥주현은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그래봤자 감동이 없다'며 네티즌의 질타를 받는다.

이렇게 대중이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에 열광하는 분위기에서 오디션 제작진이 그것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다. <코리아 갓 탤런트>가 시작됐을 때는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포화상태여서, 스타를 띄우기 위해 정말 고심했을 것이다. 그때 최성봉이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그의 감동드라마를 최대한 부각시키는 쪽으로 편집이 이뤄졌을 것이다.


- 출연자도 매장시킬 수 있는 위험한 휴먼드라마 -

이건 어느 특정 프로그램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오디션이 어떻게든 휴먼드라마를 부각시키려 노력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별로 휴먼드라마와 관계없을 것 같은 <키스 앤 크라이>에서마저도 가장 화제가 됐던 건, 김병만의 '불굴의 도전' 스토리였다. 요즘 <남자의 자격> 합창단편에서도 매주 '한국판 폴 포츠'라는 화제가 터져 나온다.

오디션 관계자라면 또 다른 폴 포츠를 찾기 위해,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휴먼드라마를 발굴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오디션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코리아 갓 탤런트>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 일을 계기로 모든 제작진이 드라마를 만들어내기 위해 출연자를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증거 영상이 없었다면 최성봉은 정말 매장당할 뻔했다. 이렇게 제작진의 드라마 강박은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스토리가 부각되는 가운데 과도한 사생활 공개로 피해를 입는 출연자도 나타날 것이다. 또 출연자들을 드라마의 캐릭터로 꾸미는 과정에서 악역도 나타나게 되는데, 그 악역은 김그림처럼 엄청난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대중의 휴먼드라마에 대한 열광에 프로그램이 영합하면, 시청자의 과몰입과 과열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면 몰표가 나오는 대신에 누군가가 피해를 입고, 자칫 <위대한 탄생>처럼 프로그램 자체의 흥미조차 저하될 수 있다. 실력으로 인재를 발굴한다는 애초의 취지도 퇴색된다. 그러므로 시청자도 제작진도 냉정해져야 할 텐데, 그러기에는 휴먼드라마의 뜨거운 감동이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문제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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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실을 담아내면 아무일 없을터인데...
    우린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시하는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보고가요

  2. 맞습니다. 휴먼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작진의 의도 또한 자극적으로 흐르

    는것같은 느낌도 듭니다

  3. 한동안 글이 안 올라와서 걱정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모두 휴먼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데,
    환타지가 아니라도
    휴먼드라마가 많은 세상은 그만큼 고난과 역경이 많은 세상이란 세상이란 거겠죠.
    그 고난과 역경을 날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참 어렵네요...

  4. 너무 과한건 늘 객관성을 잃고 부작용을 낳게 되는데..뭐든지 너무 과하게만 돌아가는것 같아서 씁쓸해요.소비자도 공급자도 더더더더!!이게 현실이니..

  5. 그 스토리라는 건, 대부분 노력하고 자수성가하면 역경을 딛고 성공한다는건데, 그게 마치 MB의 성공스토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바로 이런 스토리에 열광한다는 게 문제인 것 같네요. 이젠 그런 것들이 더이상 감동스러울 것도 없다고 봅니다.

    전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본주의적인 판타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작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거기에 들어가기 위한 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역경을 겪으면 그냥 그대로 좌절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 미디어와 대중은 오로지 그것을 딛고 일어선 아주 극소수에만 주목을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운이 좋았던 소수의 눈물나는 감동스토리보다는 그다지 감동스럽지 않더라도 좀 더 다수가 편안히 웃을 수 있는 스토리가 연출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6. 죄다 대한민국 불쌍하기 오디션. 그나마 제일 형평성 있어보이는 프로가 탑밴드인듯.

  7. 다른 부분은 많이 공감하지만, 시청자 투표가 공정하지 않다는 부분은 조금 과장이 있다고 봅니다. 문화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들 보다 오히려 공정한게 바로 시청자 투표라고 봅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한국 리얼리티 방송을 요즘 애청중인 시청자인데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피아노 클래식 기타 같은 악기도 다루고 합창단 활동도 해서 음악과는 아주 친숙합니다. 음대에서 작곡을 공부하신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신조는 음악은 대중에게 어필해야 한다 였습니다. 보수적이고 일반인이 평가하기 힘들다고 알려진 클래식 음악을 하신 분임에도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니 대중 문화에 대한 생각은 말할 것도 없죠. 그리고 저는 이런 어머니의 생각에 100프로 공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치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미국 프로그램은 전적으로 시청자에게 맡기죠. 가령, American Idol이 대표적이죠. 미국에서도 시청자들이 잘못 뽑았느니 어쩌구 말이 많지만 그건 누가 되더라도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1등이란게 대다수의 동의를 얻을 만한 사람이라면 논란이 없겠지만, 뽑힌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가 거의 없을 때에는 항상 이견이 있는 사람의 논리에 의한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죠.

    예로 드신 한국 프로그램 들에서 시청자들의 동정에 의해 많은 변화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조금 영향이 있을 순 있겠죠. 그렇지만 그것이 결과에 큰 영향을 줄 만큼 이었을까요.

    장재인의 경우 이미 실용음악과에서 대표주자로 뽑을 만큼 실력을 인정 받은 존재인 데다가 노래 실력에 의문을 표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승에 가지 못했죠. 그렇다고 그 과정이 올바르지 않았다고 볼 수 없는게 당시에는 제 생각이지만 존 박이 해당 공연을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허 각의 우승은 스토리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누굴 올릴 것인가 하면 존 박은 가창력이 안되고, 장재인은 선곡등의 이유로 더 좋은 공연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다시 하면 장재인이 우승할 수도 있지만 프로그램의 구조상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시나리오 였습니다.

    임재범의 경우 스토리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긴 했지만 두번째 공연에서는 4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김태원의 외인구단 같은 경우, 제게는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실력 자체가 나중에 남은 멤버들이 가장 맘에 들게 공연을 했었습니다. 스토리로 따지면 노지훈이 손진영보다 훨씬 좋죠. 손진영도 다듬어 지지 않았지만 순수한 소리가 그만큼 올라갈 실력이 되어 보였고 오히려 전문가들의 편견으로 인해 많은 손해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파이널에 갔던 백청강, 이태권보다 적어도 주어진 무대에서 더 좋은 공연을 펼쳤던 경연자를 찾기도 힘드네요. 저는 음정 다 틀리는 백세은과 무대 장악력이 안되는 데이빗 오가 남아있는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한가지 더 얘기하자면, 과연 대통령을 일반인이 투표해서 뽑는 것은 올바른 선택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전문가들이 투표하면 그 선택이 더 올바를까요? 음악과 정치는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의 collective한 의견을 모아서 반영하고 그것이 현재까지는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비판적인 태도로 글을 남겼지만 훌륭한 글들을 읽다가 한가지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이견을 장황하게 남겼다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읽다가 기분을 상하게 하는 공격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