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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백지영 저주, 과연 그들은 장난감일까

 

백지영의 소속사가 악플러들을 고소했다. 이번에 고소 대상이 된 악플은 백지영의 유산을 소재로 했다고 하니,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악의적이다. 어떤 사람이 아이를 잃는 비극을 당했는데, 거기에다 대고 욕을 한 것이다. 이것을 사람의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할 짓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한 네티즌은 물론 멀쩡한 사람일 것이다. 인면수심이 아닌 이상 어떻게 멀쩡한 사람이 그런 일들을 벌인단 말인가?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다.

 

우리는 게임할 때 죽인다는 표현을 잘 쓴다. 하지만 게이머 중 대다수는 실제 현실에선 타인을 공격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인데도 게임 중에는 대량살상무기로 불특정 다수를 몰살시키기도 하고, 조준 사격을 하기도 한다. 단지 기분풀이로 말이다. 그럴 수 있는 건, 게임 캐릭터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각한 악플러들은 연예인도 게임캐릭터처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래서 인면수심의 행위를 심심풀이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자기자신과 같은 인격, 인권, 피, 눈물을 가진 사람이라고 느꼈다면 절대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한테 욕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윤후나 리틀 싸이, 박민하처럼 어린 아이들한테까지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내 조카, 내 동생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이 경우에도 그 아이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사람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은 대면접촉을 안 했을 때다. 최근 드라마 <황금의 제국>에서 미사일 단추 신드롬이라는 말을 주인공이 했다. 미사일 단추를 누르는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을 실제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런 가책이나 고통 없이 가볍게 단추를 누른다는 이야기다.

 

1차 이라크 전쟁 당시 밤하늘에 비행기와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마치 게임 화면 같은 모습이 오랫동안 생중계 됐다. 이것이 미국인들로 하여금 실제로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의 참혹함을 잊게 만드는 작용을 했다고 평가된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양산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특별히 잔혹한 성정을 가져서가 아니다. 화면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을 마비시킨 것이다.

 

연예인도 화면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기가 쉽다. 무의식중에 하나의 게임 캐릭터처럼 느낄 수 있다. 일단 그렇게 느끼면 그 사람이 아무리 참혹한 고통을 당해도 나에겐 심심풀이 게임일 뿐이다. 아무런 가책 없이 그 사람을 가지고 장난감처럼 놀 수 있게 된다.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이상한 소문을 퍼뜨려 괴롭히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아이유가 임신해서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을 유포한다든지, 티아라가 대중에게 찍히자 자기가 티아라 백댄서라며 멤버들이 화영을 괴롭히고 구타했다는 소문을 유포한다든지, 권상우-손태영 부부의 사생활에 대한 이상한 소설을 쓰는 사람들. 이들은 말하자면 게임 캐릭터를 가지고 장난감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엔 연예인들이 쉬쉬하고 참았지만 요즘엔 이런 악플러에게 점점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 ‘연예인은 악플도 감수해야 한다’는 댓글이 달린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단순한 호오의 표시나 비판은 물론 감수해야겠지만, 저주와 루머 유포까지 참아줄 의무는 없다. 연예인도 인격과 인권이 있는 존재이며, 고통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연예인은 결코 장난감이 아닌,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 말이다. 내 동생, 내 친구라면 심심풀이 땅콩처럼 재미로 그들을 괴롭히며 유린할 수 있을까?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겐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사람의 존재와 고통이 나에게 명백히 지각되기 때문이다. 화면 너머 존재하는 연예인의 고통도 그렇게 지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숙한 사람이다. 인간에겐 그럴 수 있는 사고능력이 있다. 그런 고차원적인 사고-공감 능력을 폐기하고, 당장 내 눈앞에 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장난감처럼 기분풀이 놀이대상으로 대하는 분위기라면 우리 사회의 성숙은 요원하다.