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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왜 개그콘서트, 나꼼수, 안철수인가


<개그콘서트>에 오랜만에 본격 사회풍자 코너가 나타났다. 바로 '사마귀 유치원'이다. 이 코너는 방영 2회 만에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동안 사회풍자 개그가 없었기 때문에 더 화제가 됐다.

<개그콘서트>에선 그전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나 '동혁이형'과 같은 사회풍자 개그가 사랑받았었다. 하지만 보수층의 공격이 있은 후에 모두 사라졌다. 남은 건 남성우월주의자의 우매함을 비웃는 '두분토론'뿐이었다. 잠시 표류하던 <개그콘서트>는 최근 들어 일상사의 심리를 묘사하는 개그로 인기를 모았다.

공감의 두 축인 일상묘사와 사회풍자 중에 사회가 약해진 상태였던 것이다. 특히 권력에 대한 풍자가 사라졌었다. 그랬다가 '비상대책위원회'로 사회풍자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이 코너는 관료주의의 비합리성, 경직성 등을 풍자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사마귀 유치원'에 이르러 본격적인 사회풍자를 시도하고 있다.

'사마귀 유치원'은 유치원 어린이들이 미래의 꿈을 이야기하면 최효종이 나와 그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는 내용이다. 최효종이 맡은 캐릭터 이름은 '일수꾼'이다. 여기에서부터 풍자의 재치가 번뜩인다. 일수꾼은 막대한 민간부채와 신용불량자의 시대를 표현하는 이름이다. 천진난만하게 아름다운 꿈을 꾸는 아이들 앞에 나타나 현실의 냉엄함을 일깨워주는 일수꾼.

'사마귀 유치원' 1회에선 선생님이 돼서 예쁜 집에 살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최효종이 이렇게 말해줬다. '교사가 되면 초봉이 140만원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숨만 쉬고 살면 89세에 내 집 장만을 할 수 있다. 아이 둘을 낳을 경우 양육비가 1인당 2억4000만 원씩 들기 때문에 아이들과 숨만 쉬고 살았을 때는 217세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이런 냉소적인 대사는 88만원 세대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2회에선 풍자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최효종은 '판사가 된 다음 집권 여당 수뇌부와 친해져서 여당 텃밭에서 출마를 하면 된다'며 '시장에 가서 할머니들과 만나 평소에 먹지 않던 국밥을 한번 먹으면 된다'고 했다. 지난 대선 이명박 후보의 국밥 광고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여기에 대해 근래 들어 가장 뜨거운 호응이 <개그콘서트>에 쏟아졌다.

뒤이어 최효종은 '상대후보의 약점을 잡으라'며 '혹시 아내 이름으로 땅투기를 하지 않았는지, 세금은 제대로 냈는지, 사돈에 팔촌까지 뒤지면 반드시 약점이 나온다. 그것을 개처럼 물고 늘어져라'라고 해서 폭소를 안겨줬다. 이것은 정쟁과 부패로 얼룩진 정치판을 떠올리게 했다.

- 시민의 답답증이 <나는 꼼수다> 열풍으로 -

사람들은 지금 답답하다. 이 세상에 뭔가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데 공적인 장이 그런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여긴다. 방송뉴스의 신뢰도도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추락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자유롭게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때 활성화됐었던 아고라나 블로그의 여론형성 기능이 최근 들어 축소됐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웃음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요즘 인터넷 방송인 <나는 꼼수다>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이것은 부패추문과 온갖 의혹으로 점철된 현 집권층을 통타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현실을 말해주는 것을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표현 중의 하나가 '현직 대통령도 코미디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나라'라는 말이다. 그래서 민주화된 이후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대통령 성대모사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요즘엔 이명박 대통령이 코미디 소재가 되는 모습을 상상도 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 때만 해도 노무현은 그냥 노무현이었다. 지금은 이명박을 이명박이라고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다시 대통령 이름을 영어 약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명박이라고 하면 불경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시 권위주의의 시대가 돌아온 것이다. 대통령에 대해선 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회.

사람들은 진실한 '말', 후련한 '말'을 원하고 있다. 기득권 체제의 문제가 공적인 장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자, 풍자가 됐든 인터넷 방송이 됐든 현실에 대한 생생한 고발을 찾는 것이다. 답답증을 뻥 뚫어줄 통쾌한 말을 갈망하는 시대다. 이명박 정부 말기가 되면서 온갖 측근 비리가 터져 나올 것이고, 진실에 대한 요구는 더 커질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의 실체, 흑막 속에서 벌어지는 밀실거래의 실체를 점점 더 알고 싶어한다.

- 답답증이 안철수 돌풍도 만들었다 -

제도 방송이 사람들의 답답증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해서 <나는 꼼수다> 돌풍이 일어난 것처럼, 제도 정치권도 답답증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했고 그래서 안철수 돌풍이 나타났다. 기존 정치권이 이토록 철저하게 대중의 외면을 받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기존의 시스템과 공적 플레이어들을 총체적으로 불신하고 있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래서 '사마귀 유치원'같은 현실풍자가 환영받는 것이다.

최근에 드라마 <시티헌터>가 사랑받은 것도 사회풍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티헌터>에서 극 중 '나쁜놈'들로 설정된 것은 가난한 아이에게 갈 복지예산을 빼돌린 정치인, 군납비리와 무기구입비리를 저지른 정치인, 돈을 쌓아놓고 등록금 올리려는 사학 이사장, 그리고 비리 재벌이었다. 검찰은 그들에 대해 무력했고 주인공이 직접 나서서 징벌했다. 대중은 거기에 박수를 쳤다. 우리 이상으로 권위주의와 부패에 대한 답답증을 앓고 있는 중국의 젊은이들도 <시티헌터>를 보고 통쾌해했다. 그래서 요즘에 이민호의 인기가 중국에서 치솟은 것이다.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속을 후련히 풀어주는 것에 환호하는 건 필연이다. 마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답답증을 후련히 풀어줄 것만 같은 이미지의 안철수가 뜨겁게 환영받은 것처럼, 기존 방송에서 느꼈던 답답증을 후련히 풀어주는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역시 뜨거운 환영을 받을 것이다.

<개그콘서트>가 사회풍자를 통해 이런 시대적 열망을 담아낸다면 한국 코미디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풍자의 칼날이 날카로워져 대중의 호응이 커질수록, 동시에 커지게 될 기득권 체제의 압력이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