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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표절해도 찬사 받는 표절공화국

 

김혜수가 본의 아니게 인류정신사에 이름을 남겼다. 표절하고도 찬사를 받은 기적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됐기 때문이다. 전무후무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까?

 

김혜수가 찬사를 받은 것은 흔쾌히 표절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학위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반응은 뜨겁다. ‘27년 내공이 빛났다’, ‘쿨하고 멋졌다’, 이런 식이다. 한 매체에선 ‘김혜수의 쿨한 자세를 배우라’는 기사를 내보내라고 지시까지 떨어졌단다.

 

이것은 첫째, 차별성 때문이다. 표절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통째로 복사’했다는 지적을 받아도 온갖 변명을 하며 뭉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전여옥 전의원은 오히려 원저작자에게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구구한 변명에 지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뻔뻔함에 숨이 막혔다. 그럴 때 김혜수가 한 방에 인정, 한 방에 사과, 한 방에 학위반납했다. 답답함을 한 방에 날려준 것이다.

 

둘째, 표절불감증 때문이다. 쿨하게 인정하건 안 하건 표절은 나쁜 짓이다. 절대로 찬사 받을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과해서 멋지다’, ‘김혜수는 학위덕을 안 봤으니 표절도 별일아니다’는 식으로 해괴한 논리들이 등장한 건 사람들이 표절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방증이다. ‘어차피 다 하는 표절, 누굴 탓하랴’는 댓글도 굉장히 많았다. 표절이 하도 만연하다보니 국가적으로 표절불감증에 빠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김혜수 표절 사과 찬사 사건’은 한국사회에 얼마나 표절문화가 심각했는가를 상징하는 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해외에서 한국이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가를 표현하기 위한 사례로도 많이 거론될 만한 일이다. 한 마디로 나라망신이고, 후손에게 망신이다.

 

 

 

◆총체적으로 엉망진창

 

한국은 사회지도층부터가 무지막지하다. 앞에서 언급한 전여옥 전의원은 표절이 드러났는데도 여전히 국회의원으로 당당했다. 표절로 유명한 문대성 의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장도 ‘표절해서 죄송합니다’하고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 한 대형교회 목사도 ‘표절해서 죄송합니다’라고 했지만 사퇴한다는 말은 없었다.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도 표절논란에 사과했지만, 사퇴는 하지 않고 ‘사회악을 척결하겠다’라고 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표절이 만연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표절문화를 비판해야 할 언론도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2006년에만 2백50여건의 표절기사를 적발했다. 남의 기사를 마치 자신이 직접 취재한 것처럼 내는 관행이 만연해있다. 심지어 남의 시론을 베껴 사설에 썼다가 걸린 사건도 있었다. 표절에 대해 가장 엄격해야 할 지식사회도 말이 아니다. 그전부터 외국 것을 번역해 자기 것인 양 발표하는 문화가 있어왔다. 과거에 원로 지식인들이 표절을 방지하자는 책을 냈는데, 바로 그 책이 표절로 밝혀진 적도 있었다.

 

대필문화도 만연해있다. 젊은 박사나 교수 중에 자기 지도교수 이름의 작품을 대필했던 사람이 부지기수다.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도 대필이 밝혀져 망신당했었는데, 그중의 일부는 나중에 다시 방송에 복귀하기도 했다.

 

대중문화쪽은 표절의 왕국이었다. 해방 후 작곡가들이 일본 라디오방송이 들리는 부산에 몰려가 멜로디를 땄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었다. 영상쪽은 해외 비디오테잎을 보며 설정을 가져다썼다. 과거에 일본곡 표절인지도 모르고 한일전에서 ‘마징가제트’ 응원가를 불렀다가 망신당했던 적도 있다.

 

상황이 이 모양이니 일반 네티즌도 남의 글을 베껴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 빈번하다. 리포트 복사하는 정도는 일도 아니다. 위나 아래나 총체적으로 엉망진창이다.

 

◆표절은 엄연히 범죄다

 

셰익스피어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표절작가라는 말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전을 잘 가져다 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근세에 들어와 서양에선 지적재산권 개념이 확립됐다. 이젠 물건뿐만 아니라 무형의 지식도 재산이고, 따라서 남의 지식을 가져다 쓰는 건 도둑질이다. 사과하고 끝낼 일이 아닌 것이다.

 

작년에 폴란드에선 20여 년 전 논문표절이 드러나자 대통령이 사임했다. 2011년엔 독일 국방장관이 표절로 사임했다. 뉴욕타임스는 자사 기자가 표절기사를 내자, 그 소식을 특집으로 보도했고 편집총국장과 편집국장이 사퇴했다. 일본만 해도 아사히신문 지방 주재 기자가 표절기사를 내자, 본사에서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편집국장이 경질됐다. 이래야 선진국이다.

 

한국에선 아직 표절이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표절 인사들이 그렇게 당당할 수 있고, 일반인도 이런 사건에 무감각한 것이다. 지금처럼 오직 연예인들만 표절논란에 프로그램 하차로 책임지는 상황에선, ‘엉망진창 표절공화국’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선진화니 지식사회니 하는 것들은 모두 공염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